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꼭 가봐야 할 가을 길] 경남 창녕 화왕산 은빛 억새들의 장엄한 군무
[특집 꼭 가봐야 할 가을 길] 경남 창녕 화왕산 은빛 억새들의 장엄한 군무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8.09.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절정에 이른 억새평원.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창녕] 단풍처럼 화려한 멋은 없지만 억새밭에서 펼쳐지는 은은하면서도 소박한 진풍경에 가을이 더욱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은은한 빛깔과 한 점 바람에도 군무를 펼치는 억새가 가을이 바로 옆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들이 펼치는 황금빛 물결이 빨리 보고 싶어 조금 서둘러 화왕산 억새평원에 올랐다. 

단풍처럼 화려한 멋은 없지만 억새밭에서 펼쳐지는 은은하면서도 소박한 진풍경에 가을이 더욱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은은한 빛깔과 한 점 바람에도 군무를 펼치는 억새가 가을이 바로 옆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들이 펼치는 황금빛 물결이 빨리 보고 싶어 조금 서둘러 화왕산 억새평원에 올랐다.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아직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흔적.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계절이 깊어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억새 
울긋불긋한 단풍은 기분을 들뜨게 하지만 억새를 보면 괜스레 마음이 착잡해진다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막상 수만 평에 걸쳐 펼쳐진 억새평원을 마주하고 나면 놀라움의 탄성이 순식간에 터져 나온다. 단풍이야 어디를 가든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볼 수 있지만 억새는 그렇지 않다. 군락지가 따로 모여 있어 일부러 마음먹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게 억새다. 

억새는 9월 중순부터 서서히 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해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갈수록 깊이가 더해진다. 

화왕산은 그 규모에 비해 등산로 수가 적은 편인데다 아래서 보는 것만큼 오르기 어려운 산도 아니다. 자하곡매표소를 기점으로 하는 3개 코스와 옥천매표소에서 시작하는 1개 코스, 총 4개의 코스가 있는데 각 코스의 특징이 뚜렷해 저마다 추천 코스가 다르다. 다소 가파르긴 하지만 주변 풍광을 두루 감상할 수 있고 박진감 넘치는 길이 1코스, 돌계단이 놓여 있는 다소 완만한 길이 2코스, 심심하지만 가장 오르기 편한 길이 3코스다. 반대편의 옥천매표소에서 오르는 코스는 화왕산 능선을 지나 산성에 이르기 때문에 시간은 걸리지만 트레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이런 장관에 사진을 안찍을 순 없겠죠?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절대 후회 안 할 비경
소심하게도 초행이라는 이유로, 나름 무난하다는 2코스를 택했다. 정상까지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는 얘기에 힘차게 첫발을 뗐다. 아직 초록도 조금은 남아 있는 터라 여름과 가을 사이를 걷는 듯하다. 갈대가 절정을 이루기 전이라 그런지 등산로가 호젓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면 자연스레 길이 넓어졌겠지만 아직은 울창한 모습 그대로다. 주차장에서 5분 남짓 걸으면 도성암(3코스)과 1,2코스로 갈라지는 길이 나오는데 1,2코스는 한동안 같은 길을 가다 삼림욕장에서 갈라진다. 다행히 2코스에는 돌과 나무로 만든 계단이 구간 구간 놓여 있어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중간에 작은 표지판으로 다음 코스까지의 소요 시간을 명시해놓아 산행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한참을 헉헉거리며 올라왔는데 시계를 보니 겨우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2코스를 완만한 길이라고 했는가. 중간에 제법 가파른 길도 있어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여름내 무성해진 수풀 탓에 어떨 때는 길도 보이지 않는데 이 길이 억새가 한창일 때는 줄을 서서 올라가야 하는 곳이란다.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보물 295호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40여 분쯤 올랐을까,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뒤를 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창녕읍이 보인다. 어느새 산 중턱까지 오른 모양이다. 그래도 위를 올려다보니 언제 저기까지 갈까 싶다. 게다가 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로프를 잡고 낑낑거리며 올라가야 할 정도로 급경사 구간이다(알고 보니 이 구간의 이름이 환장고개였다). 

그래도 한발 한발 힘겹게 걸음을 재촉하였다. 등산로 그림을 보니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힘을 모아본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환장고개 마지막 지점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시원해진다. 생각보다 싱겁게 모습을 드러낸 화왕산 억새들이다. 신기하게도 가는 동안에는 한 포기도 보이지 않던 억새들이 평원에 가득 차 있다. 

누가 이곳에 이런 광활한 분지가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 왜 창녕 사람들이 저마다 “올라가면 절대 후회는 안 할 것”이라는 말을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간다. 조금 다리를 쉰 뒤 억새평원 한가운데로 나아가보았다. 어른 남자 키를 훌쩍 넘는 길이에 리드미컬하게 펼쳐진 평원은 마냥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내친김에 억새밭을 가로질러 동문까지 가본다. 여기서 석성 아래를 따라가면 정상까지 이를 수 있고 동문을 통해 드라마 <허준> 세트장을 지나 옥천매표소로 하산을 할 수 있다. 아직 절정으로 물오른 갈대를 보기는 이른 계절이지만, 산성 안에 자리한 생각지 못한 풍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창녕의 또 다른 명물, 송이가 지금 한창이다.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산성 정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누군가 그랬다. 화왕산 억새평원을 보고 있으면 듬직한 독수리 등이 떠오른다고. 처음엔 그냥 웃어 넘겼는데 막상 그 평원을 마주하고 나니 상상력 한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으로 폴짝 뛰어올라 사뿐히 내려앉아도 될 것 같은, 마치 깃털처럼 폭신해 보이는 은빛 억새. 

손끝으로 살살 건드리면 가을이 피부 속 깊이 전해질 것만 같다. 물론 전국에 억새로 유명한 곳은 여럿 있다. 하지만 화왕산처럼 분지 형태의 광활한 억새평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화왕산성은 동쪽은 돌을 이용해, 서쪽은 흙과 돌을 섞어 지은 것으로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산성 인근에서 창녕진흥왕순수비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가야시대로 추정이 된다.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산성 정상 부근에서 본 창녕 읍내. 2008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이미 조선 전기에 폐성이 되었던 것을 임진왜란 중인 1595년에 다시 쌓았고 이듬해에 곽재우가 이 성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하면서 내성(內城)을 쌓았다고 한다. 성내에는 군창을 비롯해 샘 9개와 연못 3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중에서 산성 중앙에 자리한 연못 주위에선 많은 건물터가 발견됐고 연못 안에서는 호랑이머리뼈, 탄환도 다수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치열한 격전지였지만 지금의 억새평원은 그저 한가로울 뿐이다. 아마도 산성이 그 기능을 잃으면서부터 넓은 평원엔 억새가 우연히 생명을 틔웠을 것이고 생명력 강한 억새들은 차근차근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갔을 것이다. 

창녕군청 문화관광과 관계자에 따르면 “예전엔 연못 주변으로 갈대가 많았는데 차츰 억새가 자연 증식하면서 지금은 억새가 더 많아졌다”며, 그래서 매년 가을에 열리는 축제의 이름도 ‘갈대축제’로 37년 전 명칭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Tag
#창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