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하남] 초록빛 차밭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차밭 하면 보성이나 하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다. 경기도 하남에도 녹차밭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일 년 365일 초록세상을 만날 수 있는 녹차특구 티벨트다.
차, 이제 생으로 먹는다
“경기도에도 녹차밭이 있다? 없다?” 이 생뚱맞은 퀴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것도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는 경기도 하남에 있다고 하면 더더욱 못 미더워하는 눈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하동이나 보성의 드넓은 차밭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오늘 찾아가는 티벨트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하우스녹차재배단지로, 일 년 내내 무공해 녹차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다.
티벨트에서 재배하는 차는 음용차가 아닌, 생으로 먹는 채소녹차다. 말 그대로 녹차를 생으로 섭취할 수 있다는 얘기. 최정수 대표는 화훼농가를 운영하다 우연한 기회에 채소녹차의 가능성을 알고 재배를 시작했단다.
“녹차처럼 좋은 식재료는 제대로 재배해, 제대로 섭취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요. 녹차가 몸에 좋은 건 알지만 워낙 마시는 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생으로 먹는다는 생각은 안 한 겁니다. 맨 처음 식용 생녹차를 재배한다고 하니 다들 비웃었지요. 따서 바로 먹으려면 일단 깨끗한 환경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그때까지 그런 재배법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최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농약과 화학비료에 노출된 토양의 개량이었다. 3~4년간 땅을 놀린다 하더라도 토양 속 농약이나 중금속은 결코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티 벨트의 녹차들은 개량된 흙을 60cm 이상 쌓아올린 땅에서 재배하고 있다). 여기에 하우스에서 재배를 하니 비를 통해 옮겨지는 각종 공해물질 등을 막을 수 있었다. 하우스에서 자라는 녹차나무는 최 대표가 개발한 방식으로 재배해 찻잎의 크기를 조절하고 특유의 떫은맛을 줄였다.
새순 하나를 따 먹으니 첫맛은 약간 떫고 뒷맛은 고소하다. 이 정도 떫은맛이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겠다 싶다. 식감 역시 연한 편이다.
아기순녹차는 생으로도 먹을 뿐만 아니라 고기나 회를 먹을 때 한 장씩 곁들여 먹으면 식중독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기순보다 더 자란 잎은 갈아서 녹차원액으로 사용한다. 이 원액은 비누나 화장품을 만들거나 마사지를 할 때 사용한다.
서울 천호동에서 왔다는 주은이는 아기순녹차라테를 더 먹고 싶다며 엄마를 졸라댄다. “아이들이 녹차가 들어간 빵이나 음료라고 하면 무조건 질색을 했는데 오늘 맛본 라테는 금세 한 잔을 비웠다”면서 주은이 엄마 역시 무척 신기해하는 눈치다. 방금 밭에서 따온 녹차를 그 자리에서 갈아 만들었으니 그 맛과 영양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일 년 내내 차밭을 만날 수 있는 곳
매장과 연결된 하우스에 들어서니 후끈한 기운이 느껴진다. 본래 녹차는 난대성식물이라 겨울에 노지에서는 재배가 안 되지만 이곳에서는 일 년 내내 재배가 가능하다. 일반 가정에서 키울 수 있는 녹차나무도 살 수 있어 가족들의 건강에 신경을 쓰는 주부들로부터 반응이 좋단다. 간혹 진짜 유기농이 맞느냐며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최 대표의 대답은 딱 하나,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넓은 차밭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에게 티벨트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껏 돌아다니며 유기농 찻잎을 따 먹고 이를 이용한 음식과 음료를 맛보다보면 어느새 녹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또 여름과 가을에는 하우스 주변으로 수생공원을 만들어 쉬었다 갈 수 있게끔 배려했다. 녹차나무 심기, 비누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