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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명사와의 여행] 허영만 화백과 함께 하는 일본 규슈 가라쓰 시 가라쓰에서 조선을 되돌아보다
[명사와의 여행] 허영만 화백과 함께 하는 일본 규슈 가라쓰 시 가라쓰에서 조선을 되돌아보다
  • 송수영 기자
  • 승인 2012.1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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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월 사진 / 구완회, 송수영
2013년 1월 사진 / 구완회

[여행스케치=일본]  허영만 화백이 일본 규슈의 가라쓰(唐津) 지방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듣고 수소문 끝에 은근슬쩍 발을 걸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식객>, <꼴>에 이어 최근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까지 발간하며 쉼 없이 달려온, 그야말로 ‘펜을 내려놓지 않는 만화가’ 허영만 화백과 함께 3박 4일의 두근거리는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길 내내 역시 그의 손에서 펜과 스케치북이 함께 했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활기 넘치는 가라쓰쿤치 축제.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열기 가득한 축제의 현장

사가 현 가라쓰 시(唐津市)는 일본 규슈의 관문인 후쿠오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도상으로 보면 우리나라와 대마도를 사이에 두고 현해탄에 면해 있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 최단의 물길이었던지라 우리와의 인연이 깊고 유구하다. 그 이름에서부터 중국과 한반도를 가리키는 ‘가라(唐)’에 그곳으로 가는 ‘나루(津)’가 아닌가.  

오늘날 가라쓰 시내 곳곳의 공공 간판에 한글 안내가 눈에 띄고, 가라쓰 사람 대부분이 ‘친구’라는 말을 우리와 똑같은 발음과 의미로 사용하는 등의 예는 필시 보이지 않는 역사가 실체적으로 드러나는 한 단면일 게다.

또 가라쓰 시는 여수시와 30년이나 오랫동안 자매결연을 맺어와 지난 여수엑스포에 참가할 정도로 관계가 돈독하단다. 그러고 보니 허영만 화백의 고향이 여수라 반가움이 더 크다.  

가라쓰는 인구 13만 명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지만, 여행 내내 알면 알수록 꽤 저력이 단단한 도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여행 첫날 운 좋게 볼 수 있었던 가라쓰 최대의 축제 ‘가라쓰쿤치(唐津くんち)’는 그 역사나 행사 규모 면에서 단연 대표할 만하다. 매년 11월 2~4일 총 사흘간 펼쳐지는 이 축제는 약 40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총 14개 지역에서 각자 마을을 상징하는 가마를 끌고 시내 곳곳을 도는데, 참가자들의 거대한 함성과 북, 피리 등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기간 내내 그야말로 열기가 엄청나다. 처음 말로 들었을 때는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었으나 막상 현장에서 보면 ‘축제’라는 것이 구성원의 카타르시스를 분출하고 해방감을 주며 정화를 이룬다는 원론적인 정의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축제 기간 동안 시내 곳곳엔 흥을 돋우는 포장마차가 가득하고, 피날레 마지막 날에만 가라쓰 인구의 두 배가 모여들어 골목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축제 기간 동안 시내는 그야말로 노점의 천국이 된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마침 겨울을 재촉하는 장대비가 내려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악조건이었음에도 축제의 열기는 막지 못했다. 추위에 빨갛게 볼이 달아오른 어린 초등학생까지 목청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이 축제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우선 ‘쿤치’라는 이름 자체가 일본 내에서 전혀 통용이 되지 않는 언어이다. 축제의 명칭으로 ‘쿤치’라는 이름이 쓰이는 곳은 오직 규슈의 나가사키와 가라쓰가 유일하다. 이곳 사람들은 ‘쿤치’의 어원이 우리말의 ‘큰 잔치’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단다. 가마꾼들이 외치는 구령도 보통 타 지역에서 ‘왓쇼이(ワッショイ)’가 일반적인데 비해 이곳은 ‘엔야, 엔야(エンヤ エンヤ)’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뱃노래의 흥을 돋우는 가락 ‘에이야 에이야’와 듣기에 별반 차이가 없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축제 기간 동안 집집마다 음식을 성대하게 차리고 사람들을 불러 양껏 먹이는 오랜 전통이다. 성대하게 벌이는 집은 3개월 치의 식량을 3일에 먹어치운다 할 정도로 그야말로 ‘큰 잔치’다. 집집마다 대문도 활짝 열어놓고 내내 손님이 들락거리는 풍경은 일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전통일뿐더러 심지어 우리의 시골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풍습이니, 마치 잃어버린 동생을 먼 타국 땅에서 만난 느낌이랄까, 생경하면서도 반갑다. 

우리도 400년 전통 가문이라는 고지마(小島) 씨의 집에 초대를 받아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진 가라쓰 음식을 대접받았다. 허영만 화백은 답례로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한잔하고 있는 <식객>의 성찬을 그려 주인에게 선물하였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도자기 전시관 감상.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여전히 조선 도공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도기 문화가 발달한 일본 내에서도 특별히 3대 다기로 손꼽히는 것이 교토(京都), 하기(萩-야마구치 현 북쪽에 있는 도시), 그리고 가라쓰 도기이다. 서일본(西日本) 지역에서는 아예 도자기의 대명사로 ‘가라쓰  것(からつもの)’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였다고 한다. 

가라쓰가 이처럼 도기로 유명세를 떨친 데는 조선 도공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임진왜란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이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이 가라쓰였던 지리적 요건과 무관하지 않을 터. 가라쓰 도기는 유독 흙의 질감이 도드라지는 수수한 색조에 소박함과 자연미가 특징이다.   

그런고로 가라쓰 여행에선 전통 도자기 전시관 관람을 빼놓을 수 없다. 가라쓰 시내 60여 곳에 전시관과 공방이 산재해 있어 이를 목적으로 탐방하는 이들도 있단다. 그중에서 우리가 찾은 곳은 규모가 크고 유명한 나카자토 다로우에몬(中里太     右衛門)이라고 하는 도예가의 전시관이다. 

<아사히일본역사인물사전>에 따르면 그 시조는 조선 반도에서 건너온 인물로 추정되며 일찍이 왕실에 도기를 봉납하는 도공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나카자토 가문이 가라쓰에 자리를 잡은 것은 5대 선조 때로, 현재 14대에 이르고 있다. 대대로 이들의 명성은 대단하여 12대는 인간 국보로 추대되었고 13대는 예술가의 드높은 영예라 할 수 있는 예술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전시관은 일본 전통 가옥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데 잘 손질된 정원과 그 위를 지나는 회랑 등이 꽤 운치 있다. 그러나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상품 앞에 살짝 놓여 있던 가격표. 커피 잔이 1만5000엔, 오목한 접시가 2만1000엔이고, 우리에게 대접차 내온 말차 다기는 무려 50만 엔짜리였다. 그런 지경이니 가격조차 묻기 겁나는 오랜 선조의 작품은 행여나 가방이나 옷깃이 닿아 깨질세라 내내 조심스럽다.

가라쓰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조선 도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최근에는 한국의 도예가들이 이곳으로 연수를 받으러 오기도 한단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나고야 성터 안에는 일본 전통 다도를 즐길 수 있는 찻집 ‘가이게쓰(海月)’가 있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임진왜란의 출병 기지 나고야 성
일행은 널찍하고 깨끗하게 정비된 연못을 지나 벚나무가 굵은 가지를 펼치고 도열해 있는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일본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아름드리 고목이 많다는 점은 큰 부러움의 하나이다. 전란이 없었던 나라의 축복스러운 징표다. 이른 아침 청명한 새소리의 둥근 파문이 멀리까지 퍼진다. 

 “왜적들이 타고 온 배가 대마도로부터 부산포 앞에 이르는 바다를 가득 메워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절영도로 사냥을 나갔던 부산 첨사 정발은 왜적의 침략을 보고받자 허겁지겁 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적은 이미 상륙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고, 성은 삽시간에 함락되고 말았다.”  서애 유성룡 <징비록> 

심지어 좌수사 박홍은 그들의 세력에 기가 질려 군사도 움직여보지 않은 채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임진왜란의 서막이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나고야 성터 아래로 빽빽하게 진을 쳤던 각 다이묘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바로 그 전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1591년) 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미 출병 준비를 마치고 이곳 가라쓰로 전국 막부의 다이묘(大名)와 군사들을 결집시켰다. 불과 인구 1500명의 작고 조용했던 마을에 갑자기 30만8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이들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도요토미는 약 17만m²에 이르는 거대한 성을 쌓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불과 5개월 만에 엄청난 기세로 성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나고야 성(名護屋城)이다. 

도요토미는 당초 전초기지로 하카타, 그러니까 지금의 후쿠오카를 염두에 두었으나 앞서 말한 대로 조선과 가장 최단 거리라는 점, 성에서 해안선이 훤히 내려다보여 감시가 용이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가라쓰를 최종 낙점하였다. 성 아래로는 각 다이묘들의 진이 구축되었는데 그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들여다보니 우리에게도 익숙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고니시 유키나가 등 면면의 이름이 눈에 띈다.

나고야 성은 도요토미 사후 도쿠가와가 정권을 잡자 성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허물어버려 현재는 돌담 형태로만 남아 있다. 이들도 전쟁의 상처를 빨리 잊으려 했음일까? 

1980년대 말 한국에서 사학을 전공하여 우리말에도 꽤 유창하였던 이번 여행의 가이드 고가 씨는 긴 설명 끝에 “그렇게 엄청난 숫자의 군사를 이순신 장군이 물리쳤으니 참 대단한 거죠”라고 덧붙인다. 과연 난세는 영웅을 탄생시켰으나, 영웅의 일생도, 시대적 상황도 실로 뼈아프다. 400여 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상처는 아물지 못하였는가. 충신 유성룡은 <징비록>의 말머리에 “매번 지난 난중(亂中)의 일을 생각하면 황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알지 못해왔다”고 속내를 밝히고 있다. 

유적지 안에 임진왜란과 관련된 사료가 풍부하다는 나고야 성 박물관이 있으나 내년 3월까지 보수 공사라 내부를 감상하지 못했다. 가라쓰를 여행한다면 꼭 한번 들러봄직하다.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2013년 1월 사진 / 송수영

최고의 사치 료칸 여행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화살에 날개까지 달아놓은 듯 흘러 어느덧 일정의 마지막 날에 접어들었다. 이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스케줄을 마치고 서둘러 새로운 숙소로 향하였다. 허영만 화백이 평소 일본 여행의 즐거움으로 식도락 기행과 더불어 료칸에서의 편안한 휴식을 꼽았던바, 지금 향하는 곳이 가라쓰에서 첫손에 꼽히게 유명한 전통 료칸 요요카쿠(洋   閣)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료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료칸을 만끽하는 여행 상품이 꽤 인기를 끌고 있다. 

요요카쿠는 창업 119년에 이르며 현재의 자리에서 100년, 4대에 걸쳐 오늘에 이어 내려오고 있다. 건설 당시 최고의 자재와 장인들의 솜씨가 집약되었음이 한눈에도 느껴지는 건축물에 실내에 놓여 있는 가구 하나하나까지 빈틈이 없다. 여기에 수백 년이 된 금송 등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잘 설계된 정원이 어우러진다. 이곳의 주인인 오코우치 아키히코(大河內明彦) 씨는 “창문 발 하나도 장인의 제품이다”라고 말한다. 

요요카쿠에는 명사들의 방문도 줄을 이어 프랑스 장자크 아노 감독은 “도쿄의 제일 좋은 호텔보다 이곳에서 더 일본의 정취를 느꼈다”라고 찬사를 하였고 도올 김용옥 선생도 두 번이나 방문을 하였다고 한다. 

료칸 여행 최고의 즐거움은 저녁 식탁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특별히 이곳의 안주인인 오코우치 하루미(大河はるみ) 씨는 규슈 내에서 처음으로 샤부샤부 요리를 도입하여 일찍이 손님들께 대접해왔다. 최고급 가라쓰산 쇠고기에 그녀가 개발한 특제 소스가 어우러진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 

“지난여름에 여수엑스포에 가서 맛있는 음식 많이 먹었어요. 여수 장어 샤부샤부 드셔보셨죠?”

또박또박한 우리말로 안주인인 오코우치 하루미 씨가 허영만 화백에게 묻는다. 가라쓰에 못지않게 여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맛의 고장인바, <식객>의 대부 허영만 선생과 맛에 대한 이야기가 밤늦도록 꽃을 피웠다. 

INFO.
축제 일정 매년 11월 2~4일 

INFO. 나카자토 다로우에몬 전시관 
주소 佐賀   唐津市町田3-6-29 개관 시간 9:00~17:30(12월 30일~1월 4일 휴무) 문의 0955-72-8171

INFO. 주소 佐賀    唐津市    西町名護屋1938-3 입장료 100엔
입장 시간 9:00~17:00(12월 29일~1월 1일 휴무)

INFO. 주소  佐賀    唐津市東唐津 2-4-40
요금 1인 1만7850~4만2000엔(아침·저녁 식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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