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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my spring plan 트레킹 여행] 담양의 명품 숲 트레킹
[특집 my spring plan 트레킹 여행] 담양의 명품 숲 트레킹
  • 송수영 기자
  • 승인 2010.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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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담양 나무 벤치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커플. 사진 / 송수영

[여행스케치 = 담양] 유난히도 겨울이 길었던 탓에 다른 해와 달리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더욱 반갑고 고맙다. 오랜 시간 실내에만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 타성이 되어 몸도 마음도 어느새 깊은 산골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실개천으로 녹아내리려면 아무래도 보드라운 봄 햇살 아래 오랫동안 몸을 내놓는 게 제일이다. 

푸릇한 자연 속에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땀날 때까지 걸어보자 해서 찾아간 곳, 담양.

그러나 타성이란 게 참 무서워서 담양의 죽녹원 앞에 도착했어도 마음만 앞설 뿐 여전히 발걸음이 무겁다. 터덜터덜 마음을 비우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발바닥에 작은 돌부리, 땅의 감촉을 느끼며 온 신경을 집중한다. 시야 끝엔 뾰족이 얼굴을 내민 대나무도 보이고, 촘촘한 대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봄 햇살까지 흔들흔들 춤을 춘다.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담양 죽녹원. 사진 / 송수영 기자

그 모습을 눈으로 좇아가다보니 어느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다. 하루에 20~30cm씩 쑥쑥 자란다는 죽순의 정기가 내 몸으로 들어오고, 일반 숲보다 10배나 많은 산소를 뿜어낸다는 대나무 숲의 청정 에너지가 슬슬 돌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요사이 걷기 여행 열풍이 불면서 각 지자체마다 걷기 코스를 다양하게 개발해 내놓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담양이 단연 눈길을 끈다.  

일찍부터 대나무의 고장으로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소쇄원, 명옥헌원림 등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유적이 많은 데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삼지내마을 등 스토리텔링의 요소들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담양군은 올 초 ‘담양 오방길’이라 해서 담양의 권역을 총 5곳으로 나눠 걷기 좋은 코스를 구성하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남도립대 박창기 교수는 “걷기의 핵심은 녹색 친환경입니다. 자동차 속에서가 아닌 온몸으로 여행지와 호흡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지요. 담양 여행은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대중적인 길, 수평적인 코스입니다. 여기에 지역 먹을거리, 명소들이 종합적으로 연계되어 ‘착한 여행’의 기본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국수거리에선 국수보다 엄청나게 삶아지는 달걀 풍경이 더 신기하다. 사진 / 송수영 기자

‘착한 여행’이란 소비 위주의 여행이 아닌 절제되고 소통이 전제된 여행으로, 지역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한다는 점에서 한층 적극적인 여행의 형태다. 친환경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찾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며 나아가서 그들과 유대를 맺는 것이다. 

걷기 여행이야말로 요즘 불고 있는 ‘착한 여행’에 가장 충실한 매뉴얼인 셈이다. 

2005년 개장한 죽녹원이 널리 인기를 끌면서 주변 거리도 활기가 돈다. 2009년 한 해에만 126만7000명이 다녀갔으니 관광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그 덕분에 인근 식당이며 기념품점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는데, 관방제림 앞에 조성된 ‘국수거리’도 더불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찾아간 날은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으나 주말이면 화순이며 광주 등에서까지 찾아온 손님들로 긴 거리에 빽빽이 사람들로 들어찬다. 총 6곳의 국숫집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진우네’ 집을 더 쳐주는 모양이다.     

관방제림만큼 낭만적인 길이 또 있을까? 사진 / 송수영 기자

멸치로 국물을 낸 국수는 맛이 그리 다르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소면이 아니라 쫄면처럼 굵다. 가게 주인 말로는 여기 사람들은 소면 같이 가는 국수보다 이걸 더 좋아한단다. 면이 굵으니 감칠맛은 떨어지지만 씹는 맛은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좀 생소하다.  여기에 국수보다 더 이색적인 것이 국숫집마다 각종 약재를 넣은 물에 삶은 달걀이다. 1000원에 4개라 국수와 함께 먹기 좋아 사람들마다 꼭 한 접시씩 시키다보니 삶는 양도 엄청나다. 각종 한약재를 넣어 삶았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간이 짭조름하게 배어 있다. 

한참 국수를 먹는데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정겨운 사투리가 뒤섞인다. 옆자리에 앉은 분들은 등산복 차림으로 국수 몇 그릇과 막걸리를 앞에 놓고 막걸리에 구성진 사투리로 술판을 벌이고 있다. 국수와 막걸리, 소박한 술상이 새삼 정겹다.   

배를 채웠으니 슬슬 관방제림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메타세쿼이아 길 위에 서면 누구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사진 / 송수영 기자

관방제림은 담양천변의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숲으로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등 420여 그루의 나무가 약 2km에 걸쳐 길게 늘어서 있다. 유유히 흐르는 천과 아름드리  나무, 그 사이사이 벤치며 평상이 있는 풍경은 평화로운 봄 풍경의 전형이다. ‘전국의 가장 아름다운 숲’(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운동본부 등이 주최)에서 대상을 차지한 명성에 값한다. 이미 큰 나무가 심어진 지 300~400년은 되었다는데, 이 나무 아래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것인가. 담양천변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핑계로 그 옛날 갑순이와 갑돌이도 멀찍이 떨어져 걸으며 은근한 핑크빛 연정을 주고받지 않았을는지.

아직 본격적인 푸르름엔 미치지 못했지만, 연한 초록의 싹이 싱그럽다. 

관방제림 끝에는 자동차 통행이 제한된 메콰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있다. 천변길과는 또 달리 날씬하게 늘어서 있는 메타세콰이아 나무의 매력을 전국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쯤에서 걷기에 지쳤다면 길 앞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한 대를 빌려 바람을 가르며 질주해보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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