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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 유적 ⑧] 시내 한복판 로마네스크풍 십자가 빌딩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도심 속 숨은 문화 유적 ⑧] 시내 한복판 로마네스크풍 십자가 빌딩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3.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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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서울에,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어?’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그중에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본다면 입을 다물지 못하는 곳이다. 시청 바로 건너편에 명동성당 크기의 아름다운 성당이, 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학은 얼추 알아도 대한성공회는 잘 몰랐다. 나만 그랬나? 하여간 나는 그랬다. 어릴 적 <주말의 명화>에서 본, <천일의 앤> 같은 영화에서 헨리 8세가 이혼하려다 교황이 허락해주지 않자 열 받아 세운 것이 ‘성공회’라는, 성공회 신부님이 들으시면 대경실색할 거두절미 단편  지식밖에 없었던 때다(나중에야 성공회가 종교개혁의 물결 속에서 탄생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도 모를 수밖에. 시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서 몇 년 동안이나 직장 생활을 했건만, 지척에 이런 곳이 있는 것을 모른 채 야근에, 특근에, 휴일 근무로 코를 박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자그마한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다 10m 앞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별세계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웅장한 화강암 건물이 기와지붕을 머리에 얹고 기도하듯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라고 소개했다. 별명은 서울대성당. 신도들이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란다.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대한제국의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던 경운궁 양이재.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식민지 모던 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황금 제단화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똥침’을 날리는 고딕 양식의 명동성당과 달리,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낮은 포복으로 편안한 자세다(이게 바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 중 하나란다). 그러면서도 나 같은 건축 무식쟁이가 언뜻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긴다. 더구나 이미 35년 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될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짓기 시작해 4년 뒤에 완공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부님과 신도들이 오가는 예배당인지라, 남의 종교 시설을 기웃거리는 것이 조금 불편해 주뼛거리고 있는데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머리 희끗한 신부님이 편하게 구석구석 둘러보라 하신다.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본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다른 관람객 몇이 두리번거리고 있다. 용기백배, 편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높은 천장과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저 멀리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모자이크 제단화다. 오홋, 이거 유럽 여행에서 봤던 몇백 년 된 성당의 황금 모자이크 제단화랑 똑 닮았다. 안내 데스크에서 받은 팸플릿을 보니 영국 장인이 11년에 걸쳐 ‘시실리 전통’에 따라 만들었단다. 그래,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 제단화가 이런 모습이었어. 이걸 완성한 것이 1938년이었다니, 식민지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을 법도 하다. 

제단화 옆으로는 우아한 나무의자가 하나 있다. 예배 중에 현직 주교가 앉는 주교좌란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서울주교좌성당이었던 것. 대한성공회에 한국인 주교가 탄생한 것이 1965년. 1890년 개항한 인천을 통해 처음 성공회가 전파된 지 75년 만의 일이다. 제단화 맞은편, 그러니까 본당 입구 바로 위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 같은 우아하고 커다란 파이프오르간이 자리 잡고 있다. 예배 시간뿐 아니라 가끔은 독주회 같은 것도 연다니 그때 다시 방문하리라 마음먹었다.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주교관 바로 앞에 있는 6월민주항쟁 기념비.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경운궁 양이재 앞 민주화 기념비
본당을 둘러보고 ‘세례자 요한 성당’이라는 이름의 지하성당으로 향했다(이 또한 친절한 신부님의 안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한성공회 3대 교구장이었던 조마가 주교의 유해가 바닥에 잠들어 있다는 지하성당도 아담하니 좋았지만, 거기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 또한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를 먹여 살리고 있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성 가족 성당의 나선 계단을 닮았다. 굳이 스페인까지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계단을 볼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이곳에도 자그마한 파이프오르간이 있어 매일 아침저녁 예배 시간에 연주된다고.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본당 안은 여느 성당과 마찬가지로 높은 천장과 좌우의 기둥, 천장의 등이 눈길을 끈다.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내부 탐사를 얼추 마치고 기왕 내친걸음으로 바깥까지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성당 입구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옆으로 그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은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이곳의 이름은 경운궁 양이재. 경운궁이란 덕수궁의 원이름이다. 양이재는 대한제국기에 경운궁에 지은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단다. 원래는 이곳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있었는데, 성공회에서 매입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도 덕수궁이었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조선의 궁궐이 수난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덕수궁도 규모가 절반 이상 줄었다는데 건물을 보니 실감이 난다.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화강암에 붉은 기와를 이고 선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커다란 십자가 모양의 건물이다.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성당 바로 옆에는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성가수녀원이 있다. 2013년 7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공회 성당 뒤에 경운궁 양이재라. 이것만 해도 우리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데, 양이재 옆 건물 앞에 6·10민주항쟁 기념비까지 있다. 이곳은 성공회 주교관인데 6·10 항쟁 당시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재야운동가와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에는 성공회성당이 기독교계 학생 들의 만세운동 거점이기도 했다니, 단순히 건물뿐 아니라 공간 자체가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유적지인  셈이다. 
아름다운 건물에 켜켜이 쌓인 역사. 시청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잠시 짬을 내 성공회 서울대성당에 들러보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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