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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숨에서 하룻밤, 休] 한국판 노아의 방주, 방태산 자연휴양림
[숨에서 하룻밤, 休] 한국판 노아의 방주, 방태산 자연휴양림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4.09.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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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방태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시원한 물줄기.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방태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시원한 물줄기.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인제] 조선시대 비결서 ‘정감록’에 보면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최고의 피난처로 삼둔사가리를 꼽았다.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남면에 걸쳐 있다. 삼둔은 살둔, 월둔, 달둔을 말하고 사가리는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를 말한다. 둔은 산 속에 숨어 있는 평평한 땅이고, 가리는 밭을 갈 수 있는 땅을 의미한다. 그 만큼 이 지역은 오지 중에 오지다.

장터 구경을 하면 이것저것 살 것이 많다. 그러다 보면 한 보따리가 되고 집에 이고 와 방안에 펼쳐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워낙 산 것이 많아 어느 것부터 정리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정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창고에 보관하거나 냉장고에 던져버리고 만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매번 우리 국토의 감동을 한 아름 지고 왔지만 어떤 것부터 써내려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이번 인제 여정 역시 마찬가지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감동을 담고 왔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걱정이다. ‘국토의 맥박, 백두대간?’ 이렇게 거창한 말로 시작하면 또다시 글쓰기를 포기할 것 같아 차라리 쉬운 경험담을 엮어 나가는 것이 편할 것 같다.

방태산을 끼고 있는 계곡이 바로 사가리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적가리골이다. 방동교에서 휴양림 매표소까지 계곡 길 3km는 포장 길이고 매표소에서 다시 3km는 비포장 길이다. 적가리골이야 말로 자연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  

힘이 넘치는 방태산 이단폭포에서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다.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힘이 넘치는 방태산 이단폭포에서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다.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그야말로 선경을 연출한다. 하늘 한 점 볼 수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졌고 구슬 같은 폭포와 소와 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열목어가 노닐고 소쩍새가 구슬프게 울어 젖히면 이곳이 천상인지 지상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이런 숲길을 거닐면 참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방태산에는 피나무, 박달, 소나무, 참나무류 등 다양한 수종의 천연림과 낙엽송 인공림까지 구성되어 있어 계절에 따라 녹음, 단풍, 설경 등 자연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열목어, 메기, 꺾지 등의 물고기와 멧돼지, 토끼, 꿩, 노루, 다람쥐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방태산 정상엔 대략 2톤 정도 되는 암석이 있다. 그곳에 정으로 쪼아 뚫은 구멍이 있는데 그 옛날 대홍수가 났을 때 이 곳에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밧줄로 매 달았다고 하여 ‘배 닿은 돌’이라고 부른다. 그걸 입증하듯 지금도 정상의 바위틈에서 조개껍질이 출토된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방태산 산림문화휴양관.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방태산 산림문화휴양관.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매표소를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산림문화휴양관이다. 이런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밤중에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 별만큼이나 통나무집 예약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성수기 때는 한 달 치 예약이 끝났다고 귀띔해준다.

여행하면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숙박비다. 홀로 하룻밤 보내는데 몇 만원을 지불하려니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엔 주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 가장 가까이 자연과 벗삼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야영장 역시 나무탁자도 있고 바비큐시설, 화장실과 취사장까지 갖추고 있다. 밤에 할로겐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센티멘탈한 느낌이 든다.

텐트에 누워 고개만 빼꼼이 내밀면 수많은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별을 세다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바위를 훑으면서 지나가는 계곡의 물소리 역시 고막을 후빈다. 도시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으면 소음이라고 치부했을 텐데….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좋다. 어차피 홀로 야영하기로 작정했으니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야 한다.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하고… 그 자문자답은 밤새도록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누가 물어 보았는지 누가 대답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내 눈이 스르르 감겼기 때문이다.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린다. 그 소리에 눈이 확 떠졌다. 지금 몇 시쯤 되었을까 궁금하여 시계를 찾다가 그마저 포기했다. 산에 와서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깜깜하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것이 산 속의 시간인데, 칠흑처럼 깜깜한 것을 보니 지금은 잘 때인가 보다. 텐트 옆에 놓아둔 코펠 뚜껑에도 빗방울이 떨어진다. 경쾌한 소리가 귓전에 머문다. 물소리, 새소리, 텐트소리, 코펠소리, 숨소리… 오케스트라 화음에 내 숨소리까지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피식 웃어보고 다시 침낭 속을 파고든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있는 필자.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있는 필자.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눈이 떠졌다. 동이 트면서 텐트 안도 밝아졌다. 텐트 지퍼를 열었더니 상쾌한 아침 공기가 텐트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붉게 물든 쪽이 동쪽이겠지. 이젠 일어날 시간인가 보다. 컵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때운다. 소찬이지만 허기진 배는 진수성찬이라고 말한다. ‘왜 이리 국물이 진한 거야’ 그 흔한 일회용 커피도 준비하지 않았다. ‘에잇 시원한 물 한잔 들이켜야겠다’ 아침 숲 산책에 나섰다.

계곡의 물줄기가 부채살처럼 퍼져서 황홀하게 만든다. ‘떨어지면 폭포요. 모이면 소다’ 저 멀리서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았더니 숲 속에 이단의 폭포가 물을 내뿜고 있었다. 폭포가 어찌나 힘차던지 보기만 해도 움찔하다. 바위에 튄 물방울이 내 살갗에 닿았다. “어이구! 시원해” 폭포 위에는 정자 2개가 있어 폭포를 즐길 수 있다.

전국의 많은 자연휴양림을 찾아 다녔지만 방태산휴양림 만큼 수려하고 아기자기한 곳은 없다. 거기에다 내가 최고로 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숲 체험로’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을 보고 큰 것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무가 모여 숲을 만들었으니… 나무를 잘 봐야 숲을 잘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나무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지? 나는 방태산 숲 체험로에서 그걸 배웠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침엽수림.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보기만 해도 시원한 침엽수림. 2004년 9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물이 많은 거제수나무, 귀신 쫓는 엄나무, 기침에는 이강고나무, 심술 많은 낙엽송 등 흥미진진한 나무 이야기가 가득하다. 체험로에는 특이한 나무마다 번호가 적혀 있어 그걸 따라가면서 재미있는 나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숲 체험로를 한바퀴 돌다보면 꿈나라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든다. ‘S’로 휘어진 산책로도 일품이다. 숲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숲을 다스릴 생각을 하지 말고 숲을 존경하면서 살면 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도 내 몸만큼 사랑한다면 숲은 늘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향긋한 숲내음이 그리운 사람은 지금 방태산으로 떠나라.  

Tip.
주변 여행지 : 방동약수, 진동계곡, 내린천레프팅, 곰배령 맛집 진동산채, 고향집
숲체험 코스 : 숲해설가에게 직접 방태산 나무들에 대해서 무료로 들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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