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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춘천 스케치] 가슴에 사랑을 심어준, 아! 의암호변 산책길
[춘천 스케치] 가슴에 사랑을 심어준, 아! 의암호변 산책길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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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의암호 풍경.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의암호 풍경.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춘천 시내에서 본 일몰. 내륙에서 본 일몰은 바다에서 본 그것과 다른 감흥을 준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춘천 시내에서 본 일몰. 내륙에서 본 일몰은 바다에서 본 그것과 다른 감흥을 준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여행스케치=춘천] 호반의 도시 춘천. 사계절 언제 가도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담아올 수 있다는 아름다운 도시 춘천. 춘천에 살고 있는 작가의 손으로 춘천의 어제와 오늘을 매월 스케치합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춘천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지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떠날 때만 해도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엔 늘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고 기본요금 6백 원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약속 장소가 엇갈린 친구들은 ‘명동’의 닭갈비골목 언저리에서 쉽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그 단순함이, 소박함이 촌스럽고 싫었다. 늘 떠나고 싶어했고, 얼마 안가 학교로 군대로 직장으로 우린 그렇게 춘천을 떠났었다. 맛태기 없는 서울 생활 7년, 역시 내가 살아야 할 곳은 고향인 듯 싶어 춘천으로 돌아왔다.

네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그녀와 밤새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새벽녘, 그녀가 한 마디 했다. “살만하다는 얘기 그만하고 드라이브나 하자”고. 드라이브! 참 오랜만에 들은 가슴 설레는 어휘였다.

춘천은 어디를 가든 드라이브 코스이고 데이트 코스이다. 춘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어쩌다 한번 춘천을 방문한 서울 친구들이 한 이야기다. 춘천은 모든 길이 드라이브 코스 같다고. 게다가 물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춘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시내에서 5분 거리만 나가면 물을 만날 수 있다. 춘천 사람들이 봄이 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공지천변이 아닐까. 춘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지천에 있는 카페, ‘이디오피아’나 ‘호수의 집’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이 둘을 거치지 않고 춘천에서 데이트했다고 할 수는 없을 정도로 청춘남녀의 명소였다.

의암호에 있는 섬 중도. 서면 중간 지점에 있는데 지금은 유원지로 변했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의암호에 있는 섬 중도. 서면 중간 지점에 있는데 지금은 유원지로 변했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서면에는 넓은 들녘이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서면에는 넓은 들녘이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우리는 물가나 한바퀴 돌자며 의암댐을 거쳐 지금은 호수로 변해버린 공지천둑을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춘천댐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니 서면이 나온다. 의암댐에서 우회전을 해 쭉 가다보면 춘천댐까지 이어지고 그곳에서 더 가면 화천과 철원으로 이어진다. 의암댐을 건너기는 여러 번이었지만 이처럼 여유를 부리고 차창에 시선을 고정하기는 처음이지 싶다.

신록이 우거지고 들판이 푸르다. 가슴이 툭 터질 것 같다. 자연을 껴안는 법을 너무나 모르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의암댐을 지나자 삼악산 이정표가 보인다. 서울 사람들도 심심찮게 찾는다는 그 유명한 삼악산을 난 아직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산악 자전거를 타고, 바위 암벽을 할 수 있다는데…. 언제 남편과 아들을 꼬드겨서 삼악산에 올라야겠다.

때마침 비가 내려 음산한데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온 헝가리광시곡은 그녀(친구)의 속앓이를 보듬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말없이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킨 그녀는 거의 얼어붙다시피 뭔가에 골몰해 있었다. 그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어떤 슬픔보다 거의 잊고 살거나 부딪쳐본 적 없는 자연에 대한 원초적 푸근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퉁이를 도느라 물이 잠시 보이지 않을 때도 다시 물이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물과 적당한 바람, 말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저 멀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붕어섬, 어수선함은 다 가려진 채 삶의 언저리만 보여주는 시내 풍경들은 잡다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기에 충분했다.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 여름에는 감자나 옥수수를 싸게 살 수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 여름에는 감자나 옥수수를 싸게 살 수 있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서면은 마을마다 박사가 있어 전국 최고의 박사마을로 통한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서면은 마을마다 박사가 있어 전국 최고의 박사마을로 통한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들판을 물들인 연보랏빛 감자꽃 향연 서면이다. 춘천을 찾아오는 지인들의 단골 관광코스(?)가 되어버린 서면. 서면을 이곳 사람들은 ‘박사마을’로 부른다. 지금까지 배출한 박사만도 무려 80여 명! 널리 알려진 인물로 한승수 국회의원과 박용수 강원대학교 총장이 있다. 작은 동네에서 박사 탄생이 잦아 당연히 화제가 되었고 이를 소개한 언론(강원일보)에 의해 1968년경부터 ‘박사마을’로 불리게 되었단다.

의암댐이 생기기 전에는 춘천시내로 나오려면 강을 두 번이나 건너야했다. 땔감이나 산나물을 팔아 학비를 마련했던 부모들은 새벽시장을 나와 잠깐 난전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열린 시장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소양로의 ‘번개시장’이다.

해를 가장 먼저 받아 선천적으로 부지런한데다, 강 건너 전깃불 들어오는 시내로 나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부모들의 교육열은 자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허리가 휘도록 보따리를 져 나른 그 날의 아주머니들이 모두 판검사·의사·박사들의 어머니였단다.

신숭겸 장군 묘역에 핀 연꽃.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신숭겸 장군 묘역에 핀 연꽃.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신숭겸 묘역-신숭겸 묘역은 가족 여행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
신숭겸 묘역-신숭겸 묘역은 가족 여행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

“선의의 경쟁을 한 것이 오늘날 마을의 큰 자부심과 자랑거리가 된 셈”이라며 최선화 서면 향우회장은 일러준다. 드라이브를 하다보니 물 구경 못지 않게 구경거리가 쏠쏠하다. 현암리를 조금 지나 왼쪽으로 접어드니 ‘장절공 신숭겸의 묘역’이다.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한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은 927년 태조가 견훤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김락과 함께 그를 구하고 태조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장군이다. 태조는 머리가 잘린 그의 시신에 황금으로 머리를 맞추어 장사지내면서 1기3분(一基三墳)의 의총으로 예장하였다고 한다. 한 때 훼손을 염려해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요즘 다시 개방이 되었다.

물가에서도 때로 물은 부족한 법, 농민들은 물을 대느라 어수선한데 장절공 묘역 입구에 있는 연못에는 더 이상 예쁠 수 없을 만큼 수련이 화려했다. 고인 물에서 어찌 저런 꽃이 피어날 수 있는 건지 들여다볼수록 신기하다.

충정이 드높은 탓인지 그의 묘역에 우뚝 솟은 푸른 소나무가 숨을 멎게 한다. 깨끗한 죽음을 보여주듯 말이 없다. 단단하게 뿌리내린 잔디 사이로 작은 곤충들이 떼지어 노닐고 있다. 그들을 행여 밟을까 걸음을 옮기려니 흐드러진 토끼풀, 강아지풀이 또 발목을 잡는다.

춘천과 서면 사이에 있는 화목원. 젊은이들이 꼭 들르는 데이트 코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춘천과 서면 사이에 있는 화목원. 젊은이들이 꼭 들르는 데이트 코스. 2003년 7월. 사진 / 남궁순금

얼른 이곳을 나가야지 하는데 이번엔 민들레, 작약, 붓꽃, 질경이, 애기똥풀까지 자기를 알아달란다. 몸둘 바를 모르겠다. 도대체 얼마 만인가. 여리고 기꺼운 연초록의 생명들과 이렇듯 숨바꼭질을 해본 것이.

숲길을 걸어나오는데 솔밭 안쪽에서 들려오는 유치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높다. 내 아이도 몇 년 전 저기서 저렇게 웃었었지. 또 시간이 흐르면 나도 언젠가 오늘을 생각하며 다시 이곳에 서 있겠지.

이제 막 자란 어린 모들이 싱그럽다. 그 옆에서 노니는 학 몇 마리가 차 소리에도 떠날 줄 모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논둑길을 빠져나오면서도 괜스레 그들 모두에게 미안했다. 모두 초록의 소리로 말하고 손짓하는데 나만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니 말이다.

서상리 고분 유적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잠시 망각하고 있던 풍경 하나를 눈에 담았다. 연보라색 감자꽃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여지껏 살고 있지만 그렇게 많은 감자꽃은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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