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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세계를 간다] 미얀마 양곤-바간 극락과 가장 가까운 미지의 나라 
[세계를 간다] 미얀마 양곤-바간 극락과 가장 가까운 미지의 나라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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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불교 성지 미얀마.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미얀마] 미얀마는 해외 여행 좀 했다는 여행객들도 그다지 많이 찾는 곳이 아니다. 찬란한 고대문화의 발상지도, 예술과 패션, 쇼핑의 도시도 아니고, 아직 자연관광지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 이야기가 나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구 상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불교 성지, 그곳이 바로 미얀마다. 

미얀마를 말하기에 앞서 버마란 이름을 먼저 말하면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사실 처음 미얀마를 간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섰다. 버마란 이름을 가지고 있던 시절, 그 과거의 역사가 그리 평화롭게 기억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아웅산 테러사건과 군부독재란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미얀마를 ‘그런 나라’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미얀마를 찾고 보니 찬란한 불교문화가 있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매우 순박했다. 버마족, 샨족, 몬족, 잉따족 등 얼굴 생김과 풍습이 다른 수많은 인종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풍경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미얀마에서는 남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씩 승려 생활을 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인도와 베트남, 태국 등 유명 관광지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개방의 물결에서 비켜 있던 탓에 미얀마는 아직도 여행객들에게 ‘육지의 섬’으로 인식된다. 물론 알려진 것과 다르게 미얀마는 평화로운 나라다. 군부독재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실제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순박함 그 자체이다. 

미얀마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은 머리를 깎고 승려 생활을 한다(우리나라에서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오는 것처럼. 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이것은 불교 출가 의식인 

신퓨(Shin Pyu) 의식이다. 국민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선 당연한 일이다. 남자들은 대부분 10대 시절 머리를 깎는데, 짧게는 일주일에서 보통은 한 달 정도 탁발 공양(이곳저곳에서 밥을 받아 먹는 것)을 하며 고행을 한다. 이런 경험 탓인지 미얀마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는다.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멀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원에서 만난 쌍둥이 형제. 얼굴에 바른 것은 타나카 나무를 갈아 말린 가루인데, 선크림 역할을 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미얀마 최대의 도시 양곤
양곤은 전체 면적 중 40%가 공원과 호수 그리고 파고다로 아름다운 도시다. 그래서 양곤을 이르러 ‘동방의 정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욘드 랭군(Beyond Rangoon)>이라는 영화 제목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미 양곤을 알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수많은 시민이 “아웅산 수지!”를 연호하며 시위를 벌이던 곳이 바로 랭군, 즉 양곤이다. 랭군은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한 후 양곤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본래 양곤은 미얀마의 수도였다. 미국의 공격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2005년 갑자기 만달레이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양곤은 미얀마 정치의 중심지였다. 또한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최전성기를 이루며 화려하게 꽃을 피운 곳도 미얀마다. 그 중심이 바로 양곤과 바간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양곤 시내 전경. 사진 / 손수원 기자

미얀마 최대의 도시라곤 하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미얀마 전통의상인 ‘론지’를 두르고 다니는 모습이나 20년도 더 된 자동차에 사람들이 매달려 오가는 모습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개방의 물결을 타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호텔과 상가 등이 속속 늘어나고 있지만 그 모습마저도 옛풍경에 묻혀 여전히 고풍스럽다. 

양곤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2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쉐다곤 파고다이다. 그 옛날, 타부사와 발리카란 두 상인이 부처의 머리카락 8개를 가져와 오칼라파왕에게 전했고, 왕은 이를 모시기 위해 쉐다곤 탑을 세웠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 탑의 높이는 27m. 그러나 지진으로 온전히 파괴된 것을 15세기 신소부 여왕이 자신의 몸무게만큼 금을 보시해 다시 지었다. 이를 계기로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왕과 국민이 금을 보시해 계속 증축하면서 지금의 99m라는 거대한 높이가 됐다. 현재 탑에 덧칠된 금의 양은 7t에 이르며 4년에 한 번씩 금을 덧칠한다(미얀마는 금과 옥, 보석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양곤을 감싸며 흐르는 이라와디 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 카메라를 들이대면 묘기에 가까운 다이빙 솜씨를 뽐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쉐다곤 파고다 앞에 있는 보리수나무. 부처가 쉬었다는 보리수의 가지를 꺾어다 심었다고 하는데, 수령이 900여 년 정도 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탑의 일산(탑 꼭대기의 우산 모양)에는 보시 받은 각종 목걸이, 귀고리, 팔찌 등이 매달려 있고, 중앙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76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장식돼 화룡점정을 이룬다. 탑의 꼭대기가 유난히 화려한 이유는 전쟁이 났을 때 적군이 이 꼭대기의 보물만 가져가고 불심이 깃든 탑 자체는 온전히 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물질보다는 마음의 믿음을 더 중히 여기는 미얀마 사람들이지만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서글픈 역사가 점점 더 화려한 탑을 만든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다. 

미얀마에서는 사원을 둘러볼 때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40℃에 육박하는 날씨에 맨발로 타일 바닥을 밟으니 발이 타는 듯 뜨겁다. 뜨거운 타일을 피해 경망스럽게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이 재미있게 보이는지 현지인들은 연신 깔깔대고 웃는다. 

쉐다곤 파고다는 황금빛의 외관으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부처의 머리카락과 여러 사리를 모신 것으로도 성스럽기 그지없다. 불탑을 향해 앉아 기도를 올리는 모습과 여기저기서 소풍 온 듯 편하게 쉬거나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은 불교가 생활의 일부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파고다며 사원은 어린 시절부터 놀이터처럼 뛰어다니던 일상 속의 장소인 것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쉐다곤 파고다 주변에 조명이 켜진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수시로 정전이 되어버리면서도 세계 최고의 불교 성지만큼은 환히 밝히려는 노력은 가히 이곳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늠케 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천탑의 도시 바간에서보물 1호로 지정된 쉐지곤 파고다. 탑을 온통 금으로 씌워 그 화려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천탑의 도시, 바간
미얀마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곳이 바로 바간이다. ‘천탑(千塔)의 도시’로 불리는 바간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유적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손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바간의 탑들은 앙코르와트나 보로부두르의 유적들에 비하면 굉장히 소박한 편이다. 과거 바간의 왕들은 왕이기 이전에 승려였다. 자연히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불심을 소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내실 있는 탑을 세우는 데 치중했다. 

왕이 솔선수범을 보이자 귀족과 서민들도 왕의 뜻을 따라 크고 작은 탑을 손수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탑이 5000여 개. 나라의 힘만으로는 이루지 못했을 일을 국민 모두가 나서서 기적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287년 원나라의 침입으로 불교문화의 전성기가 쇠퇴하면서 5000여 개에 이르던 탑의 수가 절반으로 줄었단다. 하지만 지금도 한 지역 내에 2500여 개의 불탑이 집중적으로 서 있는 곳은 바간이 유일하다.  

바간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낭우 시장. 우리나라로 치면 재래시장이다. 버스가 들어서자 마른 먼지가 폴폴 날린다. 바간은 미얀마 내에서도 강수량이 가장 적은 데다, 최근엔 이상기후로 점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척박한 땅에도 좌판을 펼치고 시장을 이루었다. 

외국인들이 내리는 모습을 본 상인들이 하나둘 버스 주위로 몰린다. 아이를 안은 엄마, 잎담배를 두 손 가득히 든 할머니, 미얀마 풍경을 담은 엽서를 든 꼬마들…. 하지만 하나같이 눈빛이 순박하다. ‘살 거면 사고, 말 거면 말라지’하는 눈빛, 절대 강매를 하지 않는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낭우 시장에서 만난 미얀마 여인과 아기. 사진 / 손수원 기자

“할로? 안녕하세요? 언니 오빠, 잘생겼어요. 원 달러, 원 달러!”
미얀마에도 한류 바람이 분다더니 시골 꼬마들도 우리말 한두 마디 정도는 다 할 줄 아는 모양이다.어찌나 발음이 좋은지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꼬마들이 물건을 내미니 입장이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물론 비싸 봤자 1달러인 물건을 사는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한 명의 물건을 사면 수 명의 아이들이 주위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려면 차라리 으슥한 곳에서 거래하는 편이 낫다.

가끔은 아이를 안고 사진 한 장 찍는데 1달러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역시 강요는 아니다. 대부분은 웃는 얼굴로 ‘원 달러’, ‘칸디칸디(사탕)’를 외치지만 굳이 대가를 받지 않아도 그만인 듯했다. 가난했던 시절을 보낸 부모님들께 들었던 ‘기브 미 쪼꼬렛’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짠해진다.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를 골목으로 불러 엽서를 샀다.아이가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한다. 세상 어디고 아이들은 천사의 다른 모습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우리나라의 옛 모습을 보는 듯한 낭우 시장. 사진 / 손수원 기자

시장을 나서 도착한 곳은 쉐지곤 파고다. 이 불탑은 1087년 바간 왕조를 세운 아나우라타왕이 타톤을 정복하고 세운 기념물로, 바간의 수많은 유적지 중에서도 보물 1호로 지정되었다. ‘황금모래 언덕의 탑’이라는 뜻의 쉐지곤은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건축양식이 이후 다른 파고다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미얀마 탑의 어머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처의 앞머리뼈와 앞니를 봉안하고 있어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관광객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바간에 와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쉐산도 파고다다. 이 탑 역시 아나우라타왕이 건축한 것으로, 쉐산도란 이름은 ‘황금빛의 부처님 머리카락’이라는 뜻이다. 쉐산도는 쉐지곤보다 먼저 세운 탑으로, 쉐지곤도 쉐산도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쉐산도의 진가는 이른 아침과 해질녘에 드러난다.

쉐산도는 미얀마에서는 유일하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탑이다.덕분에 계단을 올라 탑 정상에 서면 수천 개의 불탑이 서 있는 바간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계단을 오르려는데 그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난간을 꼭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기는데, 정상 부근에서 이르러서는 온 몸이 후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쉐산도 불탑에서 바라본 바간의 석양. 곳곳에 불탑이 서 있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쉐산도 불탑에서 엽서를 팔던 아이. 웬만한 한국말은 곧잘 하며 호객행위를 한다. 원하면 흔쾌히 안내도 해주는 착하고 순박한 아이들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대로 다시는 내려가지 못할 것만 같다. 이런 와중에도 꼬마들은 주위에 몰려들어 ‘원 달러!’를 외치며 엽서며 손수건을 눈앞에 내밀어 보인다. 순간 은근히 귀찮기도 하지만 계단이 가파른 곳에서는 “오빠 언니, 잘생겼어요”라며 손을 잡아주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절대로 미워할 수 없다. 

쉐산도의 꼭대기에 서니 바간의 장엄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이라와디강이 서쪽으로 흐르고, 황금옷을 입은 화려한 탑부터 세월의 풍파에 반쯤 허물어진 이름 없는 벽돌 탑들까지 지평선과 맞닿은 곳,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곳에 온통 불탑이다.

서서히 해가 저물 시간이 되자 사람들의 눈은 모두 서쪽을 향해 있다. 이런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불국토(佛國土)의 일몰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다.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더라도 쉐산도에서 바라보는 바간의 풍경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해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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