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남원]백두대간을 타는 대간꾼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막걸리집을 꼽으라면 단연 ‘매요휴게실’이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지리산 유치재를 지나 사치재로 넘어가는 길목, 매요리의 작은 마을에 빨간 간판을 달고 분주함 속에서 인정과 여유를 파는 매요휴게실을 다녀왔다.
산을 타는 사람이 아니면 일부러 이곳에 들를 일은 없을 것 같다. 지리산 자락을 넘어 시골길을 달리기를 몇 십 분, 벌써 폐교된 지 20년이 됐다는 운성초등학교를 지나면 ‘매요휴게실’이라는 빨간 간판을 새색시 머리 올리듯 단정하게 달고 있는 가게를 찾을 수 있다.
혹시나 마당에 차를 대면 나중에 들를 손님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멀찍이 차를 대고 가게로 향한다. 어라, 근데 컨테이너 건물인 가게 문이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가게 주인인 신순남 할머니가 어디 출타하신 모양이다. 멀거니 시간을 보내자니 덧없다 싶어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보려 하니 가게 옆 가정집 창문으로 빠끔히 얼굴을 내미시는 할머니. 그 얼굴이 얼마나 반갑던지 나도 모르게 뛰다시피 창문으로 향한다.
“할매 오늘 장사 안 하요? 막걸리 무그로 왔는데.”
“장사를 와 안 하요. 팔라꼬 사논 물건들인디.”
한가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던 차에 가게를 찾은 낯선 손님이 반가웠던지 할머니는 옷을 추려 입고 가게 문을 열어준다.
“근데 아가씨요? 아지메요?”
“저…, 총각인데요.”
“난 또 아가씨 하나가 멀거이 혼자서 산 타고 있는 줄 알았제. 볼띠기가 뽀얗고 통통헝게.”
할머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셨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막걸리 한 병에 한 바구니 가득 상추를 내어 오신다. 이 집 막걸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누가 그러던데, 그 말이 맞지 싶다. 시중에서도 흔히 살 수 있는 ‘운봉生막걸리’가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을 줄이야! 할머니도 한잔 거들라는 말에 요즘 다리가 아파서 약 먹는 중이라며 “니나 마이 무그라” 하신다.
할머니는 심심하셨던지 내 옆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작년까지만 혀도 낮이고 밤이고 산 타는 사람들이 많았는디 요새는 영 별로여. 노인네가 여 있음서 사람 기다리고 보는 게 낙인디….”
하기야 동네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지 못했던 터다. 이곳 마을도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논과 밭을 지키고 있는 농촌의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없어. 짊은 사람들은 다 나가고 고작 세 명이 다여. 그 사람들이 이장 허고 농촌지도자 허고 나머지는 다 할매, 할배들이지 머. 그래도 지금은 버스도 들어오고 긍께 사는 데 지장은 없어. 근디 나는 지나가는 버스 보멘시 저거 저려서 장사 되나 싶어. 나가는 사람도 들어오는 사람도 없는디….”
버스도 그렇게 장사가 안 되는데 그럼 매요휴게실의 매출은 어떨까?
“물건 팔아서 이득 볼라치면 택도 없어야. 그냥 여서 물건 조금 나뚜고 사람 기다리는 재미지. 10리 되는 운봉만 나가믄 키다란 마트가 있는디 누가 여서 물건을 살 거여? 그냥 막걸리나 두어 병 냅둬. 산 타는 사람들 무그라꼬.”
할머니네 막걸리와 라면은 싸기로 소문이 났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라면 1500원, 막걸리 1500원이다. 막걸리 한 병을 시키면 김치를 내어주든가, 앞마당에서 키운 상추를 뜯어 주든가 해서 안주는 그냥 먹으라 한다. 물가가 엄청 올랐어도 아직은 가격을 올릴 생각이 없단다. 자신을 어머니, 할머니처럼 생각해 다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란다.
“저그 나무에 매달아논 것들이 다 여기 좋다꼬 기념으로 메놓고 간 거여”라는 할머니의 말에 대문 역할을 하는 들쭉나무를 쳐다보니 나무 밑으로 전국의 산악회에서 다녀간 백두대간 종주 리본들이 잔뜩 매달려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치자는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할머니와의 인연을 꽁꽁 매어두려는 산꾼들의 바람도 담겨 있지 싶다.
신 할머니가 매요마을로 들어온 것은 일곱 살 때. 이곳에서 한평생을 산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맹그런 자식새끼가 일곱이여. 자식들은 다 도시로 나갔어. 오늘도 딸내미가 손자 낳으러 병원 간단디 우짜 됐능가 몰겄는디? 참 우리 큰아덜이 육군 중령이여.”
무심한 듯하면서도 자식들 자랑은 빠뜨리지 않는 신 할머니다. 매일 이렇게 지나가는 손객들을 맞아도 그래도 가장 반가운 것은 자식들과 손주들이란다. 그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할머니의 전화 받는 습관이다. 할머니는 자식들 전화가 아니면 아예 받지를 않는다. 그래서 취재를 하기 전에 몇 번을 드려도 목소리만 들어보곤 금방 끊었던 모양이다.
마침 이웃집 할머니가 밭에 물을 주러 가는 길에 걸어가기는 뭐하고 버스 타기도 뭐해 지나가는 경운기라도 있으면 얻어 탈 요량으로 가게로 발길을 옮긴다. 신 할머니는 “이 더운 날씨에 사람이나 물 먹지 뭣 하러 밭에도 물 주러 다니냐”며 핀잔을 하지만, 정작 본인도 일구던 밭이 걱정스러운지 “내가 언지 밭에 댕겨왔던고?” 하며 손가락을 꼽는다.
두 할머니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막걸리 한 병을 오지게 걸치고 평상에 누워 어느새 낮잠을 잤던 모양이다. 신 할머니가 “아따 여서 술 묵고 자빠지믄 집엔 은제 갈 거냐”며 나를 깨운다. 하루에 여섯 번 시내로 가는 버스가 이제 곧 끊길 거란다. “할매는 내가 빨리 가믄 좋겄소?”라고 묻자 “내사마 그런 건 아이지만서도…. 차 끊긴다 후딱 가거라잉”하시며 빈 막걸리병을 치워버리신다. 차를 가지고 왔지만 버스 막차 시간을 걱정해주는 할머니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짐을 꾸려 가게를 나선다. 할매 사진 하나 찍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어서 가라고 떠미는 할머니. 몇 년이 지나서 이곳을 오더라도 항상 시원한 막걸리와 질박한 인정을 팔고 있길 진심으로 바라며 가는 길을 재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