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국립산림과학원이 관리하는 1호 수목원 가을색을 입은 홍릉숲
국립산림과학원이 관리하는 1호 수목원 가을색을 입은 홍릉숲
  • 이융희
  • 승인 2013.1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서울 청량리에 위치한 홍릉숲은 국립산림과학원이 연구를 위해 조성한 시험림이다. 주말에만 문을 열며 17시(동절기 16시)까지만 개방한다. 직원의 70%가 박사님들이라고 하니 어쩐지 다가가기 어렵고 딱딱한 이미지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의 깐깐한 관리 덕분에 홍릉숲은 서울 시내에서도 시골 숲 같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오랜 세월의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재미있는 숲으로 자리 잡았다.


1922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1919년 남양주로 이장한 명성황후의 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서 이름도 홍릉수목원이다. 어느덧 9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누리고 있다. 

홍릉숲이 일반인의 출입을 허가한 것은 1993년부터였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아 야생의 모습을 간직한 20만 개체의 식물은 이제 체험 학습의 인기 코스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둘러볼 수 있는 홍릉숲은 전체 44만㎡ 규모 중 1/3이며 나머지 2/3는 허가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처음 홍릉숲에 들어가니 넓은 도로 좌우로 늘어선 무궁화가 반갑게 맞이한다.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는 색과 잎의 형태가 모두 달랐는데 강한 무궁화를 만들기 위해 품종을 개량하여 28종의 무궁화로 꾸며놓은 길이라고 한다. 화려한 색으로 꾸며놓은 수목원보다 외려 소박한 멋이 느껴졌다. 먼저 숲을 해설해줄 김순길 숲해설사를 만났다.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도토리 거위벌레의 알에 대해 설명해주는 숲해설가.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길 옆에 핀 옥잠화의 새하얀 자태.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특히 봄과 가을 숲이 예뻐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하루에 1000명이 넘을 때도 있어요. 평소엔 20명 정도가 해설을 듣는데 그 때는 30명이 넘기도 해요.” 홍릉숲은 새로운 사람보다 찾는 사람이 꾸준히 찾는 공간이다. 지하철역과 도심의 살풍경한 건물이 즐비한 도로에서 담벼락 하나만 넘으면 사람 두세 명이 지나다닐 한적한 숲길이 펼쳐지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난다.

해설을 들으며 걸어 올라가는데 족제비가 우릴 보다가 쪼르르 도망간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숲이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즐기는 비밀의 화원인 셈!

작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홍릉숲엔 특별히 이름난 숲길은 없다. 대신 약초원, 침엽수원, 관목원, 활엽수원 으로 분류해놓았다. 홍릉숲의 가을 분위기가 독특한 것도 이 덕분이다. 관목원에 한데 모인 관엽목이 가을철에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복자기단풍이 새빨갛게 물들고 은행나무가 노란빛으로 변한다. 길가엔 도토리가 가득하고 다람쥐와 청설모가 밤과 도토리를 먹기 위해 내려온다. 낙상홍은 빨갛게 열매를 맺고 꽃댕강꽃도 티 없이 맑고 새하얀 빛깔로 핀다. 코스마다 이야깃거리도 넘친다.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유일하게 전정하며 관리하는 조경수원.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작고 한적한 길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열매가 열린 모습을 볼 수 있다.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두통에 좋다고 해서 1926년에 두충나무 2그루를 가지고 왔어요. 2그루 중 앞에 나와 있는 것이 수나무고 뒤에 있는 것이 암나무인데, 2나무에서 나온 묘목을 전국 농가에 퍼뜨렸죠. 그러니 여기 이 나무가 전국 두충나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인 거죠.” 국내 최초의 임업시험장이었던 만큼 이런 역사적인 나무가 무척 많다. 현재 보유한 식물 종은 총 2035종이며 나무의 종류만 1224종이다. 1999년 조사한 자료라고 하니, 지금은 종이 훨씬 더 불었을 게다.


고종 황제가 목을 축였다던 어정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홍릉터가 나온다. 과거 명성황후의 능이 있던 자리엔 능을 지키는 표지판과 함께 그늘 아래 쉴 수 있도록 그루터기가 마련되어 있다. 명성황후의 능이 있었던 곳이라 하기엔 심심할 정도로 표지판 하나만 덜렁 남아 있다. 

역사적 장소라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하는 홍릉숲의 특징이 그대로 엿보인다.

잠시 그루터기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거짓말처럼 도시의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각종 새소리가 어우러졌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세상이 갑자기 아득히 먼 딴 세상 같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오붓한 숲길을 조용히 걷고 있노라니 실타래처럼 얽힌 바깥세상의 복잡한 고민거리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하다.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시와 숲의 경계가 확연하다.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고종 황제가 목을 축였다는 어정. 2013년 10월 사진 / 이융희 기자

“여기는 시험림이라 일반 관광지랑은 차이가 좀 있어요.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었는데 피크닉하는 기분으로 싸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자연 생태계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뜻인 만큼 협조해주시면 오래오래 잘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김순길 숲해설사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나무 곳곳에 해충 연구를 위해 설치한 망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야생화 사진을 위해서 표시해놓은 팻말을 밟고  넘어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단다. 

떠들썩한 관광지를 돌아본다는 마음보다는, 주말 아침  한적한 숲길을 여행한다는 느낌으로 찾는 공원 같은 숲. 남들보다 많이 보겠다는 욕심도 버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노니는 홍릉숲 산책, 어떠한가? 

INFO.
입장료 무료 
입장 시간  주말 10:00~17:00(동절기 16:00)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207  

Tip.
10:30, 14:00 2회(주말) 2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 숲 해설 프로그램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용도 변한다. 홍릉숲 방문 목적에 따라서도 유동적으로 숲 해설을 받을 수 있고 나무 이야기를 비롯해 숲에 사는 생물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