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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주말 여행] 토요일 무료로 열리는 ‘안성남사당바우덕이 풍물 공연’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판’ 살판나는 놀이 한마당 
[주말 여행] 토요일 무료로 열리는 ‘안성남사당바우덕이 풍물 공연’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판’ 살판나는 놀이 한마당 
  • 최혜진 기자
  • 승인 2008.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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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어름 3m 줄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묘기와 재주.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안성] 신명 나는 장단이 어우러진 꼭두쇠의 묘기와 재담에 어깨가 들썩이고 박장대소가 터진다. 세상 시름을 한순간에 잊게 하는 놀이판이 매주 토요일 안성에서 벌어진다.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의 상설 공연 현장으로 가보자. 

아슬아슬 줄타기의 묘미
“내 여기서 저기까지 한번 가볼 것인디, 잘~ 가면 본전이고 못 가면 망신이니, 어디 한번 잘들 보소.” 

‘덩기덕쿵덕’ 장구 장단과 함께 어름산이 서주향 씨의 낭랑한 목소리가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저녁 공연의 문을 연다. 3m 높이에 설치된 밧줄을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아래에서 구경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마조마해진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버나 둥글넙적한 가죽접시를 긴 막대로 돌리며 주고받는 묘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실수인지 연기인지 떨어질 법하다가도 줄을 총총 튕겨내며 어느새 저쪽 끝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점점 장단이 빨라지고 흥이 살아나면서 줄타기 묘기가 시작된다. 신명 나는 풍물 소리에 맞춰 이리 돌고 저리 돌아도 희한하게 그 자리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튕겨 올랐다가 가랑이 사이로 착지하는 게 묘기긴 묘기다. ‘와’ 하는 탄성과 박수 소리가 공연장을 떠나보낼 듯하다. 

줄타기 묘기를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에서는 ‘어름’이라 부르는데, 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어름은 줄 위의 묘기꾼 ‘어름산이’와 줄 아래 재담꾼 ‘어릿광대’, 그리고 풍물로 흥을 돋워주는 ‘풍물패’가 만들어내는 합작이다. 

어름산이의 묘기를 보던 어릿광대는 “그렇게 가랑이를 써대니 어디 바지가 찢어지지 않겠냐”며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어름산이가 “내가 여자아이였으니 망정이지 사내아이였으면, 거시기가 머시기 될 뻔했다”고 받아치니, 관객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오랜만에 웃음보가 터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가 줄줄이 나온다. 광대는 마다하지 않고 돈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풍물단을 천직이라 생각한다는 단원 하영란 씨.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여기저기 관객들이 돈이며 꽃이며 챙겨 주기 여념이 없으니 시간이 잠시 지체된다. 그래도 아랑곳 않고 “챙길 건 챙기고 해야겄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디…” 하며 어름산이는 여유를 부린다. 그 옛날 풍물패들이 웃음을 팔아 생계를 꾸려갔던 모습을 지금 눈앞에서 본다. 

광대는 더는 높이 오를 수 없을 만큼 줄 위를 힘껏 날아오르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하늘 높이 올라간 어름산이의 모습이 저녁 해에 반사돼 멋들어진 그림을 선사한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님이 된 장생이 공길과 마지막 대사를 주고받고 줄 위를 뛰어올라 끝을 맺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실제로 <왕의 남자>의 줄타기 묘기를 했던 장생 감우성의 대역을 안성바우덕이풍물단의 권원태 씨가 맡았다. <왕의 남자>에서 보았던 놀이판 뒤에 묻어나는 삶의 애환이 풍물 공연의 현장에서 다시 한 번 가슴에 되살아난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덧뵈기 남사당 덧뵈기는 각 지역의 탈춤 중 재미있는 대목을 취합한 것이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세계로 뻗어나가는 남사당풍물단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의 공연은 ‘어름’을 포함해 북, 장구, 꽹과리, 징, 소고, 태평소의 악기가 빚어내는 ‘풍물놀이’, 탈을 쓰고 덧본다는 말에서 유래된 탈춤 ‘덧뵈기’, 대접을 돌리는 ‘버나’, 땅 재주꾼의 묘기 ‘살판’, 꼭두각시 놀음 ‘덜미’ 이렇게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다.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의 바우덕이는 조선 후기 광대의 이름으로, 열다섯 살 꼭두쇠에 올라 풍물패를 최고의 전성기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공역장들을 즐겁게 일하게 해준 대가로 천민 신분임에도 정삼품 벼슬을 내렸다고 하니, 그 능력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지금 바우덕이의 예술혼을 이어받은 풍물단이 안성을 거점으로 스페인, 독일, 미국, 터키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덜미 작은 인형과 재담을 풀어가는 전통인형극.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상설공연의 다음 순서로 풍물놀이가 이어진다. 우리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도 볼 수 있는 풍물놀이는 공연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한 기록도, 유래도 찾을 수 없지만 유랑연희 집단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의 음색이다. 특히 상모를 돌리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외국인에게는 굉장한 흥미를 자아내는 듯하다. 흥이 난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 온 관광객이 무대 앞으로 나와 우리 가락에 취해 흥겨운 어깨춤을 춘다. 이 모습에 관객도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버나, 살판 등의 다음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한데 어울리는 놀이판이 벌어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단원과 관객의 경계도 없이 모두가 우리의 소리에 젖어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난장의 시간이 한동안 이어진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풍물놀이 풍물악기가 갖는 경쾌한 장단과 상모놀이가 곁들여진다. 2008년 8월. 사진 / 최혜진 기자

단원 하영란 씨는 ‘아이고 잘한다’, ‘얼쑤’ 같은 관객들의 추임새 덕에 오늘 공연이 더 신명 나는 놀이가 되었단다. 그녀는 “풍물패의 삶은 우리 가락을 듣고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신명을 표현해내는 나의 사명이었다”며 우리 문화의 맥을 이으려는 노력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어릴 때부터 장구 장단에 덩실덩실 춤을 췄다니 바우덕이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 우리가 바우덕이풍물단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된 것에는 남사당패의 전통을 이으려는 안성시의 노력이 컸다. 이동희 시장의 추진 하에 풍물단의 체계적인 관리와 토요일 상설공연이 시작되었던 것. 2012년에는 세계민속축전이 안성에서 열린다. 세계에 우리의 소리와 문화를 전하게 될 소중한 기회다. 

많은 이들을 신명 나는 우리 가락의 세계로 이끌고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잊게 한 바우덕이가 지금의 대중문화와 연예의 효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때 천민유랑집단으로 취급받던 남사당풍물패의 놀이공연이 지금은 문화의 가치를 알아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다니, 이 또한 듣기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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