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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희망여행] 휠체어 타고 인도 여행 신들의 세계, 인도가  내게로 왔다
[희망여행] 휠체어 타고 인도 여행 신들의 세계, 인도가  내게로 왔다
  • 전윤선 기자
  • 승인 2008.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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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여행스케치=인도]내 휠체어는 인도인에게 그저 신기한 물건인가보다. 무엇인지 설명을 해줘도 영 모르는 눈치다.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새로 개발된 교통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도 더 이상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휠체어는 단순한 보장구가 아니었다. 인도 여행 내내 나와 함께하며 나를 지탱해준 친구이자 지킴이였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아이들의 웃음은 어디나 사랑스럽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자유 찾아 드넓은 세상으로
일찍 찾아온 추위가 초겨울을 연상케 한다. 제법 쌀쌀한 날씨 탓에 긴장과 기대가 더해진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어느새 비행기는 인도 하늘을 향해 날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으니 인도여행을 준비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인도가 처음 내게 다가온 것은 지구 오지 곳곳을 체험하는 TV 프로그램에서였다. 낙타 등에 올라탄 출연자는 인도 서북쪽 라자스탄 지역 타르사막을 유유히 횡단하고 있었다. 낮엔 뜨거운 태양 아래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낙타와 횡단을 감행했고, 밤엔 사막의 별을 보며 적막과 고요함에 취해 잠이 들었던 간절한 희망은 10년 동안 가슴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가끔 상상속의 인도를 꺼내어 들췄다가 소중히 넣어두기를 수차례, 그리고 드디어 긴 시간이 지나서 인도를 실제로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세계오지여행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 안의 오랜 희망이 반응했다. 11월 인도 타르사막을 여행한다는 공지 아래 작은 떨림으로 물었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티베탄 식당에서 팔던 빵.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장애인도 꿈에 그리던 인도에 갈 수 있나요?”
며칠이 지나고 함께 인도 여행하길 바란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그러나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장애인의 몸으로 사막을 여행하는 게 가능할까. 드넓은 대륙을 밟아보기도 전에 두려움이 팽창해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다. 그때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함께하자’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낯선 인도 대륙으로 발길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미래를 염려하느라 오늘을 놓쳐버릴 수 없지 않은가.

인터넷 카페 주인장은 평소 환경과 장애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신체적 장애로 여행을 포기하고 사는 이들에게 여행을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 장애인 가이드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매년 여행단을 모집한다고 했다. 카페의 수익금이 고스란히 장애인의 여행비용에 지원되어 지금까지 총 여덟 차례 세계 오지를 다녀왔다고 했다. 카페와의 인연으로 나의 나침반은 희망의 세계를 항해하고 있었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델리공항.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일행이 나의 휠체어를 끌어주고 있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휠체어와 마주한 인도 풍경
드디어 델리 도착, 시간은 21시 30분(델리 시간)을 지나고 있다. 처음 마주한 델리공항이 낯설지 않다. 

한국의 70년대 허름한 버스터미널이 떠올랐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한 듯하다. 밖이 어두워 공항 밖으로는 나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일행의 의견에 공항 로비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탓에 일행은 저마다 피곤에 지쳐 있다. 대합실 로비, 의자에 걸터앉아 새벽을 기다린다. 유색인종들이 오고 간다. 휠체어 끄는 사람은 나 혼자다. 공항 안에 마련된 수동 휠체어들이 나란히 줄서서 오가는 승객들을 주시할 뿐이다. 나는 고요하고 차분하게 인도에서의 첫날을 맞을 준비를 했다. 

새벽 4시 공항을 빠져나온다. 공항 밖엔 택시와 사이클 릭샤, 오토 릭샤 등 이동수단이 즐비하게 손님을 기다린다. 밤새 공항 밖에서 추위에 떨며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들은 서로 자기네 교통수단을 이용하라고 아우성이다. 우린 인도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택시 부스에서 정찰요금을 지불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두 대에 나눠 타도 모자랄 여섯 명의 일행이 한 대에 몽땅 탔다.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묵는 거리 파하르간지로 향했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릭샤와 보행자가 엉켜 북적이는 거리.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파하르간지 거리는 델리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델리역으로 가는 택시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폭주 기관차 같다. 택시가 무단횡단을 일삼는 사람들 사이로 우렁차게 경적을 울리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델리의 풍경은 살벌했다. 여행자를 알아보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호객꾼들, 전쟁이 막 끝난 듯한 폐허 같은 건물들, 소의 배설물과 배회하는 개떼까지. 거리는 온통 쓰레기더미로 뒤덮여 있고, 바지만 내리면 그곳이 화장실이었다. 인도인은 이런 도시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아니 살아내고 있었다. 내가 본 인도의 모습은 고행, 바로 고행이었다. 

우리는 스위트 드림(Sweet Dream)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로 했다.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엔 짜이(인도차)를 만들어 파는 노점상과 짜파티(인도 음식)를 만들어 파는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곳도 만만치 않다. 골목 안은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여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정도다. 숨을 참고 휠체어를 끌었다. 그러나 방까지 입성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숙소는 2층짜리 낡은 건물인데, 계단 높이가 30㎝가 넘어 일행과 숙소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무슨 말이 씌어 있는지 알 길이 없는 플래카드.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나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도 아무 거리낌 없이 거리에 나오는 풍경이 새롭게 다가왔다. 앉아서 다니는 사람, 기어서 다니는 사람, 굴러서 다니는 사람, 등에 업혀서 다니는 사람, 장애도 가지가지지만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곧잘 이동을 했다. 물론 휠체어 같은 보장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타는 것이 무엇이냐고 인도인이 나에게 묻는다. 난 휠체어라고 설명을 했지만 못 알아듣는 눈치다. 그들이 늘 이용하는 사이클 릭샤에서 새로 개발된 제품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휠체어를 천천히 살펴보고 만져보고 뒤에서 밀어도 본다. 마냥 신기한가보다.

한참을 식당을 찾아 헤맨 끝에 커리 전문식당에 도착했다. 맛깔스런 음식이 식탁을 장식한다. 먼저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운 짜파티를 찢어서 커리를 살짝 감듯이 싸서 오른손으로 먹었다. 그래야 제 맛이란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바로 적응했다. 맛이 일품이다. 배가 고팠던 참이어서 정신없이 먹느라 주위를 살펴볼 겨를도 없었는데, 어느새 일행이 현지인들에게 빙 둘러싸인다. 우리를 보고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한 인도인이 오른손으로 식사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며 일행 옆으로 다가와 자세히 설명해준다. 배운 대로 ‘탈리(Tally)’를 손으로 먹어본다. 마치 인도인이 된 것처럼.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델리 시. 요즘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우마차.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붉은 성의 주인 ‘무굴’의 위엄
일행을 태운 사이클 릭샤는 거리의 사람들 사이를 빠르고도 부드럽게 빠져나간다. 사이클 릭샤는 앞에서 사람이 페달을 밟아야 움직이는 이동수단인데 뒷좌석엔 손님을 두 명까지 태울 수 있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굴러가는 사이클 릭샤 뒷좌석에 타고 가니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차표를 예약하러 가려면 도깨비시장 찬드니촉을 거쳐야 한다. 찬드니촉은 샤자하나바 시절가장 번창했던 거리로 유명하다. 구역에 따라 은시장, 꽃시장, 향신료시장, 도둑시장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찬드니촉에 들러 시장 구경에 나섰다. 일행이 인도 전통의상을 사며 상인과 벌이는 실랑이는 흥미진진하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흥정은 재미있는 풍경인가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도깨비시장엔 특히 대한민국 상표가 붙은 물건이 비싼 가격임에도 현지인들에게 불티나게 팔린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붉은 토기를 팔고 있는 인도의 시장 풍경. 서민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인도의 서민 음식 탈리. 2008년 6월. 사진 / 전윤선 기자

찬드니촉 곳곳을 둘러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로 정신이 멀리 빠져나간 느낌이다. 일행은 다음 행선지로 떠날 채비로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산다. 찬드니촉을 지나 뉴델리에 도착했다. 네모 반듯 잘생긴 현대적 건물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붉은 성(무굴의 황제이자 건축광이었던 샤자한(Shah Jahan)이 1639~1648년에 걸쳐 지은 성)으로 향했다. 

왕궁뿐 아니라 전투의 목적까지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 성을 둘러보고 나니 밤이 깊었다. 우리는 파하르간지에 돌아왔다. 내일은 인도 서북쪽 라자스탄 지역 자이산메르로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환전 후 티베트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지금 델리는 상인들의 흥정 소리와 차량들의 경적 소리로 소란하고 계속해서 피워대는 향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약간의 긴장감 도는 델리에서의 밤을 만끽한다.게스트하우스 ‘스위트 드림’으로 향한다. 이제 인도에서 진짜 달콤한 꿈을 꾸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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