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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①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만 아는 숨겨진 ‘명품 숲길’ 영양 자작나무숲
[특집 ①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만 아는 숨겨진 ‘명품 숲길’ 영양 자작나무숲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3.11.13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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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정취를 마음껏 즐겨볼 수 있는 경북 영양군의 자작나무숲을 소개한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늦가을 정취를 마음껏 즐겨볼 수 있는 경북 영양군의 자작나무숲을 소개한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영양] 늦가을 정취가 한창 짙어지는 요즘, 영양 자작나무숲을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경북 영양군, 그중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영양 자작나무 숲에서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을 한껏 만끽하고 돌아왔다.

휴대전화 안테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먹통이 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가만히 주변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쓸쓸함을 머금은 듯한 바람과 가냘프게 지저귀는 새소리, ‘졸졸계곡물 소리가 잔잔하게 흐른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영양의 어느 숲길 한 가운데다.

하늘에서 본 영양 자작나무숲. 사진 / 민다엽 기자
하늘에서 본 영양 자작나무숲. 사진 / 민다엽 기자

나만 아는 명품 자작나무 숲
영양의 동북부 태백산맥 내륙에 위치한 죽파리 일대에는 인제 원대리 못지않은 명품 자작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1993년부터 이곳에 자작나무를 본격적으로 조림하기 시작해, 현재는 산기슭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여타 관광지에 비해 사람들의 방문이 극히 적은 편이기에 그만큼 청정하고 한적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다.

자작나무는 보통 20m쯤 자라며 춥고 깊은 숲에서 자란다. 나무껍질이 하얗고 종이처럼 얇게 벗겨져 예부터 이 껍질에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썼다. 대표적인 예로 신라시대 천마총의 천마도 그림도 이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며,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경판 일부도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이처럼 자작나무는 단단하고 결이 고와서 각종 생활 도구의 재료로도 널리 이용됐다. 또한 새하얀 빛깔 덕분에 고은, 백석 등 다양한 시인들의 시 속에서 순수함, 그리움, 외로움 등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활용되기도 했다.

입구에 주차한 뒤 1시간 이상 걸어야 비로소 자작나무숲에 닿는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입구에 주차한 뒤 1시간 이상 걸어야 비로소 자작나무숲에 닿는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자작나무숲까지 한적한 숲길이 이어진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자작나무숲까지 한적한 숲길이 이어진다. 사진 / 민다엽 기자
곳곳에서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사진 / 민다엽 기자
곳곳에서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사진 / 민다엽 기자

INFO 영양 자작나무숲
주소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산39-1

숲속의 귀부인순백의 자작나무
마치 숲을 전세라도 낸 듯 오붓하게 트래킹을 즐긴다. 길을 걷다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탐방로 입구에서 산중턱에 있는 자작나무 숲까지 임도와 숲길이 약 4.7km 가량 이어진다. 왕복으로 다녀오려면 넉넉하게 3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거리가 꽤 멀지만,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 사부작사부작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크게 힘들지 않다.

게다가 자작나무 숲이 조성된 산 깊숙한 곳까지 전기 자동차 셔틀이 운영되기 때문에 거동이 다소 불편한 여행자들도 편하게 숲속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 현재는 탐방로 공사로 인해 전기 자동차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셔틀 운영 문의 요망)

중간에 임도와 숲길이 나눠지는데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크게 상관없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중간에 임도와 숲길이 나눠지는데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크게 상관없다. 사진 / 민다엽 기자
탐방로 가장 깊은 곳에 자작나무숲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탐방로 가장 깊은 곳에 자작나무숲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자작나무 껍질은 불에 잘 타서, 예부터 촛불 대용으로 널리 사용됐다. 결혼식의 '화촉'을 밝힌다는 의미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자작나무 껍질은 불에 잘 타서, 예부터 촛불 대용으로 널리 사용됐다. 결혼식의 '화촉'을 밝힌다는 의미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임도가 끝나자, 본격적인 숲 트래킹 코스가 시작된다. 한적한 숲길을 따라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긴다. 바닥에 깔린 낙엽을 살포시 즈려 밟으며 더욱 깊은 계절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서걱서걱 자연이 내는 천연 ‘ASMR’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느낌. 여기에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쓸쓸한 가을 분위기를 한층 짙게 한다.

중간중간 임도와 숲길로 길이 나눠지는데, 어디로 가던 크게 상관은 없다. 곳곳에 쉼터와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 숲길을 걷기 시작한 지 30~40분 남짓 되었을까.

드디어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자작나무 숲이 눈앞에 나타난다. 새하얀 자작나무와 울긋불긋 단풍이 한데 어우러져 가을의 절정을 향해간다.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자태에 탄성이 끊이질 않는다.

알록달록 절정을 향해가는 자작나무숲의 풍경. 사진 / 민다엽 기자
알록달록 절정을 향해가는 자작나무숲의 풍경. 사진 / 민다엽 기자
쭉쭉 뻗은 자작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숲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쭉쭉 뻗은 자작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숲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산기슭을 가득 메운 자작나무와 머리 위를 뒤덮은 형형색색 단풍 사이로 아담한 오솔길이 열린다. 자작나무가 주는 특유의 빛깔이 여태까지의 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백옥같이 새하얀 자태에선 고고함과 순수함마저 느껴진다.

실제로, 자작나무의 영어 이름은 ‘Birch’, 독일어로는 ‘Birke’, 불어로 ‘Bouleau’라고 부른다. 이 말 모두 숲속의 귀부인(lady of forest)’ 또는 수목의 여왕이라는 뜻이라고(*참고문헌_<재미있는 동·식물 이야기>, 저 강상준). 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이름인가. 반면, 우리나라 자작나무의 이름은 나무를 태울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실제로는 이러한 소리는 나지 않는다고 한다.

문학이 깃든 두들문화마을
문학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영양군 석보면에 위치한 두들문화마을도 함께 둘러보길 추천한다. ‘언덕 위에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두들마을은 긴 시간 여러 문인들을 배출한 문학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이다. 두들마을은 1640년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내려온 석계 이시명 선생이 이주하여 정착한 유서 깊은 마을로 당시 크게 문풍이 일었던 곳이다. 이후 훌륭한 학자와 독립운동가 등을 다수 배출하기도 했다.

두들마을에는 현재 약 30여 채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두들마을에는 현재 약 30여 채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조선시대에는 갈암 이현일과 밀암 이재 등이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후학에게 널리 전하였고, 입향조 이시명 선생의 부인인 여중군자장계향 선생이 남긴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두들마을은 한국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생가였던 석간고택을 비롯해,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문열 작가는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영웅시대>등 작품 속에서 고향 두들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두들마을에는 아직까지 후손들이 실제 생활하고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두들마을에는 아직까지 후손들이 실제 생활하고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다양한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관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다양한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관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사진 / 민다엽 기자

두들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공간은 마을 입구에 조성된 음식디미방 체험관이다. 음식디미방은 현존하는 최고의 한글 조리서로 1600년대 중엽부터 말까지 경상도 지방 양간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발효 식품, 식품 보관법 등 146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체험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350여 년을 이어 온 우리 민족의 맛과 멋을 느껴볼 좋은 기회다.

이 밖에도 두들마을에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30여 채의 전통 가옥과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새긴 각종 글씨가 아직도 남아있으며 경치가 아름다워 가볍게 산책하기에도 좋다.

INFO 두들마을
주소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길 62
문의 054-680-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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