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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단종 임금의 넋이 서린 강원 영월, 대중교통으로 만난다
단종 임금의 넋이 서린 강원 영월, 대중교통으로 만난다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6.07.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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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으로 떠나는 여행, 강원 영월 편
고을 사람 모두 그 분을 받들고 있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강원] 영월 땅에는 비운의 임금 단종의 자취가 깊게 새겨져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넘은 시점에도 슬픈 사연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영월 사람들은 아직도 단종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는 강원도 영월을 찾아가는 일은 단종의 넋을 위로하는 시간과 맞물린다.

역사를 잇는 교두보, 영월5일장
영월역에서 몸을 내리면 70년대 풍경이 남아있는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마을을 보게 된다. 과거 동강 물줄기를 따라 뗏목꾼들이 드나들던 커다란 포구가 있던 곳이다. 그 시절에는 동강에 뗏목이 가득했고, 강변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붐볐다.

지금은 뗏목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덕포리 강변에는 4, 9일마다 장이 선다. 딱히 규모가 크지 않고 대단한 살거리가 있지도 않지만, 다양한 물건과 이야기 거리가 모인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살 사람이 있을까 싶은 골동품을 팔러 온 장사꾼, 싸구려 옷을 걸어놓고 호객을 하는 사람, 농작물ㆍ해초류 등을 잔뜩 갖고 나온 장꾼들. 옛날, 보부상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스쳐지나가는 재미가 있다.

장터의 최고 재미는 역시 먹을거리다. 강원도의 장터답게 메밀부침, 메밀전병, 감자전이 있고, 큰 가마솥에 옛날식으로 통닭을 튀기는 곳도 있다. 아무 것도 사지 않더라도 면박을 주는 이 하나 없는 영월5일장에서는 저렴한 즉석 음식들을 즐기기만 해도 충분하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영월역 인근의 덕포리에서는 5일마다 장이 열리며 여러 물건과 이야깃거리가 모인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금강정은 영월 선비들이 풍월을 읊던 장소이나, 단종 사후에 궁인들이 목숨을 던진 슬픈 사연도 남아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여인들의 충절이 남은 곳, 금강정과 창렬암
“금강정 오른편의 절벽을 영월 사람들은 낙화암이라고 불렀지요. 조선후기 영월부사를 지낸 조하망이 ‘그들은 충절을 지킨 것’이라는 의미로 ‘창렬암’이라는 명칭을 다시 지었답니다.” (전순희 영월군 문화관광해설사)

장터를 벗어나기 전에 동강 건너편의 바위 병풍을 살펴보면 정자가 하나 보인다. 정자에 앉아 푸른 동강과 영월의 명산인 계족산, 태화산 정취를 조망할 수 있는 금강정이다. 강을 건너가기 전에 먼저 바라봐야하는 이유는 금강정 오른편에 깎아지른 절벽으로 남은 창렬암 때문이다.

창렬암은 단종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임금을 따르던 궁인들이 몸을 던져 목숨을 버린 곳이다. 그 수가 어마어마하여 강물에 뜬 시체가 온 강을 가리고, 하늘도 노했는지 비와 천둥이 밤새도록 내리쳤다고 한다. 

영월대교를 건너 금강정으로 향하면, 영월의 역사적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들이 줄을 지은 숲길을 지난다. 엄흥도와 함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정사종의 시비석과 남원 춘향전을 닮은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 고경춘을 기리는 석벽 등.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금강정 주변에는 영월인물들의 슬픈 사연도 함께 남아있다. 이를 알게 됐다면 금강정 뒤편 언덕에 있는 민충사에서 단종을 위해 몸을 던진 궁인들의 넋을 기리고 돌아서길...

Info 금강정
주소 강원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영월의 새로운 식구, 라디오스타 박물관
금강정 바로 옆에 2006년 상영작인 영화 <라디오스타>와 관련된 박물관이 있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구)KBS 영월방송국이 있던 자리다. 2004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방송국으로서의 역할을 끝냈던 영월방송국은 <라디오스타>로 인해 촬영명소가 되었고, 2015년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개관하며 새 생명을 얻었다.

<라디오스타>는 한때 영월을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로망이었다. 관객수 180만 정도로 크게 흥행은 하지 못한 영화였음에도, 촬영지 투어를 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영월 사람들은 촬영지였던 가게들에 간판을 하나씩 달아놓으며 볼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라디오스타의 흔적이 많이 사라지고,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새로운 명소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고릿적 사용했던 라디오들을 볼 수 있고, 라디오 기기 제작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해보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방송에 관심이 많은 아이와 함께라면 꼭 한 번 찾아볼만한 곳이다.

Info 라디오스타 박물관
입장료 어른 4000원, 초중고생 3000원 유치원 2000원
주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84-3
문의 033-372-8123

사진 / 노규엽 기자
(구)영월방송국을 개조해 각종 라디오 관련 체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든 라디오스타 박물관.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단종의 첫 유배지인 청령포는 예나 지금이나 배를 이용해야만 건널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서…. 청령포
“지금은 솔숲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휴식처가 되어주지만, 단종이 이곳에 왔을 당시에는 밀림이 우거지고 맹수들도 들끓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청령포 단종어소에서 만난 전순희 문화관광해설사가 500여 년 전 청령포의 척박한 모습을 알려준다. 소년 임금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조선시대 가장 불행한 왕이다.

그가 왕위에 있었던 시기는 단 3년. 수양대군파의 압박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넘긴 단종은 상왕이 되어 수강궁(후일의 창경궁)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사육신 사건(병자옥사)이 오히려 화가 되어, 세조의 신하들로 하여금 단종을 멀리 보낼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결국 1457년 6월,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지시받는다. 그리고 단종은 청계천 영도교에서 아내인 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하고, 지형이 험한 영월에서도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쪽으로는 넘지 못할 절벽이 우뚝 선 청령포에 갇히고 만다.

어린 임금은 그곳에서 자신의 슬픔을 관음송에 하소연하고, 가까운 봉우리에 올라 돌로 탑을 쌓고 한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아버지 문종의 장자로 태어난 것밖에는, 수양대군의 조카라는 것밖에 없었다.

Info 청령포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군인 2500원, 어린이 2000원
주소 강원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33
문의 033-372-1240

단종이 한 많은 생을 마감한 곳, 관풍헌
지금은 빌딩도 제법 서있는 읍내의 중심부에 타임머신이 소환된 것만 같은 관풍헌과 자규루가 있다. 원래는 조선 초기에 지어진 관아 건물들이지만, 영월에서는 단종의 한이 서린 곳으로 더 의미가 있다.

단종의 첫 유배지는 청령포였으나, 때는 여름이라 장마로 섬이 범람할 위험이 있어 단종은 관풍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단종의 또다른 숙부인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또다시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세조의 신하들은 ‘완전한 해결’을 촉구했고, 결국 세조는 자신의 입으로 조카의 사사를 명한다.

향년 17세, 피어보지도 못한 소년 임금의 죽음에 영월 사람들은 통곡을 금치 못했다고 전한다. 한편, 야사에 따르면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관풍헌을 찾았으나, 차마 어린 임금에게 명을 전하지 못하고 그저 울었다고 한다. 그때 출세에 눈이 먼 관청의 하인 공생이란 자가 단종을 뒤에서 활줄로 목을 졸라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소 강원 영월군 영월읍 관풍헌길 34-1

사진 / 노규엽 기자
관풍헌 앞쪽의 자규루는 단종이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자신의 처지와 견주어 자규사를 지은 일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장릉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솔숲. 최근의 장릉은 사람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장소가 되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17세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의 능. 사진 / 노규엽 기자

묏자리마저 안타까운 어린 임금
“장릉은 조선의 왕릉 중 한양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봉분 좌우에 세우는 망주석에도 유일하게 세호(細虎)가 없는 등 여느 조선 왕릉들과 구조적으로 다른 점이 많죠.”

장릉관광안내소의 이갑순 문화관광해설사가 마지막까지도 서러웠던 단종의 묏자리에 대해 안타까운 내색을 비친다.

반역죄로 몰려 죽은 단종은 시신을 눕힐 자리도 얻을 수 없었다. 단종을 애지중지했던 영월 사람들도 세조의 노여움이 두려워 차마 시신을 수습할 수 없었던 것. 그러자 영월의 호장 엄흥도와 정사종이 나섰다. 그들은 밤을 틈타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고, 시신을 안장하기 위해 엄흥도 가문의 선산을 올랐다. 그러던 중 노루가 쉬고 있어 눈이 녹아있던 자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시신을 얹은 지게가 그때부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사내는 이곳이 어린 임금님이 원하는 자리라는 생각을 하여, 그곳에 단종의 무덤을 만든다.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장소를 알리지 않은 채….

그리고 200년이 흘러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명예를 회복하고 노산군 대신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기존 왕들의 무덤 기준에 맞춰 능을 새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짧은 생애동안 박복했던 어린 임금은 잠든 자리마저 불편하게 남은 것이다.

그래도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세계유산에 지정되면서 장릉의 입지도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힐링을 선호하면서 장릉이 영월군민과 관광객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500년 넘은 세월이 지나,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가에서 쉬고 있는 모습에 어린 임금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애달픈 그를 위해 무덤 앞에서 잠시 고개를 조아린다.

Info 장릉
입장료 어른 1400원, 청소년/군인/어린이 1200원
주소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문의 033-372-3088

사진 / 노규엽 기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영월을 여행하는 팁을 공개한다. 사진 / 여행스케치 DB

Tip
1. 단종의 발자취를 쫓는 형태로는 청령포-관풍헌-장릉 순으로 이어야 하나, 버스시간에 따른 시간낭비를 피하려면 관풍헌-장릉-청령포 순으로 찾아가는 것이 낫다. 관풍헌을 본 후 장릉으로 갈 때는 영월터미널 사거리 인근의 김약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이용한다. 장릉에서 청령포로는 버스 이동이 쉽지 않아, 영월 저류지 수변공원을 산책하는 방법을 택했다.

2. 영월역과 영월버스터미널 사이, 영월초등학교 인근에 이야기가 있는 벽화가 그려진 골목이 있다. 이곳에는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모델로, 또는 화가로 참여하여 벽화 및 조형물을 남겼다. 관풍헌에서 장릉으로 이동하기 전에 시간이 있다면 골목에 들러 구석구석 숨겨진 조형물들을 찾아보자.

3. 청령포는 배를 이용해 오가는 곳이므로, 특히 시간에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 입장시간은 오후 5시이고, 오후 6시 이전에는 반드시 배를 타고 나와야 한다. 청령포에서 영월읍으로 향하는 버스도 많지 않으므로, 버스시간도 체크하여 청령포 관람을 하도록 하자.

4. 영월읍 내를 오가는 버스들 중에 미니버스(일명 유치원 버스)로 운행되는 노선도 있다. 일반적인 모습의 시내버스를 기다리다 버스를 놓칠 수도 있으므로, 이 점을 유의하도록 하자.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6년 8월호 [대중교통으로 떠나는 여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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