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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우리 동네 명물] 장성 황룡장의 ‘광주제과사’ “여그가 한때는 장성 작은 장이었제”
[우리 동네 명물] 장성 황룡장의 ‘광주제과사’ “여그가 한때는 장성 작은 장이었제”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8.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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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장성 황룡장의 광주제과사.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장성]한번 맛을 본 사람이라면 꼭 다시 들른다는 장성 황룡장의 광주제과사. 쌀강정만 50년 가까이 만들어온 장성의 명물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얼마나 북적거렸던지 한때 ‘장성 작은 장’이라고까지 불렸다는데…. 강정만큼이나 고소한 옛날 얘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한창때에는 일꾼만 열댓 명이었어라
취재를 하고 싶다는 기자의 전화에 들려온 대답은 뜻밖에도 깊은 한숨이었다. “가게가 심란허요.” 

가게가 오래되어 깔끔하지 못하다는 뜻이겠거니 짐작하고 상관없다며 거듭 부탁을 하자, “그라믄 장날 한번 오쇼잉”이라는 나지막한 대답이 들려왔다.

전남 장성을 대표하는 5일장인 황룡장. 황룡장에 가면 45년째 하루도 쉬지 않고 쌀강정을 만들고 있는 집이 있다. 장성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광주제과사다. 제과사라…, 제과점이라는 말이 1980년대부터 유행한 것을 생각하면 한참이나 시대를 앞섰던 상호임에 틀림없다. 

열일곱 살에 광주에 있는 과자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며 기술을 익힌 김길수 사장이 스물한 살 되던 해인 1963년에 장성으로 옮겨와 자기 소유의 제과사를 차린 게 광주제과사의 시작이다. 

주전부리가 부족했던 시절에 그가 선보인 앵두과자니 쪽박과자 같은 것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한창때는 사람을 열댓 명이나 두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이중엔 배달꾼도 두세 명 되어 광주 양동시장은 물론 청주 등 각 지방 점방에까지 과자를 댔다.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강정 만들기의 절반 수고를 차지하는 밀기.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하루 2~3교대로 돌려도 물량을 다 못 맞출 정도였당께. 을매나 손님이 많았는지 오죽했으면 우리헌티 장성 작은 장이라고 했겄어. 그란디 메이커 과자들이 나오면서 콱 찌그러져버렸제. 시방은 요것(쌀밥산, 일명 강정)으로 겨울 한 철만 하면 깐당깐당 밥은 먹응께.” 

1960~70년대까지는 장사가 꽤 잘되었지만 1980년대 중반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과자들이 쏟아지면서 광주제과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판매가 신통치 않게 되자 그때부터는 복숭아밭도 함께 꾸려나가면서 아들 둘, 딸 둘을 키워냈다. 다들 도시로 나가 제몫을 하며 살고 있는데 요즘 부부에겐 큰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집 옆을 지나는 철로가 이전하면서 꼼짝없이 이사를 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심란하다’는 한숨이 무슨 사정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가게만 헐리니 창고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힘에 부쳐 가게를 그만두려고 작정했단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동네 젊은 사람 하나가 해보겠다고 나서서 지금은 강정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부부 역시 가게를 접은 후에도 택배 주문으로 들어온 강정은 계속 만들 생각이다.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강정은 요렇게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썰어야 맛난당께.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요게 바로 영양만점 간식
강정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니 “그라믄 쪼깨만 만들어볼랑께 집에 갖고 가쇼잉” 하며 차근차근 재료부터 설명을 해준다. 

광주제과에서 강정을 사려면 쌀을 따로 가져가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내가 가져간 쌀은 두고 나는 이전 사람이 놓고 간 쌀로 만든 강정을 가져가는 것이다. 충분히 쌀을 불리고 미리 쪄놓아야 하기 때문에 생긴 독특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사가는 사람이야 잠깐 지켜 서 있다 가져가면 그만이지만 강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중노동이 따로 없다. 

우선 키질을 해 반 토막 난 나락을 골라내고 씻는다. 그렇게 하룻저녁을 담가 시루에 쪄낸 뒤 바구니에 건져놓고 물기가 빠지면 밥을 다시 쪄 채반에 널어 말린다. 밥알이 꾸덕꾸덕 말랐을 때 쌀알을 한 톨씩 떼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고 난 후 또 체를 쳐 햇볕에 널어 말리는 게 기본 단계다.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주문이 한꺼번에 밀릴 때는 이 기계로 쌀알을 볶아내곤 했다.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이렇게 준비를 해놓은 뒤 갯모래의 열을 이용해 밥알을 튀기고 물엿과 설탕, 계핏가루를 넣어 판판하게 만든 뒤 먹기 좋게 잘라내면 된다. 센 불에서 밥알을 튀겨내고 뜨거울 때 판에 넓게 펴 방망이로 밀어 일정한 두께로 모양을 잡는 게 슬쩍 보기에도 만만치 않다. 강정 만드는 일 중 절반은 쌀을 쪄서 말리는 거고, 절반은 노바시(판에서 미는 일)하는 거란다. 

그러고 보니 어깨랑 손가락이 싹 망가져버렸다는 노부부의 한숨 섞인 얘기가 이해된다.  
“나도 모르겄소. 사람들이 꼬숩다고 하니깐 그런가부다 하는 거지. 그래도 손님들이 오래된 집이라고 우리 것만 찾아쌌태요. 또 요즘엔 트랜스(지방)니 뭐니 땜시 애기들 먹인다고 많이들 사가고, 인천이고 서울이고 안 가는 데 없응께.” 

사실 따지고 보면 강정만큼 영양가 있는 간식이 없다. 물엿이나 약간의 설탕 외에 들어가는 것은 땅콩이나 깨, 유자 같은 것들이 전부이고 인공적인 재료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막 썬 강정을 집어 맛을 보니 맛이 정직하고 소박하다. 달지 않아 어른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또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하다.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수십 년간 함께해온 광주제과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한 컷. 2008년 5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기운 닿는 데까지는 한번 해볼라요
광주제과사는 장성의 과자류제조업 품목허가 1호다.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허가를 내야 했고 처음엔 빵류를 주로 만들다 쌀밥산으로 주 종목을 바꾸게 되었다. “글씨 그때야 다들 영세헝께 허가 없어도 장사허는 디가 많았제. 첨엔 도나쓰류를 많이 했는디 나중에 그게 안 나강께 쌀밥산으로 바꿨제.”

기념이 될지 모른다며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하니 “낭중에 필름값은 줄 테니 잘 좀 찍어보라”며 부부가 가게 앞에 선다. 벌써 세 번째 바꿨다는 파란색 간판. 아직 10년은 거뜬할 정도로 팔팔해 보이지만 이제 임무를 마쳐야 할 때가 됐다. 

세월이 변하고 사람들의 입맛이 변해 설 자리가 좁아졌지만, 아직은 당신들의 강정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하는 데까지는 해볼 작정이라는 말에 처음의 아쉬움이 안도로 바뀌었다. 고소한 강정 맛에 어느새 자꾸 손이 갔는지 강정 봉지는 배가 홀쭉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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