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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타고세계여행] 알바니아 포그라데츠역에서 티라나역까지  빛바랜 풍경 속을 달리는 느릿느릿 ‘슬로 기차’
[기차 타고세계여행] 알바니아 포그라데츠역에서 티라나역까지  빛바랜 풍경 속을 달리는 느릿느릿 ‘슬로 기차’
  • 최지웅 기자
  • 승인 2009.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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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만든 디젤기관차.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알바니아]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절찬리에 연재된 ‘기차 타고 세계여행’이 다시 돌아왔다. 이전보다 더 특별한 기차 여행을 직접 체험하고 돌아와 바로 써 내려간 기대 만발 따끈따끈 여행기. 지금부터 활짝 펼쳐진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지난 120년간의 작품을 모아놓은 국립예술관. 사진 / 최지웅 기자

멀고도 험한, 알바니아 가는 길 
서유럽의 기차 여행을 마치고 발칸반도의 남쪽으로 내려갔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에서 국경을 넘어 알바니아(Albania)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감감무소식이다. 참다 못해 매표소 직원에게 물었더니 오늘은 버스가 운행되지 않는단다. 오늘 저녁에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Tirana)에 숙소를 예약해 두었는데 큰일이다. 

이대로 티라나에 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 국경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차로 1시간 거리라고 하니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국경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차도 없다. 다리가 욱신거릴 즈음에 다행스럽게도 뒤쪽에서 낡은 택시가 달려온다. 

급정거를 하더니 나에게 어디를 가는지 물어본다. 알바니아로 간다고 하니 일단 타란다. 요금을 얼마까지 줄 수 있냐고 묻기에 원래 버스를 타려고 했으니 버스 요금만 주겠다고 했다. 결국 버스 요금으로 합의를 보고, 자칫 오지 못할 뻔했던 티라나에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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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계의 로마 가톨릭 수녀인 마더 테레사의 동상. 사진 / 최지웅 기자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시내를 둘러보았다. 티라나는 흡사 평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오랜 시간 공산 독재에 시달린 알바니아는 1990년에 개방을 하기 시작해서 발전을 이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특히 국립예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등장인물만 서양인으로 바뀌었을 뿐, 북한 포스터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독립 이후부터 주요 작가의 작품을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었는데, 당시 정부에서 검열이 심해서 예술가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사진 / 최지웅 기자
낡고 오래된 중고 객차는 동독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사진 / 최지웅 기자
포그라데츠역. 철길 사이로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이 생경하다. 사진 / 최지웅 기자

티라나를 둘러보고 알바니아 동부에 있는 오흐리드호(Lake Ohrid)의 포그라데츠(Pogradec)로 향했다. 아쉽게도 열차 시간이 맞지 않아 미니버스를 잡아탔다. 포그라데츠로 가는 길은 산을 넘어야 했기에 급경사와 급커브가 많았다. 우리나라의 산에 비하면 높은 편이 아닌데도 터널과 교량을 만들지 않고 길을 내어서 멀지 않은 거리도 오래 걸렸다. 

포그라데츠의 풍경은 티라나의 번잡함을 떨쳐버릴 수 있을 만큼 멋졌다. 넓고 푸른 호수가 펼쳐져 있고, 호수 주변으로 높은 산이 둘러쳐 있다. 이 호수의 동쪽은 마케도니아(Macedonia)다. 호수를 중심에 두고 나라가 다른 셈인데, 삼엄한 분위기는 흐르지 않는다. 다만 곳곳에 남아 있는 알바니아의 방공호에서 과거 주변 나라와 대치했던 상황을 상상해볼 뿐이다. 

사진 / 최지웅 기자
티라나 시내의 광장. 사진 / 최지웅 기자

낡은 기차, 낡은 풍경 
드디어 티라나로 돌아가는 길에 기차를 타기로 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알바니아의 기차는 유럽과 사뭇 다르다고 하니 궁금증을 누를 수가 없다. 기차역은 마을에서 약 4km 떨어져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역까지 호수를 따라 걸어갔다. 

과연 포그라데츠역의 풍경은 놀라웠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차를 타보았지만,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은 흙길이고, 단층인 역 건물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철길에는 무성한 풀을 제거하기 위해서 소를 키우고 있었다. 

열차는 예정보다 늦게 들어왔다. 그런데 디젤기관차는 물론 객차도 익숙하다. 살펴보니 디젤기관차는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에서 만들었고, 객차는 1979년에 DR(Deutsche Reichsbahn), 즉 동독에서 만들었다. 차내에 ‘승차권이 없으면 벌금이 40유로’라는 독일어 안내 문구가 있는 것을 보니 얼마 전까지 독일에서 쓰이다가 넘어온 중고인 것 같다.  

사진 / 최지웅 기자
바다만큼이나 넓은 오흐리드 호수. 사진 / 최지웅 기자

어디에 앉을까 좌석을 살피는데, 창문이 곳곳에 깨어져 있어 차라리 창문이 열린 좌석에 앉았다. 앉을 때에는 몰랐는데 이 자리가 명당이다. 차내에 냉방이 되지 않는 터라 열차가 달릴 때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맞을 수 있다. 

느릿느릿 열차가 달린다. 어찌나 느린지 창밖 너머로 보이는 도로 위의 차들이 기차를 쌩쌩 지나칠 정도다. 그래도 굳이 매력을 찾자면, 그나마 자연 풍광을 천천히 즐길 수 있다는 것.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오흐리드호가 펼쳐진다. 천천히 호수 옆을 지나가니 창밖의 풍경만 보면 관광열차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호수를 벗어난 열차는 낑낑대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도로는 터널과 교량을 생략하고 구불구불 만들었지만, 철길을 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곳곳에 높은 철교를 설치했다. 수없이 많은 철교를 지나서 티라나역에 도착하였다. 미니버스를 탔으면 3시간에 올 거리인데 7시간이 걸렸으니 한참을 돌아온 셈이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알바니아 티라나역의 초라한 풍경. 사진 / 최지웅 기자

티라나역의 풍경 또한 볼수록 놀랍다. 그래도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쯤 되는 역이 아닌가. 그런데 모습이 변변치 못하다. 철길 사이에 풀이 무성해서 소는 물론 닭이나 염소까지 풀을 뜯고 있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객차가 방치되어 뼈만 남았다. 차고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폐허가 되어버렸고, 신호등은 쓰임새를 잃고 그저 기둥처럼 서 있을 뿐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알바니아 사람들은 밝게 웃는다. 숙소로 돌아와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바니아는 언젠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할 것이고, 유로화를 화폐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모은 돈을 모두 유로로 바꾸어놓았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립된 삶에서 벗어난 지 18년이 된 알바니아를 보며 자꾸만 북한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대화를 나누는 내내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 이후에도 이와 같이 힘든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점이 조금은 두려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티라나의 밤은 깊어갔다. 내일 여행할 사란다(Saranda)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에 부풀어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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