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서울] 빙벽등반은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폭포 위를 오르는 레포츠로 ‘겨울 등산의 꽃’이라고 불린다. ‘혹시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주저했다면, 여기 자연폭포보다 안전하고, 스릴은 더해진 실내빙벽장 ‘오투월드’가 있다.
“철컥, 철컥” 단단한 얼음절벽을 피켈(손도끼)로 있는 힘껏 내리찍는 소리다. 아이젠의 ‘앞발톱’을 빙벽에 꾹 눌러 박는 것이 다음 차례.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한 빙벽을 한발 한발 내디뎌 올라 어느새 정상 가까이에 왔다. 온몸의 무게를 지탱한 장비의 흔적으로 크고 작은 얼음 파편이 절벽 아래로 ‘후드득’ 떨어진다.
“하강할래요?” 빙벽 아래 확보자가 등반가의 위치를 확인하며 묻는다. 정상을 찍은 등반가의 “하강!” 외침과 함께 확보자는 로프를 느슨하게 풀기 시작한다. 로프에 매달린 채 몸을 늘어뜨린 등반가가 땅으로 내려온다. 열정의 입김이 얼음까지 녹일 듯 뿜어져 나온다.
이곳은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우이동 ‘오투월드’ 실내빙벽장, 영하 5℃의 커다란 얼음창고 안이다. 실내빙벽이 얼마나 높으랴 생각했다면 오산. 높이 20ｍ, 폭 13ｍ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세계 최대의 규모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살수기법(분무식으로 물을 뿌려 얼음을 만드는 기술)으로 한겨울 깊은 산 속에서나 대면할 수 있었던 얼어붙은 폭포의 위용을 제대로 재현했다.
빙벽장은 바깥 기온에 따라 영하 20℃까지도 떨어지는, 그야말로 냉동실이다. 두꺼운 파카를 여미고도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아이스맨’들은 티셔츠 하나 입고도 거뜬하다. 영하의 추위도 가뿐히 이겨내는 그들의 결의가 대단하다.
10분간의 휴식시간, 빙벽장 밖으로 나온 빙벽 동호회 회원들이 따뜻한 차를 건넨다. 헬멧을 벗고 장비를 풀고 보니, 예상보다 연령대가 높아 놀랐다. 날렵한 모습을 본지라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 이만한 비결이 없다고 내내 ‘빙벽 예찬론’이다. 서로를 가리키며 등산과 ‘얼음질’에 미친 사람들이라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인다.
유럽알프스 원정대와 K2 등반까지 다녀왔다는 조대행(의사·63) 씨는 수량, 온도에 따라 매번 다른 ‘빙벽 맛’에 반해 등반을 시작했다.
“빙벽의 매력은 ‘길의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죠. 몇 번을 오르내려도 아직 안 가본 길이 많거든요. 가고자 하는 대로 길이 생기고, 또 가지 못한 길이 무한히 생겨나는 셈이기도 하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인데 즐겁지 않을 리 있겠어요?”
빙벽의 매력에 대해서 논한다면 홍인주(주부·47) 씨도 빠질 수 없다. 특히 실내빙벽장이 생기면서 더욱 마니아가 되었다.
“자연 폭포는 피켈을 잘 못 찍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오르면, 폭포의 얼음이 깨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요. 이곳에서는 마음 놓고 찍을 수 있어 더 다이내믹하다는 장점이 있죠. 무엇보다 폭포가 얼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좋아요.”
오투월드 덕에 한겨울 폭포가 얼어붙는 3개월, 그것도 제한적으로 즐길 수 있던 레포츠를 언제고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실내빙벽은 초보자들도 한 달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다. 장비를 철저히 하고 실력에 맞는 그레이드를 타면, 다른 겨울레포츠에 비교해 특별히 위험하지 않다는 것.
처음엔 절벽의 위용에 주눅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두려움을 떨치고 빙벽을 오르는 순간부터 쾌감은 배가 된다. 5m, 10m, 15m로 거리를 조금씩 늘려 목표를 달성해가는 것도 실력을 쌓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