[여행스케치=공주]한때는 대학의 상아탑을 ‘우골탑’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농가의 가장 큰 재산은 소였다. 그래서 그 시절 우시장은 희망과 활기가 넘치는 장터였다. 하지만 수입쇠고기 시장이 개방되면서 우시장은 점차 활기를 잃어가는 모습이다. 새벽에 찾아간 공주 가축시장에서도 활기와 시름이 뒤섞인 모질고 질펀한 사람 사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새벽 4시 30분. 소를 실은 용달차들이 하나둘씩 우시장 앞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충남지역에는 공주 우시장을 비롯해 홍성, 광천, 서산, 청양, 논산 등지에 우시장이 남아 있는데, 특히 공주 우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졌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에 현대식 시설로 새 단장을 하고 개장일도 5일장에서 매주 수요일로 바꿔 서고 있다. 소를 내다 파는 사람들은 공주 인근 지역의 축산 농가들이지만 소를 사려는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다.
판매장 문이 열리는 새벽 5시 30분까지는 한 시간 남짓 시간이 남았지만 소 주인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부터 부지런을 떤다. 그냥 차 안에서 선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밖으로 나와 정보를 주고받는 모습이다.
수입 쇠고기가 개방되고 난 후 소를 파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근심이 떠나질 않는다. 한우값은 곤두박질을 쳤고 계속되는 불경기 탓에 애써 키운 소를 내놓기가 싫단다. 그러면서도 사료값이 치솟아 어쩔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소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 헐값에 소를 모두 처분하고 소 사육을 포기하기도 했단다. 한마디로 키워봤자 본전도 못 찾는다는 말이다.
“내 새끼들 고등핵교, 대핵교 보내고 시집, 장개 보내게 해준 게 바로 이 소들이유. 한때는 금보다 더 든든한 놈들이었는디 요즘은 이놈들 볼 때마다 속이 타서 죽겄슈. 당최 키워봤댔자 힘만 드니께….”
근처 정안에서 송아지 세 마리를 싣고 온 김성렬 씨의 말은 차라리 푸념에 가깝다. 목돈이 필요해 어린 녀석들 셋을 싣고 오긴 했지만 얼마나 제 값을 받을지는 모르겠단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단다. 그래도 믿을 것은 소밖에 없으니….
따끈한 커피 한잔은 추운 새벽바람에 잔뜩 언 몸은 녹일 수 있지만 꽁꽁 얼어붙은 농심은 녹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연방 담배 연기에 걱정과 푸념을 녹여 허공에 뿜어댄다. 차 안에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잠을 청하는 농민은 차라리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요즘 세상 살기가 녹록지 않은 것이다.
새벽 시 30분. 드디어 우시장에 불이 켜지고 장이 시작된다. 일렬로 세워졌던 트럭들이 차례로 장 안으로 들어가 일사불란하게 소들을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소의 고삐를 잡고 냅다 뛴다. 여느 장사가 그렇듯 시장 내에도 좋은 자리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소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입구 자리가 제일 좋단다. 똑같은 소라면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고 우선 볼 수 있는 곳에 두는 게 팔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소를 팔려는 사람, 소를 사려는 사람 모두 분주해지는 시간이다. 발품만이 좋은 소를 보장해준다. 매장에 나오는 소는 체중에 따라 암소와 황소, 송아지와 임신한 소 등으로 분류하는데 가격은 시세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도 딱히 정해진 시세는 없는지라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소를 사겠다는 사람은 하나라도 더 흠을 찾아내려 하지만 평생 애지중지 키운 소를 팔려는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래서 흥정을 할 때에는 흥정꾼과 경매사가 끼어들게 마련인데, 이들은 시세와 나이, 건강상태 등을 공정하게 봐주고 흥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우선, 좋은 소를 고르려면 이빨을 봐야 하는데, 나이나 건강상태 등을 한 번에 체크할 수 있다. 가장 인기가 좋은 소는 두 살에서 세 살 먹은 소로 사람으로 치면 한창때인 20, 30대라 할 수 있다. 살이 육덕지고 등이 곧으며 체형이 올바르면 좋은 소 축에 속한다. 이런 소들은 대개 개장 10분 정도면 거의 팔려서 등에 은색 페인트칠을 하고 따로 매어진다.
소가 거래되는 방법은 ㎏당 매매가격을 정해놓고 체중을 달아 곱해 최종 가격을 매기는 식이다. 소를 거래하는 데는 수표와 현금 거래가 우시장의 관례이다. 2000만원 정도의 소값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오간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기 전에 600㎏짜리 큰 암소 한 마리 값이 570만원 갔슈. 근디 수입이 딱 되고 나서 시방은 ㎏당 8000원이 못 돼유. 600㎏해봤자 480만 원이유. 거의 100만원이 떨어진 거유. 먹이는 사료값은 계속 올랐는디…. 우리는 미국 소나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게 사료값이유.”
오늘 암송아지 한 마리를 팔고 빳빳한 지폐를 주머니에 넣으면서도 박기섭 씨의 속은 딱히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나마 오늘 소를 팔았다는 게 다행이다. 오늘 공을 쳤더라면 나머지 소들은 사료도 못 먹일 뻔했다. 공주 우시장만 하더라도 하루에 팔리는 소는 매장에 나온 소들의 60% 정도란다. 그 나머지 소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소를 판 사람들은 산 사람들을 컨테이너 박스에 마련된 ‘반짝 다방’에 데리고 가 따끈한 쌍화차 한잔을 대접한다. 그러면서 자기 소를 사줘서 고맙고, 어디로 데리고 가든 잘 키워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공주 우시장에는 장이 설 때마다 문을 여는 다방이 있다. 우시장이 새 단장하기 전에는 공주다방 말고도 마담식당이 있어 선짓국밥이며 소머리국밥 등을 팔았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단다. 공주다방도 사실상 사라진 상태. 현재는 그냥 임시 휴게실 정도로 간단한 차를 팔고 있다.
“예전엔 이곳에서 웃음꽃이 피었는데 이제는 푸념꽃이 피는 장소가 안 돼야 부렀소.”
휴게실 안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한 아저씨의 말처럼 이곳에선 소값에 대한 푸념, 농가 대출 이야기, 빚더미 이야기가 담배연기에 실려 돌아다니고 있다.
매장이 열린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과 소들이 반으로 준다. 아직도 소를 고르는 사람들 속에서 송아지 다섯 마리 중 아직 한 마리도 팔지 못한 아주머니는 애가 탄다. “아, 여기 우리 소 좀 보고 가요”라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지만 그 속은 까맣게 타고 있을 것이다.
그 무렵 소들의 운명도 여러 갈래로 바뀌고 있다. 새로운 집에서 농사일을 도울지, 아니면 도축장으로 끌려가 생을 달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의 상황을 예감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소.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듯 낯선 이를 따라가는 소는 끌려가지 않으려 뒷걸음질을 치다가 아예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동그란 눈에서 연방 눈물만 쏟아낸다. 역시 영물이다. 이 모습이 보기 싫어 주인은 아예 등을 돌린다. 한두 번 팔아보는 것도 아니건만 이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동이 트고 날이 훤하게 밝으면 우시장에는 사람과 소들이 얼추 빠져나간다. 오늘 팔리지 않은 소들은 다른 우시장으로 가거나 다음 주 수요일에 또다시 이곳에 나오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얻었지만 마음속에 상처를 남긴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살이임을 아는 사람들은 소를 실은 트럭에 시동을 걸고 유유히 우시장을 빠져나간다. 소들 또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몸을 뒤척이지도 않은 채 트럭에 몸을 싣는다.
오늘의 장으로 어떤 이는 생활을 꾸려 나갈 테고, 남은 소들은 먹이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돌아오는 장터에서 오늘을 재현할 것이다.
“그래도 어쩔규? 소가 우리집 젤로 큰 재산인디…. 끝까지 버텨봐야 쥬.”
텅 빈 우시장에 한 농민의 푸념과 희망이 잔영처럼 메아리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