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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타고 세계 여행] 고대 유적과 신화의 땅 그리스를 달린다
[기차 타고 세계 여행] 고대 유적과 신화의 땅 그리스를 달린다
  • 최지웅 기자
  • 승인 2009.12.13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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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도시의 중심이었던 아크로폴리스. 수호신을 모셨던 신전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 = 그리스] 알바니아(Albania)의 마지막 코스인 사란다(Saranda)에서 그리스(Greece)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리스는 험한 지형 탓에 철도가 그리 발달한 편은 아니지만, 발전을 거듭하는 과도기인 만큼 기대가 남다르다. 그런데 알바니아는 배마저 기차를 닮은 모양인지 거북처럼 느릿느릿 바다를 가른다.

칼람바카의 백만 불짜리 경치 
드디어 알바니아를 벗어나 그리스의 코르푸 섬에 도착했다.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바로 육지로 향했다. 본격적인 기차 여행을 하려면 내륙에 있는 칼람바카(Kalambaka)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발칸반도의 남부는 높은 산이 많지만 그리스는 비교적 고속도로가 잘 뚫려 있는 편이라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먼 탓에 칼람바카에 도착하고 나니 이미 한밤중이 되어버렸다. 

미리 지도에서 보아두었던 위치를 가늠하여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었는데 숙소와 비슷한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운 탓에 숙소의 위치를 적어놓은 메모지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작은 주유소에 환한 조명이 켜져 있다. 

주유소에는 남자 셋이 반주를 하며 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메모지에 적힌 숙소 위치를 물었더니 다짜고짜 나를 옆자리에 앉힌다. 그러고는 “그 숙소는 아는 곳이니 걱정할 것 없다”며 막무가내로 포크를 쥐어주고 식사를 권한다. 

칼람바카로 향하는 철길. 사진 / 최지웅 기자

의외로 음식은 입맛에 잘 맞았다. 특히 양파와 토마토에 올리브유를 버무린 샐러드와 고추장과 비슷한 매운 소스로 조리한 낙지볶음이 맛있다. 게다가 남은 음식은 나중에 먹으라며 정성스레 싸주고, 숙소까지 차로 태워주었으니 낯선 이에게 받은 친절이 넘칠 정도다. 

다음 날 아침, 햇살에 이끌려 숙소 밖으로 나와 보니 어젯밤에 어둠 속에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백만 불짜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옹기종기 민가들이 모여 있는 마을 주변으로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신비로운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바위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수도원이 마을을 호령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혼자 올라가기도 벅찬데 어떻게 좁은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을 만들었을까. 신기하게 생각하며 메테오라(Meteora) 수도원에 올랐다.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는 마을과 주변 산들의 풍경이 기이하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몸에 흐른 땀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그리스 내륙의 종착역인 칼람바카역. 사진 / 최지웅 기자

그리스 열차는 변신 중 
수도원의 기이한 풍경에 본래의 목적을 잊을 뻔했다.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해 칼람바카역으로 향했다. 칼람바카역에서 수도인 아테네(Athens)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표를 끊으려고 하자 역 직원이 2시간 뒤에 있는 열차가 더 저렴하다고 일러준다. 아침 일찍 움직여 시간 여유가 있던 터라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날은 더웠지만 역 안에 시원한 물이 가득한 정수기가 있어서 참을 만했다.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 열차는 온통 낙서로 도배가 되어 있는 낡은 디젤동차다. 2량짜리 작은 열차를 타고 여느 때와 같이 창밖 풍경을 감상한다. 높은 산이 많지만 선로가 직선으로 쭉쭉 뻗어 있어서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중간에 팔레오파르살로스(Paleofarsalos)역에서 내려서 아테네행 열차로 갈아탔는데, 열차 안은 승객이 꽉 차서 앉을 자리가 없다. 흡사 주말에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우리나라 무궁화호를 탄 기분이다. 

까마득한 바위 꼭대기에 세워진 메테오라 수도원. 사진 / 최지웅 기자

꽤 긴 시간을 가야 하는 터라 객실 안에 서 있는 것보다 출입문 쪽에 기대어 창밖의 풍경을 보기로 했다. 창밖으로 산과 평지가 번갈아가면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건조한 기후 탓인지 산에는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고, 나머지는 바위나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위도로 따지면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여름에 습도가 낮아서인지 기후와 풍경이 전혀 다르다. 

4시간 넘게 달려서 종착역인 아테네역에 도착했다. 현재 그리스는 수도인 아테네와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Thessaloniki)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공사를 하고 있다.이것이  완성되면 아테네까지 더욱  빨리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아테네는 곳곳에 20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 유적을 품고 있다. 아테네를 대표하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를 비롯해 많은 유적들이 이토록 오랜 기간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유적지 근처에는 지하철역이 있었는데, 지하철이 유적지의 어느 쪽을 지나가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예상 밖으로 고대 아고라(Ancient Agora) 입구 쪽으로 지하철 노선이 뻗어 있었다. 유적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서 열차는 이 구간에서 천천히 지나간다고 한다. 

고대 아고라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테네 지하철. 사진 최지웅 기자

이제 그리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올림피아(Olym pia)로 갈 차례. 먼저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의 키아토(Kiato)역으로 가서 다시 열차를 갈아탔다. 과거에는 아테네에서 협궤(표준궤보다 폭이 좁은 궤간의 철도 선로)열차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었지만, 그리스 선로가 표준궤(두 레일의 간격인 궤간이 1,435mm인 철도 선로)로 바뀌고 있는 중이라 두 열차의 궤간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아타야 한다. 갈아탄 열차는 2량으로 된 낡은 디젤동차다. 새로운 승강장에 낡은 열차는 썩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지만, 이는 그리스 철도가 과도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협궤열차는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해안을 따라 달린다. 가끔씩 육지가 보이고 파도도 잔잔해서 흡사 호수 옆을 달리는 것 같다. 완행열차여서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상당히 많다. 간이역은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협궤열차를 타고 올림피아로 가는 길, 창밖으로 바다 풍경이 이어진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이윽고 최종 목적지인 올림피아에 도착했다. 알다시피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올림픽의 옛 명성과는 달리 올림피아역은 의외로 소박하다. 승강장은 하나뿐이고, 역 한쪽에 오래된 급수탑과 카페로 바뀐 차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는 2000년 전 고대 올림픽의 흔적인 돌기둥이 곳곳에 놓여 있고, 올림픽 관련 박물관도 있었다. 박물관에는 현대 올림픽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과 제1회 대회부터 하이라이트 장면을 사진으로 요약해놓았다. 

올림피아역은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신전의 모습을 본떠 지은 것이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올림픽의 역사를 훑어보다가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자료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마라톤에서 우승한 고 손기정 선수가 월계관을 쓴 사진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적이 일본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라를 잃었던 아픔은 멀고 먼 타지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나마 광복 이후에 발행된 우리나라 기념우표에 이름이 바로잡혀 있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하지만 곧 제24회 서울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확인하자 미소가 지어졌다. 제1회 대회부터 개최국을 살펴보면 모두가 선진국들인데 그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테살로니키로 떠나면서 다시 곱씹어보아도 참으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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