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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축구 여행] 축구 성지, 이탈리아 산시로 경기장 꿈의 빅 매치  ‘밀란더비’의  열기 속으로! 
[축구 여행] 축구 성지, 이탈리아 산시로 경기장 꿈의 빅 매치  ‘밀란더비’의  열기 속으로! 
  • 윤동빈 기자
  • 승인 2009.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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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윤동빈 기자
펄럭이는 깃발과 홍염이 밀란더비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사진 / 윤동빈 기자

[여행스케치=이탈리아] 이제까지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 구하기 어렵다는 분데스리가 티켓을 두 번이나 손에 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최고의 명문클럽 ‘AC밀란 vs 인터밀란’의 경기가 아니던가.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을 설쳐가며 온갖 방법을 총동원했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또 한 번 운이 따라주었다. 

낯선 독일 땅에서 맞은 4월은 결코 상상하던 ‘봄날’이 아니었다. 수증기처럼 흩뿌리는 비와 그 사이로 자욱하게 뿜어내는 입김이 음습한 날씨를 대변하는 듯했다. 푸르른 캠퍼스에 대한 그리움이 나날이 더해질 즈음에, 교환학생들의 어학 코스가 상급반과 하급반으로 나뉘었다. 

놀랍게도 나는 상급반, 발락(관영)과 토레스(승은)는 하급반으로 배정을 받았다. 사실 나와 그들의 독일어 실력은 차이가 없었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독일어 면접 때 독일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갔는데, 한네 교수님이 그것을 유심히 보셨다. 

사진 / 윤동빈 기자
음습한 날씨의 독일과는 달리 여름 향기가 충만한 밀라노역 광장. 사진 / 윤동빈 기자

“자네, 아는 독일 선수가 있는가?”
연세가 지긋한 교수님을 배려해 ‘올드 플레이어’부터 줄줄이 읊었다. 
“네, 프리츠 발터, 게르트 뮐러, 프란츠 베켄바우어, 칼 하인츠 루메니게, 올리버 비어호프, 마르코 보데, 토마스 헤슬러, 크리스천 치이게….”

어느새 독일어로 내뱉은 단어가 10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고유명사를 나열했을 뿐인데, 분위기는 나의 독일어 실력을 인정하는 쪽으로 흘렀다. 결국 한네 교수님은 나를 상급반으로 편성해주었다. 

상급반의 독일어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책에 축구 경기장 낙서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런데 어느 날 한네 교수님의 한 마디가 나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다름 아닌 부활절 연휴 계획을 짜오라는 것. 유럽은 부활절을 매우 성대하게 치른다. 독일 대학의 연휴 기간이 무려 열흘이나 된다. 

사진 / 윤동빈 기자
경기장으로 모여드는 수많은 인파들. 사진 / 윤동빈 기자

나는 기숙사에 와서 곧바로 유럽 축구경기 일정표를 살폈다. 그러다 괴성을 지를 뻔했다. ‘4월 16일 AC밀란 vs 인터밀란 : 밀라노 경기장’. 이게 정녕 꿈이란 말인가! 그리고 다시 유럽의 클럽들이 모여 최고를 가리는 챔피언스리그 일정표를 보았다. 까악! 다름 아닌 밀란더비(AC밀란과 인터밀란처럼 같은 연고지의 팀끼리 경기를 하는 것) 경기의 3일 후에 바로 그 경기장에서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꿈의 빅 매치 두 개가 모두 부활절 연휴 기간에 있다니! 나는 더 이상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역으로 달려가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인터넷으로 밀라노의 한인 민박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 티켓이었다. 나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주야장천 웹서핑만 했다. 

나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같은 기숙사의 이탈리아 친구를 불러 AC밀란의 구단 사이트를 해석해달라고 사정하고, 유명한 축구 해설위원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글을 남기기도 했으며, 밀라노에 있는 모든 한인 민박집에 티켓 문의 메일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밀라노의 한인 민박집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영국에서 오는 한국 손님도 밀란더비 경기를 보러 오는 것 같다며 그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사진 / 윤동빈 기자
경기장 지붕은 산시로의 상징이다. 사진 / 윤동빈 기자

다행스럽게 연락이 닿은 김승철 형님의 도움으로 암표 티켓 사이트에서 가까스로 티켓을 예약했다. 그리하여 밀란더비 티켓은 확보하였지만, ‘챔스’ 4강 티켓은 예약 대기 상태. 하지만 발락과 토레스에게 밀라노로 여행을 떠나자고 할 명분이 생겼다. 친구들도 나의 노력에 감탄하며 함께 여행할 것을 약속했다. 

이윽고 성스러운 부활절이 다가왔다. 분명 나에게도 성스러운 날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경기장은 축구팬에게 성지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마치 이상향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난 괴테라도 되는 양 감상에 부풀어 밀라노행 기차에 올랐다. 알고 보니 뮌헨-알프스-베로나로 이어지는 이 루트가 독일인에게 무척 상징적인 여행길이었다. 

괴테뿐만 아니라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의 죽음>의 주인공인 아쉔 바흐도 이 루트를 따라 베니스로 떠났다고 한다. 칙칙하고 우울한 독일 날씨에 염증을 느낀 나 역시 새로운 절대미를 찾아 알프스를 넘는 것이다. 다만 나의 절대미는 ‘축구’였다는 점에서 그들과 조금 차이가 있을 뿐! 

사진 / 윤동빈 기자
밀란더비 기사가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다. 골을 넣은 칼랏제와 실망하는 마테라찌. 사진 / 윤동빈 기자

기차가 알프스를 넘어 롬바르디아 평야에 닿을 즈음에 왜 독일인이 ‘따뜻한 남쪽나라’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지 알게 됐다. 점차 차창 밖의 빗방울과 유리창에 서린 입김이 사라지고, 따스한 공기가 객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여름의 향기가 충만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산뜻한 여름 향수가 진동했고, 밀라노역 광장에는 웃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남자도 보였다. 

우리는 부랴부랴 경기장으로 향했다. 갑자기 경기 시간이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변동된 것은 당일 미사와 축구 경기 시간이 딱 겹쳐서 ‘신자들이 부활절 미사는 참여하지 않고 축구장으로 몰릴 우려가 있으므로 경기 시간을 조정하라’는 교황님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구의 인기를 실감하는 대목이었다. 우리는 경기장 앞에서 티켓을 구해준 승철 형님과 짧게 인사를 나눈 뒤에, 경기가 끝나고 다시 만나 함께 민박집으로 가기로 했다. 

먼저 산시로 경기장의 상징인 기둥 계단으로 올라갔다. 산시로의 네 귀퉁이를 지탱하고 있는 원형기둥과 지붕은 내부에서 보았을 때 더욱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지붕 때문에 산시로 경기장은 매년 수억 원의 손해를 본다고 한다. 경기장의 잔디가 햇빛을 잘 받아야 하는데, 지붕 때문에 일조량이 줄어서 잔디를 자주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시로의 지붕은 밀라노의 상징과도 같아서 그러한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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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응원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산시로 경기장. 사진 / 윤동빈 기자

경기가 시작되자 진풍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걸터앉은 서포터들, 경기장 곳곳에 걸린 현수막과 휘날리는 깃발들, 그리고 곳곳에서 뿜어내는 붉은 연기까지 응원 열기가 굉장했다. 이탈리아 내에서 그나마 신사적이라는 밀란더비가 이 정도이니, 로마더비에 가면 살인도 일어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초반의 경기 양상은 루이스 피구의 활약으로 인테르가 주도하는 듯했지만, 곧 AC밀란의 삼각편대가 무서운 기세로 경기를 장악했다. 그리고 후반에 터진 수비수 칼랏제의 멋진 발리킥이 골로 연결되어 AC밀란이 1:0으로 승리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산시로엔 AC밀란의 응원가 ‘Inno Milan’이 울려 퍼졌다.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경기장 밖에서는 승철 형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철 형님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축구해설위원들이 다녔던 리버풀 축구대학원에서 축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또한 맨유 시즌권을 끊고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서 박지성 선수의 활약을 직접 관람하고 있단다. 

사실 학생 신분으로 다방면에 진출한 어른들과 친분을 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축구 하나로 불과 몇 시간 만에 형님 아우 할 만큼 그와 나는 친해졌다. 이처럼 축구는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밤에는 승철 형님의 명언을 되새기며 잠이 들었다. 
“축구는 만국공통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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