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자전거 타고 한강 여행] 서리서리 물 흐르던 곳, 반포천 빡빡한 아파트 숲 사이 진짜 숲길   
[자전거 타고 한강 여행] 서리서리 물 흐르던 곳, 반포천 빡빡한 아파트 숲 사이 진짜 숲길   
  • 김대홍 기자
  • 승인 2009.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김대홍 기자
반포천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는 시민들. 사진 / 김대홍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서초동, 역삼동, 논현동 등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를 유유히 흐르는 반포천. 그러나 반포천의 가치는 비단 높은 땅값에 있지 않을 것이다. 획일적이고 딱딱해 보이는 도심에 천금과도 같은 값진 여유를 선사하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 남쪽 강남구 반포동을 흐르는 개천이 반포천이다. 사람들은 천이 서리서리 흐른다면서 서릿개(반포, 蟠浦)라고 불렀다. ‘서리서리’는 연기 따위가 자욱하게 올라가는 모양을 말한다. 아마 안개가 자주 낀 모양을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반포(蟠浦)는 이후 반포(盤浦)로 변했다. 반(盤)은 쟁반, 받침이라는 뜻도 있지만 ‘서리다’는 뜻도 품고 있다. 오랫동안 쓰인 서릿개라는 이름은 이렇게 반포로 바뀌었다.

사진 / 김대홍 기자
빡빡한 도로 옆을 흐르는 반포천. 사진 / 김대홍 기자
사진 / 김대홍 기자
반포천 제방길의 이름을 알리는 간판. ‘콧노래 나오는 길’에서 진짜 콧노래를 불러보시길. 사진 / 김대홍 기자

서릿개는 다시 한 번 나타날 뻔했다. 이 지역을 지나는 지하철 9호선 역명이 서릿개역으로 잠정 결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주민 6700여 명이 서릿개라는 이름이 욕설처럼 비쳐질 수 있고, 물건을 훔치는 ‘서리’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이름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서릿개역’은 ‘구반포역’으로 바뀌었다.

우면산에서 시작한 천은 서초동과 역삼동 논현동 등 서울에서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곳만 골라서 흐르다 사당천에 합류한 뒤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대략 5km 정도 되는 짧은 천이다. 절반은 복개됐고, 절반은 미복개 상태였다. 그나마 죽은 하천이나 마찬가지였다.

악취는 심했고, 모기들이 극성을 부렸다. 인근 지역 학생들이 모기 때문에 치마를 입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그렇게 외면을 받던 하천은 2004년경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수질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미복개 지역에 산책로를 만들었다. 결과는? 서울에서 산책하기 좋은 길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사랑받는 길이 됐다. 그 길을 찾아간다.

사진 / 김대홍 기자
음표 모양으로 된 반포천 울타리. 사진 / 김대홍 기자

콧노래 나오는 길, 나무가 벽과 지붕을 이룬 곳
동작역이나 고속터미널역에서 나오면 바로 산책로로 이어져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접근하기가 참 좋다.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그곳까지 갔다. 한강이 보이는 동작역에서 시작한다. 동작역에서 반포천 방향으로 나오면 잘 닦인 길이 나타난다. ‘허밍웨이’라고 이름판이 입구에 붙어 있다. 처음엔 ‘헤밍웨이’라고 읽었다. 헤밍웨이와 반포천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다시 한 번 읽고서야 잘못 읽은 것을 깨달았다.

허밍웨이(Humming Way)란 콧노래가 나오는 길이란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콧노랫길 정도 되겠다. 콧노래가 나오는 상쾌한 길이라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이 길에선 오토바이는 물론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를 탈 수 없다고 돼 있다. 어이쿠, 자전거에서 내려서 살살 끌고 간다. 자전거는 사람이 타면 ‘차’지만, 내려서 끌면 ‘보행자’ 취급을 받는다. 건널목에서 자전거를 끌고 건널 수 있는 이유다.

사진 / 김대홍 기자
울창한 나무 그늘 사이로 난 반포천 자전거길. 열기가 한결 누그러진다. 사진 / 김대홍 기자

이름처럼 길이 상쾌하다. 반포천길 주변으로 나무가 울창하다. 숲 속에 난 길이다. 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며 걷는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이들이 많다. 자전거전용 옷을 갖춰 입은 이도 있고, 일상 옷을 입은 어르신도 있다. 보행자들은 개념치 않는다. 안내표지판엔 자전거를 타지 말자고 돼 있지만, 오래전부터 자전거와 보행자가 반포천길을 나눠 쓰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수나루터 표지판이 보인다. 옛날 반포리, 사평리(현재 반포동, 잠원동)에서 이수를 건너 삼남대로(현재 동작대로)로 오갈 때 건너던 간이나루터로 배물다리(이수교)가 있었던 곳이란다.
사람들이 참 많이 걷는다. 마실 나온 분들, 지하철역 가는 분들, 운동하는 분들… 참 다양하다. 5월 햇살이 뜨겁지만 반포천길 나무는 뜨거움은 쏙 받아 안고 시원함만 전한다. 시골 정자나무 한 그루가 에어컨 몇 십 대와 맞먹는다고 하던가. 

한쪽 울타리 모양이 음표다. 쉼표, 높은음자리표, 샤프(#) 모양이 줄줄이 나온다. 콧노랫길이라는 ‘허밍웨이’를 상징하는 모양이다. 문득 음악시간이 지긋지긋하던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학창시절 수학만큼 싫어했던 과목이 음악이었다. 음계를 높이고 낮추는 것을 배웠는데, 수학만큼, 아니 수학보다 더 어려웠다.

선생님께선 음계 이동을 가르치는 수업시간엔 문제를 내고 아이들을 줄을 세웠다. 문제를 푸는 아이는 자리에 앉게 하고, 못 맞추는 아이는 매를 맞았다. 그러곤 다시 줄에 들어갔다.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해답을 찾지 못하면 또 매를 맞아야 한다. 수업시간 50분이 왜 그렇게 길었는지. 공포의 음악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반포천길 울타리를 만드는 데 지자체와 주민들이 함께 돈을 나눠 냈다는 점이다. 반포천 산책로 울타리는 아파트 울타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억2300만원이라는 공사비를 구청이 75%, 인근 아파트 주민이 25%를 냈다. 아파트 주민들이 울타리에 느끼는 정이 좀 더 두터울 것 같다.

사진 / 김대홍 기자
올 11월이면 만날 수 있는 생태관찰로.  사진 / 김대홍 기자

프랑스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 반포천 옆 서래마을
이따금씩 동식물을 다룬 안내글이 나와 눈길을 붙든다. 첫눈에 띈 안내글은 ‘발에 밟힌다고 잡초가 아니에요’다. 먼지가 잔뜩 묻은 안내글을 찬찬히 살펴봤다. 잡초들에도 이름이 있단다. 이것은 원추리, 저것은 별부채, 또다른 저것은 매발톱이다. 이름들이 예쁘다. 원래 이름이 있는 것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붙인 이름이 잡초다. 무지가 만든 폭력인 셈이다.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무심코 폭력을 휘두르고 있을 것이다. 발길을 옮긴다.

몇 십 분을 걸었을까. 반포천길 아래 반포천에 눈길을 두니 기사들이 무언가를 재고 있다. 반포천 생태관찰로 및 휴식공간을 만드는 중이란다. 지금 반포천길은 반포천 윗길이다. 생태관찰로는 반포천이 흐르는 곳 바로 옆에 길을 만든다는 뜻이다. 반포천에 사는 물고기 풀, 곤충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길을 만든다는 것. 올해 4월 14일 시작해 10월 31일 완공이다.

생태관찰로 예정로로 내려간다. 흙탕길이다. 전날 내린 비로 주변이 축축하다. 조심조심 걷는다. 그때 눈에 들어온 동그라미. 100원짜리다. 이런 횡재가. 

지압길이 나온다. 살짝 걸어본다. 약간 따끔거리면서도 올라오는 시원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지압길을 보면 꼭 드는 생각이 있다. 지압길 100m 달리기 대회를 열면 어떨까. 온갖 인상을 쓰면서 달리는 사람들 얼굴이 볼만할 텐데…. 다른 사람 고통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는 것일까.

중간에서 길이 끊어졌다. 공사로 일부 구간을 막았다. 지난해 10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막는 기간이다. 옆으로 방향을 트니 반포종합운동장이 나온다. 육상트랙, 농구장이 있는 시민체육공간이다. 자전거를 타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잘 달리다가 갑자기 비틀하는 분들이 있다. 아직 자전거가 서툴다. 그러나 운동장에서 열심히 타다 익숙해지면 자전거전용도로도 달리고 차도도 달릴 것이다. 멀리 날기 위해 둥지에서 뛰어내리는 연습을 하는 새끼새 같다.

사진 / 김대홍 기자
서울 안에서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서래마을도 반포천의 이웃이다. 사진 / 김대홍 기자

끊어진 길은 반포종합운동장 한쪽 끝에서 다시 이어진다. 잠깐 옆길로 새어볼까. 서래마을로 가보자. 반포천에 접해 있는 서래마을은 서리서리 흐른다 해서 서릿개로 부르던 옛 반포천 이름을 품은 동네다. 지금은 프랑스마을로 유명하다.

이곳 보도블록색은 파란색, 흰색, 빨간색이다. 바로 프랑스 국기를 뜻한다. 프랑스 빵맛을 제대로 낸다고 소문난 파리크루아상, 프랑스학교를 비롯 ‘카페 몽마르트르(Cafe Mont martre)’, ‘도쿄 투르 뒤 뱅 서울(Tokyo Tour du Vin Seoul)’, ‘프렌치 아시안 와인 하우스(French Asian Wine House)’ 등 프랑스풍 가게가 많다. 서래마을 끝까지 가면 나오는 언덕길은 몽마르트르길, 인근 공원은 몽마르트르공원이다. 지난봄엔 개나리가 아주 흐드러지게 피었다.

발길은 다시 반포천으로 이어진다.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들이 우뚝하다. 지금도 계속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아파트들이 성처럼 둘러싼 동네에서 나무가 둘러싼 반포천길은 다른 동네 같다. 빡빡한 아파트숲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자연공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쉬엄쉬엄 가도 2km는 짧다. 물 한 모금 마쉬고 인근 고속터미널역에 자전거를 싣는다. 자전거를 접고 접어서 한 쪽 팔로 든다. 영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