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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숨겨진 해변] 충남 안면도 쌀썩은여 숨겨진 비경, 조용한 해변이라면 바로 이곳! 
[숨겨진 해변] 충남 안면도 쌀썩은여 숨겨진 비경, 조용한 해변이라면 바로 이곳!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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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충남 안면도 쌀석은여.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안면도] 그 바다에 난 생채기는 어느샌가 나았다. 흉이 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안면도의 숨겨진 해변인 ‘쌀썩은여’에는 유리처럼 맑은 물과 평온한 고요가 다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굴이며 방게들이 치열한 삶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살아 있는 바다’였다. 

조선 말기, 전라도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쌀을 운반하던 감독관이 쌀을 빼돌리다 바닥을 드러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감독관들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암초가 가득한 해변에 일부러 배를 부딪쳐 침몰시켰다. 배에서 쓸려나온 쌀이 해변에 가득히 쌓여 그대로 썩었다.  

일부러 배를 침몰시키지 않더라도 이 근방엔 바람이 잦고 암초가 가득해 조공 배들이 수없이 좌초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 태조에서 세조 때까지 60년 동안 안흥항에서 선박 200여 척이 풍랑으로 침몰해 1200명이 숨지고 쌀 1만5800섬이 바다에 빠졌다’고 적어놓았다. 그래서 이 해변의 이름을 ‘쌀썩은여’라고 붙였다. ‘여(礖)’는 물 속에 잠겨 있는 바위나 작은 암초를 뜻한다. 

2007년엔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싣고 가다가 좌초된 배가 발견되었고, 얼마 전엔 쌀썩은여에서도 청자가 발견되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배가 이 부근에서 가라앉았는지를 예상해볼 수 있는 일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물이 빠지면 갯바위 사이로 굴이며 바지락이 지천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배가 많이 좌초되는 해변이라더니 2년 전엔 결국 사건이 터졌다. 희대의 기름유출 사건으로 쌀썩은여에도 쌀 대신 기름이 가득 찼었다. 하지만 그 생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마음을 모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완전히 제 색깔을 되찾은 해변은 다시금 ‘숨겨진 보석’으로 되돌아왔다. 

샛별해수욕장에서 길을 잃었다. 지도에 나온 대로 언덕배기를 넘어가려 하니 도무지 이건 차가 다닐 길이 아닌 것 같다. 차를 돌려 다시 샛별로 나와 주민에게 길을 물었다. 
“넘어갈 수 있슈. 왜 못 가유. 쭉~ 가유.”

아, 달리 다른 길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쭉 가면 되나보다. 다시 차를 몰아 비포장 길을 달린다. 조심조심 5분 쯤 가니 샛별 해변에서는 절벽에 가려 보이지 않던 수수께끼의 쌀썩은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담한 백사장이 미끈하게 펼쳐져 있고 이와 어우러진 작은 바위섬이 육지와 이어져 있다. 평소엔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지만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되는 것이다. 망재라고 불리는 이 작은 섬은 바다 쪽으로 용이 사는 굴이 있다 하여 ‘용섬’이라고도 불리고, 그 모양 때문에 ‘똥섬’이라고도 불린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씨알 굵은 바지락. 100% 자연산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여름 성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샛별 해변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이곳엔 누구 하나 찾은 이가 없다. 물놀이를 즐기려면 차라리 이곳이 훨씬 나은데도 말이다. 역시 숨겨진 해변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옛날에 신야리 국민학교 학생들은 6년 내내 쌀썩은여로 소풍을 다녔어요. 용섬을 기준으로 왼쪽은 노는 곳, 오른쪽은 보물찾기하는 곳이었죠.”

이곳 토박이로 민박집을 하고 있는 박봉열 씨는 예나 지금이나 이곳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이라는 이야기다.   

아담하게 펼쳐져 있는 백사장을 거닐어본다. 양말을 벗고 발도 담가보고 땀으로 번진 얼굴도 씻어본다. 으레 서해의 물 빛깔은 동해의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동해 못지않게 파란 물빛을 뽐내며 훌러덩 옷을 벗고 뛰어들어 보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저 멀리까지 나가도 수심이 깊지 않아 인공 수영장 못지않게 물놀이하기에 딱 좋다. 마음먹고 한번 뛰어들어볼까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백사장에 맛소금을 뿌리면 맛조개가 고개를 쏙 내민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때 한 무리의 야영객이 들이닥친다. 보아하니 부모님을 모시고 온 부부다. 어찌 여기까지 찾아왔나 싶어 말을 걸어본다. 

“민박집에서 알려주더라고요. 언덕을 넘어가면 진짜 좋은 곳이 있다고…. 조개도 캘 수 있다고 해서 호미 하나씩 들고 왔지요, 하하.”

서울에서 온 윤민서 씨 가족은 오늘 이곳이 처음이란다. 샛별해변에서 놀 줄 알고 수영복만 준비했는데, 조개도 캘 수 있다 하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단다. 

쌀썩은여는 한때 굴, 조개 양식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을 주변 민박집들이 마을 어촌계에 얼마간 사용료를 지불하고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원래는 민박집에 묵는 손님들에게만 개방했지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은 특별히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민서 씨는 맛조개를 캐기로 한다. 모래를 잘 보고 있다가 구멍이 송송 뚫린 곳에 맛소금을 살살 뿌리니 ‘쏙’하고 맛조개가 고개를 내민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조개를 쏙 빼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맛조개를 잡고 있는 여행객. 잡다가 더우면 바로 바다로 뛰어들면 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오늘 처음 잡아봐요.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정말 신기해요.”        
과연 오늘이 처음일까 싶을 정도로 민서 씨의 맛조개 잡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민서 씨의 어머니는 바지락을 잡는다. 갯바위가 있는 곳에서 바위를 들어내고 호미로 몇 번 훑어내니 큼지막한 바지락이 한 움큼씩 나온다. 

“씨알이 제법 굵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이만한 것들 못잡지요. 시원하게 끓여 먹어야겠네요.”
손가락보다 굵은 맛조개에 놀라고 왔는데,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바지락에 또다시 놀란다. 바위에 하얗게 붙은 굴껍질을 하나 따서 까봤더니 우윳빛 굴이 정말 들어 있다. “이야~, 이야~” 감탄사의 연발이다. 순간, ‘카메라 대신 호미가 들려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작은 해변이지만 용섬을 보고, 조개를 보고, 풍광을 구경하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해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져 버릴까봐 조금은 걱정이 되는 ‘두고두고 몰래 찾고 싶은 숨겨진 해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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