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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2월호
[도로명 찾아가자] '조엄로'에서 만난 고구마, 부산 영도까지 간 까닭은?
[도로명 찾아가자] '조엄로'에서 만난 고구마, 부산 영도까지 간 까닭은?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8.11.02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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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 조엄로에서 시작된 영도 고구마 여행
'고구마'를 우리나라에 처음 가져온 '조엄'
내년 역사관과 체험관도 개장해...
강원 원주에 위치한 조엄기념관. 사진 / 노규엽 기자
강원 원주에 위치한 조엄기념관. 사진 /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부산] 수원 출신인 박지성을 기념하는 수원 박지성로처럼 우리나라에는 인명을 딴 도로가 꽤 많다. 그 인물에 얽힌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을까? 사람 이름을 붙인 도로명을 찾아가 인물과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원도 원주시에는 조엄로라는 도로명이 있다. 이곳은 조선 통신사였던 조엄 선생(이하 조엄)의 사패지이다. 유배 중에 죽음을 맞은 그의 명예를 후에 아들이 회복시켜 풍양 조씨 집성촌이었던 원주로 이장했다. 그 후 조엄의 업적을 기려 근처 도로에 조엄의 이름을 붙였다.

묘 근처에는 조엄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고구마로 만들 수 있는 음식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엄과 고구마가 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기에 기념관의 시작부터 고구마 음식 모형이 즐비한 것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조엄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산 영도 조내기마을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영도에 뿌리내린 구황작물 고구마
부산 영도는 우리나라에서 고구마가 처음으로 심어진 고구마 시배지이다. 이곳에 고구마가 뿌리내리기 까지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지금은 간식으로도 먹지만 과거 고구마는 기근을 날 때 먹던 식량으로 구황작물이 된지 오래지 않았다.

조엄기념관에 있는 조선통신사 디오라마. 사진 / 노규엽 기자
조엄기념관에 있는 조선통신사 디오라마. 사진 / 노규엽 기자

기근이 지속되던 1763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던 조엄은 대마도에서 고구마 수확 현장을 보았다. 강태인 영도구 문화관광 자문위원은 "대마도 농부가 조엄에게 이것은 코위코이이모이라는 것인데 굽거나 쪄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며 이어 "조엄은 말을 들은 순간 굶어죽는 백성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마도 사람이 말 한 '코위코이이모'는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조엄이 이것을 들리는 대로 적어 '고귀위마'라고 칭했고, 이것이 지금에 와서 '고구마'가 되었다.

조엄이 고구마를 쌀과 교환해 먹어보고는 그 맛이 좋아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면 구황식으로 알맞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는 그 길로 부산에 고구마 종자를 보냈다. 한 줄기에 주렁주렁 여러 개 매달린 고구마는 그의 눈에 금은보화보다 빛나보였을 것이다.

조엄 기념관에 있는 고구마로 만든 음식 모형. 사진 / 노규엽 기자
조엄 기념관에 있는 고구마로 만든 음식 모형. 사진 / 노규엽 기자

이쯤 되면 조엄이 고구마를 처음 심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엄은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 가져다 준 사람일뿐 처음 재배한 사람은 아니다. 아쉽게도 조엄이 전달한 고구마는 보관 방법을 알지 못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어 쓸 수 없게 되었다. 이듬 해 동래에 부임한 강필리 동래부사가 이 기록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대마도로 사람을 보내 고구마를 다시 가져오게 했다. 동래와 절영도(지금의 영도) 두 곳에 심었는데, 그중 절영도가 대마도와 환경이 비슷해 재배에 성공하여 많은 수확을 얻었다.

이렇게 얻어진 것이 조내기고구마이다. 조엄이 뿌린 고구마를 캐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조내기고구마는 크기가 아이 주먹만 하다. 그 작은 몸에 단맛이 옹골차게 담겨있어 진한 밤 맛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기는 작아도 많은 사람의 배를 불렸다. 처음에 실패한 것은 아쉽지만 조엄의 애민정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고구마를 영영 보지도 못했을 수 있다. 이를 기려 부산 영도 봉래산 자락에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이 지어졌다.

Info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
주소 부산 영도구 청학동 산 54-156

영도구 청학동 봉래산 둘레길에 자리한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 입구. 사진 / 김세원 기자
영도구 청학동 봉래산 둘레길에 자리한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 입구. 사진 / 김세원 기자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고구마 조형물은 옆에서 봐야 그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고구마 조형물은 옆에서 봐야 그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조엄을 찾으며 둘러본 조내기마을
영도구 청학동 봉래산 둘레길에 자리한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구마 시배지 상징 조형물이 보인다. 앞에서 보면 평범한 탑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옆에서 봐야 왜 고구마 상징 조형물인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옆쪽으로 돌면 고구마의 속살만큼 노란 황금색 고구마 모양이 나타난다. 고구마 위에 달린 잎사귀는 땅을 뚫고 나온 생명의 기쁨을 의미한다. 모두가 굶주리던 시기에 땅을 뚫고 나온 고구마 잎사귀는 정말 반갑고 기쁜 존재였으리라 생각된다.

아이들 몸통만한 고구마 모형이 달린 난간. 사진 / 김세원 기자
아이들 몸통만한 고구마 모형이 달린 난간. 사진 / 김세원 기자
사방이 고구마로 가득차 있어 아이들이 고구마와 친해지기 좋은 고구마 터널. 사진 / 김세원 기자
사방이 고구마로 가득차 있어 아이들이 고구마와 친해지기 좋은 고구마 터널. 사진 / 김세원 기자

조형물을 등지고 올라가면 아이들 몸통만한 크기의 고구마들이 달려있는 고구마 난간과 터널이 나온다. 이곳은 주변 유치원아이들이 견학을 오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뒤편으로 연결된 미끄럼틀이 있기 때문인데, 미끄럼틀을 타려면 고구마 모양 통로를 지나 그물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곳은 사방이 고구마로 가득 차있어 아이들이 고구마와 친숙해지기에 안성맞춤이다. 내년이면 역사관과 체험관도 생긴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을 듯하다.

조내기 마을 한 편에 자리한 문익정은 조엄의 호를 따서 이름지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조내기 마을 한 편에 자리한 문익정은 조엄의 호를 따서 이름지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공원에서 나와 조내기마을을 둘러보자. 조내기마을이란 이름에 걸맞게 내려가는 길의 벽에도 조엄과 강필리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내리막길이 끝나면 조엄의 호를 따서 이름붙인 정자 문익정이 나온다. 문익정을 등지면 부산의 넓은 바다가 보이니 이곳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구마가 처음 심겨졌던 동삼동 일대의 현재 모습. 사진 / 김세원 기자
고구마가 처음 심겨졌던 동삼동 일대의 현재 모습. 사진 / 김세원 기자

조내기고구마는 아쉽게도 6.25전쟁 전후로 맥이 끊겼는데, 피난민이 영도로 들어오면서 조내기고구마 밭이 모두 집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삼동 주변의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 부지가 모두 과거 고구마 밭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조내기 고구마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조내기역사공원 5분 거리에 있는 밭에서 조내기고구마를 80% 이상 복원해 냈다고 하니 조만간 진한 밤 맛의 고구마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고구마의 인기가 높아진다. 달콤하면서 부드럽고 배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고구마를 먹을 때면 백성들을 생각하며 고구마를 들여 온 조엄 선생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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