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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맛 따라가는 여행] 깊은 산골 순댓집, 강림 순대 “순대 먹고 싶어 서울서도 오고, 대구서도 오고”
[맛 따라가는 여행] 깊은 산골 순댓집, 강림 순대 “순대 먹고 싶어 서울서도 오고, 대구서도 오고”
  • 송수영 기자
  • 승인 2009.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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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순대 한 접시를 시키면 순대와 머릿고기가 함께 나온다. 이것만으로도 배가 든든하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횡성] 당신은 ‘순대’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습니까? 5000원짜리 순댓국밥 한 그릇 뚝딱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0분, 그러나 그곳까지 가기 위해 걸린 시간은 왕복 5시간. 그럼에도 굳이 그 먼 산골까지 찾아가고야 마는 순댓국밥 중독자들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순대를 처음 먹어본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시는지. 
나의 경우는 대학 입학 후이니 꽤 늦은 입문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 엄마 손잡고 갔던 동네 상가 안에 순대와 떡볶이를 파는 좌판이 있었는데, 그 곁을 지날 때마다 커다란 찜통 안에 둥글게 말려 있는 시꺼먼 순대가 솔직히 너무 못생겨서 싫었다. 하기야 못생긴 것으로 치자면 번데기도 못지않은데, 왜 유독 순대만 구박을 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강림순대 외관. 딱히 식당이라기보다는 보통 시골 여염집의 모습이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뒤늦게 맛을 들여 먹고는 있지만 여전히 순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편은 아니다. 떡볶이야 집집마다 맛이 제각기 달라 맛있다는 집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순대의 경우는 거의 평준화된 맛이 아닌가. 딱히 실패는 없지만, 그런 만큼 감동도 적다.

애초부터 순대에 대해 후한 평가를 갖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순댓국밥 한 그릇 먹겠다고 강원도 산골짝까지, 그 비싼 기름을 써가면서 굳이 찾아가는 사람들의 심사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졌다는 그곳은 강원도 강림이라는 곳의 ‘강림순대’. 듣자하니 서울에서도 오고 대구에서도 온다는데, 도대체 어떤 곳인가 싶어 순대 맛보다는 순전히 호기심에 찾아 나섰다. 

그러나 태생적인 길치인데다, 그 흔한 내비게이션도 없이 나서다보니 강림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하고 안흥 언저리에서 30~40분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때문에 행인이 보일 때마다 길을 묻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다들 그곳을 알고 있다(문제는 허공에 애매하게 가리키는 손짓이다).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다. 호기심은 갈수록 고조된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모처럼 서울서 왔다고 더 푸짐하게 썬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실례합니다.”
기척이 느껴지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창 바쁜 점심때가 지난 시간인지라 사방이 고요하다. 문 앞에 붙어 있던 ‘강림순대’라는 작은 푯말만 아니라면 그야말로 여느 시골집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방 안에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형광등 아래 할머니 두 분이 아랫목에 앉아 TV를 보는 둥 마는 둥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안쪽의 한 할머니는 부지런히 감자를 깎아대고 있다. 어느 분이 주인인지, 두 분이 다 주인인지, 아니면 두 분 다 잠시 마실 온 손님인지…. 잠시 당황하며 두 할머니 사이에 어정쩡 인사를 드렸더니, 함께 다 인사를 받는다. 

“취재 때문에 전화를 드린 <여행스케치> 기자입니다.” 
슬그머니 아랫목 화롯불 아래에 앉으며 말하는데 특별히 아는 체가 없다. 그 대신 감자 깎던 할머님이 “날씨가 이리 추운데요, 고상(고생)은 안 했드래요?” 한다. 기자나 손님을 맞는 모양보다 오히려 이웃 사람 맞는 듯하다. 그 말이 하도 정겨워 나도 취재가 아니라 시골 외할머니 방에 온 듯 일순 긴장이 풀려버렸다. 뭐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안 나고 그저 천장 귀퉁이에 걸린 큰 액자 속 사진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화롯불을 이리저리 뒤적이고만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각사각 감자 깎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돼지뼈 우려낸 물에 된장을 풀어 넣은 순댓국밥.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웬 감자를 그렇게 많이 까세요?”
“이래 깎아서 감자전도 하고, 옹심이도 하고 그랄 끼래요. 이거이 다 직접 밭에서 캔 긴데, 전분 사서 하는 거 아니라니께 더 쫀득쫀득하다 카대요.”
뽀얗게 살이 드러난 감자는 옹골차고 윤기 있어 보인다. 

“할머님이 여기 사장님이세요?”
“내가 했는데, 몇 년 전부터 딸내미보러 하라 하고 나는 한데 안 나가고 농사나 짓지 머.”
“할머니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하마(벌써) 16년 됐을 끼래요.”
옆에서 조용히 있던 할머니가 “여가요 유명해져 가주구 움메나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몰라”  하며 거드신다. 지금은 겨울이라 그래도 손님이 적지만 여름에는 하루 종일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꼭 주인장만이 아니라 마실 온 이웃집 할머니도 손을 놀리지 않고 감자를 까준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뭐 좋은 거 많이 넣으시나 봐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머이 비결이 있드래요. 옛날에 먹던 그대로 한 기지. 잔치집이랑 환갑집에서 먹던 음식 기대로요” 하는데 눈에는 슬쩍 웃음이 피어오르고, 그 옆으로 보조개마냥 주름이 파인다.

원래는 일반 가정집이었는데, 농사짓다 결국 빚만 지고 궁리 끝에 시작한 게 지금의 순댓집이란다. 식당이라고 해서 따로 점포를 낸 것도 아니고 그냥 사는 집에 작은 푯말 하나 붙였을 뿐이다. 손님이 오면 그 자리에 상 하나 펴면 그만이다. 안방이고, 건넌방이고, 마루고, 여름엔 마당까지 모두 손님 차지다. 100년도 더 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집은 특별한 치장도 없이 그렇게 식당과 살림집을 오가고 있다. 

식당이라고 해서 특별히 꾸미지 않았듯, 음식도 뭐 달리 할 것도 없이 그냥 잘하는 순대를 팔기 시작한 것인데, 이게 입소문이 난 것이다. 특히 “기양 장 엿고, 시래기 엿고 끼린(그저 된장과 시래기 넣고 끓인)” 순댓국밥은 최고의 히트 메뉴가 되었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강림순대를 알리는 푯말. 주변 상가도 없이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 서 있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할머니 뒤를 이어 사장님이 되신 막내따님이 들어오셨다. 따님을 보자마자 할머니는 먼 길 오셨는데 배고프시겠다며 어서 순댓국밥 내오라며 채근이시다.
바지런히 상 차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고대하던 순대가 나왔다. 얼핏 보기에도 흔히 먹는 순대보다 선지의 양이 더 많고 통통하다. 병천 순대보다 곱창 안 내용물의 가짓수는 많지 않은데 담백한 맛은 뒤지지 않는다. 치장할 줄 모르고 그냥 가진 옷만 깨끗이 빨아 입은 듯한 색시 같다고 할까. 아무튼 기본에 충실한 맛이다. 순대도 순대지만 그 주변으로 둘러쳐져 있는 머릿고기도 쫄깃하여 입  안에서 잘도 감긴다. 

뒤이어 나온 순댓국밥. 일단 눈으로 보기에 푸짐하다. 일반 순댓국밥이 돼지뼈 곤 육수로 만드는 데 비해 이곳은 집에서 담근 된장까지 풀어 넣어 국물이 노랗다. 주인장은 좋은 돼지뼈를 사기 위해 직접 돼지 잡는 곳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사온다고 한다. 그 사골을 하루 종일 우려낸 것이다. 맛을 보니 된장을 풀어 넣어 구수한데다 여기에 또 들깨가 듬뿍 들어가 잡냄새도 없고 고소하다. 큼지막한 깍두기까지 함께 풀어 먹으니 땀이 송글송글 솟는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직접 시래기를 말려서 사용한다. 집 앞에는 푸른 시래기가 길게 빨래처럼 널려 있다. 2009년 1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확실히 맛이 담백하고 깊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첫맛에 중독될 정도는 아니다. 쪽물 들인 치마저고리 입은 시골 처녀가 담박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반짝 입맛을 사로잡는 조미료가 빠진 순박한 맛은 그냥 물처럼, 무처럼 무덤덤하다. 

할머니에게 사람들이 멀리서까지 찾아오는 이유를 묻자 “다 내가 직접 길러서 만든 거라 믿고 먹으니까 제일 좋대요” 한다.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 그대로, 비결이라고 할 것도 없이 훤히 다 맛이 보이는 순댓국밥이다. 그러나 그리 알면서도 또 그 맛을 흉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파 하나, 시래기 하나, 들깨 하나 모두 할머니 손에 의해 여름 내내 고생하며 거둬들인 작물인 탓이다.

이 강원도 산골에서 그 복잡한 마케팅이니 소비 심리니 뭐니 하는 이론을 굳이 따졌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오직 있는 듯 없는 듯한 입소문 하나만으로 전국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순댓국밥 한 그릇에 5000원, 왔다갔다 기름값에 톨게이트비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그러나 불원천리 마다않고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식구 먹일 것처럼 손님도 대접하는 우직한 주인장의 마음이 그 국물 안에 함께 녹아 있지 않았다면 분명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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