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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사찰] 구름이 사랑을 전해주는 절, 청도 운문사
[이달의 사찰] 구름이 사랑을 전해주는 절, 청도 운문사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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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청도] 고려 태조 왕건이 이름을 하사하고, 비구니들의 승가대학이 있는 곳,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 돔처럼 생긴 소나무 숲길이 서방정토를 연상시켜주는 아름다운 절 운문사.

청도 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에 올라 맨 앞자리에 앉으니 기사 아저씨가 “멀미할낀데!”한다. 청도에서 운문사 가는 길 1시간. 길은 잘 포장되었지만 마을 따라 가는 길이 구불구불하다.

청도 운문사.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청도 운문사.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운문사 창건설화와 삼국유사
운문사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흥왕(557년) 때 한 신승이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달아 7년에 걸쳐서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현 운문사인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 현재는 운문사와 대비사만 남아있다.

<삼국유사>에서 운문사 중창자 보양스님의 전설이 전해진다. 보양스님이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해 바다를 건너려고 하니 용왕이 그를 용궁으로 초청하여 비단 가사 한 벌을 주면서 그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가 작갑(鵲岬)에 절을 지으라고 한다. 보양스님이 절을 세우려고 산에 올라 살펴보니 산아래 5층 황탑이 보였다.

내려와서 찾아보니 아무 흔적도 없다. 다시 올라가서 탑을 보았던 자리를 살펴보니 까치들이 땅을 쪼는 것이 아닌가. 보양스님은 용왕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작갑=까치곶’, 그 곳을 파보니 많은 벽돌이 묻혀있다. 그 벽돌로 탑을 쌓고 절을 지어서 ‘작갑사’라고 하였다. 또한 보양스님은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이 청도에서 저항하는 세력을 함락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무릇 개라는 짐승은 밤에만 지키지 낮에는 지키지 않으며, 앞을 지키지 뒤를 지키지는 않는다. 마땅히 낮에 그 북쪽을 쳐야 한다’하여 이 일대를 평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이야기는 청도읍 근처에 있는 덕사에 자세히 적혀있다. 이 때의 인연으로 땅 5백결과 오갑에‘운문선사’라는 이름을 왕건에게 하사받는다. 운문사라는 이름의 유래다.

운문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님이 있으니, 일연스님이다. 고려 충렬왕이 일연 스님을 운문사 주지로 추대한다. 일연은 72세의 고령으로 운문사에서 <삼국유사> 집필에 힘쓴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절 일부가 소실되고 그 후로 여러 번의 중창을 거친 뒤 1977년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해서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이 되었다. 운문사는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으로 시작해 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었다.

수나무 숲 터널.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수나무 숲 터널.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나무 숲 터널이 일주문처럼 서 있다
매표소부터 소나무 숲이다. 1백년에서 1백50년 정도 된 소나무가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소나무 터널을 만들어 일주문처럼 서 있다. 저절로 세상 번뇌가 접어진다.  

매표소 앞에서부터 절까지 20여 분. 춥지만 조용해서 머리가 저절로 맑아진다. 운문사는 호랑이가 앉아있는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불러진 호거산 아래 넓은 평지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남쪽은 운문산, 북동쪽은 호거산, 서쪽은 억산과 장군봉. 그래서 이리 보아도 산, 저리 보아도 산. 절 지붕 너머로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둘러있다. 이 모양이 연꽃 같다고 하여 운문사를 연꽃의 화심이라고도 한다.

만세루에서 학인스님이 북을 치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만세루에서 학인스님이 북을 치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운문사에는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다. 긴 담장 중간에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는 범종루가 입구이다. 범종루를 들어서면 수령 5백년 정도 된 천연기념물인 처진소나무가 보인다. 얼마나 많은 가지가 땅으로 처져 있는지 여러 개의 쇠기둥이 가지들을 받치고 있다. 그 가지 밑으로 산비둘기들이 와서 추위에 언 몸을 녹인다.  

처진소나무 뒤에 있는 만세루는 2백여 평이나 되는 건물로 조선초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만세루는 옛날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나 설법을 할 때 사용했던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학인스님들이 와서 북을 친다. 가람 배치형태가 여느 절과 달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중창되면서 바뀐 것인지, 높은 산아래 호젓하게 앉아있으나 법당이 서로 붙어있는 느낌이 들어 건물배치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오백전 앞에서 바라본 비로전과 쌍탑 삼층석탑.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오백전 앞에서 바라본 비로전과 쌍탑 삼층석탑.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운문사에는 7개의 보물이 있다. 비로전과 삼층석탑, 작업전의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석주, 금당 앞에 있는 석등, 원응국사비와 비각, 청동호다. 보물 제 83호인 비로전은 고려 숙종(1105년) 원응국사가 창건했으나 조선 효종 때 중창한 것이다. 팔작지붕에 민흘림기둥으로 된 다포구조다. 전면 중앙 문은 5짝 꽃살무늬 분합문으로 되어있는데 채색된 꽃살이 겨울 볕에 곱게 피었다.  

비로전의 주불 비로자니불과 삼신탱화.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비로전의 주불 비로자니불과 삼신탱화.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비로전 앞 보물 삼층석탑은 동서 쌍탑이다. 화강암으로 높이가 5.4m. 기단부 각 면에 좌상 팔부중상을 조각하였다. 비로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가부좌한 오른발을 풀어서 앞으로 조금 내밀고 있다. 곧 중생을 구제하러 나서려는 것인지? 후불탱화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 가부좌하고 앉아 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삼신탱화로 통도사 삼신불화와 함께 수작으로 알려졌다.

운문사에서 가장 작은 전각인 작업전은 보양스님의 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운문사에서 가장 작은 전각인 작업전은 보양스님의 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운문사에는 아주 흥미로운 법당이 하나 있다. 제일 작은 법당인‘작압전’이 그것이다. 작압전은 보양스님의 황탑을 쌓은 창건 설화를 뒷받침해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 된 건물인 작압전은 신라시대 전탑 형식의 불전이었으나 벽돌이 제거되고 목조건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돌기둥에 새겨진 사천왕상.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돌기둥에 새겨진 사천왕상.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내부에는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석주가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좌와 공배가 모두 갖추어진 완전한 불상이다. 섬세하게 조각된 광배 높이가 92cm, 대좌 높이가 41cm이다. 아담하나 장중한 느낌을 준다. 사천왕석주는 나무가 아닌 돌기둥에 새겨진 사천왕상인데 갑옷을 입은 무인상 4기가 각기 꽃가지, 삼고저, 보탑, 보검을 쥐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동방지국천왕, 서방광목천왕, 남방증장천왕, 북방다문천왕으로 불법을 옹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밖에도 운문사에는 오백나한상을 모신 오백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지장보살과 십대명왕상이 봉안된 명부전 등이 있다. 법당마다 조용하다. 곱은 손을 모아 저절로 합장을 하게 한다. 소란함이 떠난 곳에는 몸이 스스로 경건해 진다.

금당 앞의 석등.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금당 앞의 석등.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학인스님이 끓여주는 차가 언 가슴을 녹인다
잠시 종무소에 들르니 학인스님이 차를 내준다. 법명을 물어도 대답치 않고 직분만 알려준다. 절이 조용하고 좋다하니 빙긋이 웃는다. 이곳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하니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지요’하며 웃기에 나 또한 조용히 미소를 짓고 나왔다.

운문사는 전국에서 가장 큰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2백50명의 스님들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수행도량이다. 한 학년이 60여명 정도, 입학할 때도 속세의 대학처럼 3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할 만큼 입학이 어렵다.

새벽 3시에 기상해 예불, 아침 공양, 공부, 울력, 밤 9시 취침까지 빡빡하게 짜여져 있어서 학문과 노동을 겸하고 있다. 겨울, 여름, 초파일 방학 외에 아홉달 동안은 안거에 들어간다. 스님에게 얻은 <운문> (승가대학발행) 가을호를 법당 옆에 기대서서 읽었다. 승가대 2학년 학인스님이 쓴 ‘원두일지’ 글에는 젊은 학인스님들의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수령 5백년 된 처진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6m 정도 지상 2m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관람객을 반긴다.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수령 5백년 된 처진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6m 정도 지상 2m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관람객을 반긴다. 2004년 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8월 7일 목요일. 제목 : 새몰이. 준비물 : 돌맹이 넣은 페트병 두 개.
윗밭과 아랫밭에 각각 새몰이 당번 스님이 둘씩 밭 가장자리와 중간쯤에 포진해 앉는다. 산비둘기, 꿩들은 평소엔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이지만 김장용 배추씨와 무씨를 야속하게 남기지 않고 쏙쏙 뽑아 먹어치우는 통에 씨 뿌린 당분간은 소리있는(?) 전쟁 기간이다. 물론 비폭력이지만.

새가 유유히 저공 비행으로 씨앗을 향해 돌진해 오면 새몰이 스님들은 페트병 두 개를 두드리며 “워~이~워~이~” 밭을 가로 지르고 세로 지르며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아마 산비둘기 생각에 “매일 보시니 자비니 말하면서 거참! 쬐깐한 씨알맹이 가지고 되게 치사하게 구네”할지도 모르지만 할 수 없다. 다른 큰 열매를 따다 보시할지언정 우리 대중스님들이 겨우내 먹을 김장씨앗 하나는 안되지."

커피 자판기 앞에서 기계와 씨름하는 스님, 만세루에서 북을 두드리는 스님들이 진정 산 속의 화심이 되어 진흙뻘 속에 핀 연꽃처럼 단아하게 웃고 있다.  

Tip. 운문사 가는 길
청도역에서 내려 맞은편에 청도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탄다. (청도 -> 운문사행 7:35, 9:10, 10:20, 11:10, 12:10, 14:00, 15:00, 16:10, 18:00, 19:45분. 운문사 -> 청도행 7:10, 11:00, 12:20, 13:35, 14:40, 15:50, 16:50, 17:40, 19:15)
운문사에서 청도로 오는 버스는 철도시간과 맞추어서 바로 철도를 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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