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 안성] 번잡한 인파에 치이기 싫고 조용하게 봄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면 안성으로 가보자. 이맘때면 농협안성목장엔 파란 하늘에 초록색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초록색 호밀밭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 그대의 봄은 더욱더 푸르고 싱그러워질 것이다.
안성목장의 정확한 명칭은 농협중앙회 안성목장이다. 내년까지 농축산을 주제로 한 테마공원으로 꾸며질 예정인데, 현재는 승마 체험과 초원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앞으로는 목장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한우 전문 레스토랑, 농촌 생태체험시설까지 들어올 예정이라 하니 지금보단 사람들의 발길이 더 많아질 듯하다.
평범한 시골 농장처럼 보이는 이곳이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아가씨를 부탁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면서부터. 극중 여주인공이 말을 타고 푸른 호밀이 가득한 길을 가는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석양과 어우러진 이색적인 모습에 사진가들이 수소문하게 되었고, 그곳이 바로 이 안성목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곳의 자랑거리는 드넓은 평원에 펼쳐진 청보리밭과 호밀밭(아쉽게도 올해는 공사 관계로 청보리밭은 구경할 수 없다. 하지만 호밀밭만으로도 충분하다). 4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푸르름은 절정을 맞이하는데,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는 호밀이 지평선과 어우러지면서 시원하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안성농협 입구를 지나면 승마랜드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승마 체험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찾는 출사지는 이 부근이 아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안쪽으로 가면 농장의 마지막 축사가 보이고, 그곳을 시작으로 하늘과 맞닿은 호밀밭이 드러난다. 언덕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다양한 앵글로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축사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이 나타나는 곳이 첫 번째 포토 포인트. 언덕 위로 지평선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언덕을 따라 올라갔던 길이 왼쪽으로 다시 이어지며 곡선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나무 서너 그루가 서 있는데, 밋밋해 보이기 쉬운 호밀밭에 수직으로 포인트를 주는 역할을 해 더욱 다채로운 구성을 연출할 수 있다. 셔터 스피드를 느리게 해 촬영하면 바람에 흔들리는 호밀을 유화처럼 표현할 수 있다.
시멘트 길을 걸으며(차도 지나다닐 수 있다) 이런저런 사진을 찍다보면 특이한 피사체를 만나게 되는데, 농장 너머로 덩그러니 세워진 최신 아파트가 바로 그것이다. 직접 가서 보면 알겠지만 호밀밭 너머로 번쩍번쩍 세워진 모습이 워낙 뜬금없어 시골과 도시 풍경을 대조적인 피사체로 찍어도 좋을 듯하다. 왼쪽으로는 저 멀리 축사가 보여 목가적인 풍경을 담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대관령 목장처럼 소나 말을 방목하지 않아 초원 위에서 동물들이 뛰어노는 장면은 찍기가 어렵다.
초원 사이로 난 시멘트길이 끝날 즈음,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언덕에 오르면 드넓은 초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세 번째 포토 포인트로, 그야말로 파란 하늘이 반, 초록 호밀밭이 반이다. 이제껏 걸어온 시멘트길과 호밀밭 곳곳에 맨 바닥을 드러낸 길은 마치 강이 흐르듯 유연한 곡선을 만들어낸다. 이쪽부터 저쪽까지 파노라마로 사진을 담으면 장대한 초원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다.
이 언덕에는 큰 고목과 작은 의자가 놓여 있어 잠시 다리를 쉴 수 있다. 이곳 역시 드라마에 나갔던 유명 포토 포인트. 여름 즈음이면 나무에 푸른빛이 가득해져 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으며 소풍 나온 기분을 내도 좋겠다.
여기까지 왔으면 빼놓지 말고 꼭 봐야 할 것이 있다. ‘웅교리 입구’ 팻말 맞은편에 펼져진 배밭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 규모는 크지 않지만 4~5월엔 새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무 사이로 꽃 터널을 만든다.
사실 안성농장에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의 출사장소는 여기까지가 끝이다. 광활하게 호밀밭이 펼쳐져 있는 대신 아기자기한 맛은 별로 없다. 소의 모습을 담고 싶지만 방역 상의 문제로 함부로 드나들 수 없고, 체험객이 몰리는 주말이 아니라면 말을 촬영하기에도 번거롭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카메라를 챙겨 넣는다면 출사 여행의 백미를 놓치는 셈이다. 안성농장에서 꼭 봐야 할 마지막 남은 장관이 하나 더 남아 있다.
치솟았던 해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려는 순간이 다가오면 시멘트 길의 중간 지점에 서보자.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이 나무 사이로 해가 들어오는 지점이 안성목장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석양 촬영지이다.
마치 나무에 해가 걸려 있는 듯한 광경을 오로지 이곳에서만 촬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껏 그렇게 푸르렀던 초원이 시나브로 붉게 물들고 급기야 어둠 속에 잠기는 모습을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짜릿한 봄의 변신을 목격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