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 서울] 도심의 열기를 초록 바람으로 잠재우는 공원이 고맙다. 여기에 더해 숲은 물론 꽃까지 만발한 공원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서울의 숨은 꽃동산, 창포원으로 떠난 늦은 봄나들이.
더 높고 화려한 빌딩으로 밀도를 높여가던 서울에 본격적으로 녹색 바람이 분 것은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회색빛 도심에 서울숲, 하늘공원, 북서울 꿈의숲 등이 들어서면서 푸릇한 숲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빌딩 숲 사이에서 ‘진짜 숲’으로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숲을 넘어서 꽃을 테마로 한 공원이 지난해 가을에 문을 열었다. 바로 서울의 북쪽 도봉산 아래 자리한 창포원이다. 불법 비닐하우스로 골치를 썩이던 5만㎡ 공간에 붓꽃과 창포를 심어 ‘대형 꽃동산’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5월 말에서 6월 초에 붓꽃이 절정이니, 목련이나 벚꽃이 모두 잎을 떨군 늦봄까지도 상춘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창포원은 도봉산역 2번 출구에서 바로 보인다. 교통이 편리한 만큼 공원 주변은 빽빽한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아파트 너머로 시선을 던지면 수락산과 도봉산, 그리고 북한산까지 우뚝 솟아 있다. 한마디로 아파트 숲과 웅장한 산세에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 자리한 셈이다.
대부분 꽃창포가 심어진 창포원은 이맘때 가장 아름답다. 노랑꽃창포, 부채붓꽃, 타래붓꽃 등 아름답고 싱그러운 꽃이 만개하기 때문이다.
간혹 꽃창포와 창포를 혼동하는 이들이 있는데, 둘은 엄연히 다르다. 창포는 아로마 향이 있어 선조들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기도 했지만, 붓꽃과에 속하는 꽃창포는 비교적 향이 덜하고 꽃이 화려한 외래종이 많다.
“사실 공원 안에 심어진 꽃들이 꽃창포 종류가 많다보니, 엄밀히 따지면 이름도 ‘꽃창포원’이라 해야 맞겠지요. 그런데 부르기 편리하고 예쁜 ‘창포원’이라 하게 됐어요. 처음엔 창포원에 왜 창포가 없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리하여 꽃창포 주변에 창포를 심어 비로소 ‘진짜 창포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임경호 팀장의 말이다. 과연 공원은 선인이 붓끝처럼 부드럽게 꽃봉오리가 퍼진 붓꽃과 향기로운 창포가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갖가지 붓꽃이 피어 있는 붓꽃원 말고도 눈길을 끄는 공간이 또 있다. 수생식물과 습지식물이 심어진 습지원과 쌍화탕식물원, 십전대보탕식물원 등으로 구성된 약용식물원이 그곳이다.
바람에 실려온 약초 냄새가 풍기니 자연 기운이 불끈 솟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엔 백작약, 감초, 천궁, 당귀, 황귀, 숙지황 등 보약의 재료가 총집합한 것이나 다름없다.
“손으로 잎을 만져보면 진한 한약 냄새가 나는 식물도 있지요. 특히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뿌리째 없어지는 약초들이 많아 공원이 골머리를 앓고 있단다. 여러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심어놓은 약초들을 홀랑 캐가는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 한두 뿌리 캐간다고 해서 진짜 보약을 달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한편 공원 곳곳에 벤치와 파라솔이 놓여 있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나른한 주말 오후, 가족 소풍이나 독서를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