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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동호회 따라가기] "우리 궁궐이 얼마나 재미난 줄 아세요?" 담장 따라 마음도 느릿느릿
[동호회 따라가기] "우리 궁궐이 얼마나 재미난 줄 아세요?" 담장 따라 마음도 느릿느릿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2.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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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느릿느릿 궁궐 나들이에 나선 동호회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느릿느릿 궁궐 나들이에 나선 동호회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서울의 궁궐이래야 대략 5군데. 창덕궁과 창경궁, 경복궁과 덕수궁, 그리고 경희궁 정도다. 인터넷 카페 ‘고궁사랑’은 이 몇 안 되는 궁궐을 3년 넘도록 매달 돌아 다닌다. 갔던 궁궐 또 가면 안 지루하냐고 물었다. ID 명(命)님 왈, “바이킹 한번 탔다고 또 안 타나요?”

경희궁 정문 흥화문 앞. 춥고 비가 올 것 같다는 예보 탓일까. 약속 시간을 한참이나 넘기고도 모인 회원 수는 고작 7명. 하지만 고궁사랑지킴이 김용수 씨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다. 궁궐 배경 지식이 풍부하다는 늦깎이 역사학도 강동연 씨가 아직 안 온 것이다.

기자가 동행하겠다는 전화에 밤새워 경희궁 자료 준비를 했다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모양이다. 드디어 뒷짐진 구세주 등장. 고궁사랑지킴이는 그제야 너스레를 떤다. “혀~엉, 왜 이제 와!”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질문하며 궁궐을 둘러본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질문하며 궁궐을 둘러본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경희궁 정전(正殿)인 숭정전. 어도(御道) 돌계단에 새겨진 유려한 문양을 앞에 두고 회원들이 옥신각신 중이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도 보며 갸웃갸웃하더니, 결국 인당초 문양이라고 ‘결론’짓는다. 뿌듯한 표정이다. 딱딱하고 전문적인 설명은 왠지 낯설어 싫단다. 전문가는 없지만 카페 회원끼리 주고받는 어눌한 넘겨짚기 재미가 쏠쏠하다.

저 편에서 누군가 또 다른 얘기 보따리를 풀어내면 “우리한테도 얘기해 줘요”하고 달려간다. 지킴이의 똑 부러지는 설명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곧 엉터리 설명임이 밝혀지고, 키득키득 회원들의 젊은 웃음소리가 번지는 주말 오후의 고궁.

철마다 찾는 궁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자연과 역사가 갈아입는 다양한 빛깔이 좋단다. 느릿느릿 궁궐을 거닐면 마음도 따라 깨끗해진다. 궁은 그들을 압도하지 않고 그들도 궁을 위협하지 않는다. 품계석 옆에서 두세 명 정도 사진 포즈를 잡아달라는 부탁에, “죄송한데요, 저희 그런 거 안 하면 안 될까요”한다. 더는 강요하지 않기로 한다.

경희궁 안에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는 일제 방공호 앞에서 회원들은 웅성웅성.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경희궁 안에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는 일제 방공호 앞에서 회원들은 웅성웅성.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궁궐과 이야기 나누고 사람을 만나며, 그렇게 이 답사에 참가한 이들이 벌써 천 명을 바라보고 있다. 경희궁 복원이 시작된 지 벌써 15년. 하지만 아직도 불구로 남아있는 경희궁의 모습이 회원들에게는 못내 아쉽다. 10분의 1도 채 복원되지 못했고, 그나마 복원된 건물도 제자리에 놓이질 않아 원래의 아름다움을 잃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끝내 문화재 당국과 서울시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때 ‘대장금’류의 궁궐 드라마가 붐을 타면서 최근 궁궐에 소속돼 전문적인 안내를 담당하는 분들도 생기고 민간모임도 활발해졌다. 회원수가 대폭 늘면서 ‘고궁사랑’도 2년 전부터는 회원 스스로 답사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분위기를 만드려 노력하고 있단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궁을 찾은 골수 회원들. "매달 셋째 일요일에 모입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궁을 찾은 골수 회원들. "매달 셋째 일요일에 모입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렇다고 모두가 궁궐 전문가가 되려는 건 아니다. 문화재에 대한 지나치게 전문가적인 지식은 오히려 문화재와 거리를 벌이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어려운 역사 얘기 우린 잘 몰라요. 그냥 지붕 모양이나 궁궐 문양 하나하나가 아름답잖아요. 구석구석 얽힌 시시콜콜한 얘기와 느낌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궁궐이 친구 같아요. 자금성은 웅장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요. 문화재는 거창한 유산이 아니라 선조의 생활 발자취일 뿐이잖아요.” 약간은 어설픈 그들의 궁궐 답사는 그렇게 깊어져 가고 있다.  

경희궁 모습.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경희궁 모습.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Tip. 경희궁(慶熙宮)에 얽힌 이야기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입니다. 이 궁궐을 지은 연유는 좀 불순(?)했다는 설이 많습니다. 인왕산 자락의 경덕궁 옛 터는 인조의 아버지 원종(元宗)의 사저가 있던 자리입니다. 광해군 9년(1617년)‘인왕산 아래 왕기(王氣)가 서린다’는 예언에 불안해진 광해군이 왕기를 없앤다며 궁궐공사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경덕궁은 광해군 재위 기간에 완공되지 못했고, 경덕궁에 첫 발을 디딘 임금은 결국 반정(反正)의 주인공 인조였다는군요. 그 뒤 역대 임금이 자주 거처하면서 어엿한 왕궁의 하나로 손꼽혔고, 명칭도 경희궁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때 덕수궁과 담을 마주할 정도로 번창, 경복궁 동쪽의 동궐(東闕) 창덕궁과 비교해 서궐(西闕)이라 불리기도 했고, 조선 말엽엔 불에 타 중건되는 곡절도 겪었습니다.

우리 궁궐 어딘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경희궁의 겨울 역시 일제 강점기 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임금이 조회를 열고 공식 의례를 벌이던 정전인 숭정전(崇政殿)은 남산으로 옮겨져 조계사 본당으로 사용되고, 흥정당(興政堂)은 광운사로 옮겨집니다.

대문인 흥화문(興化門)은 이토오 히로부미를 위한 절 박문사의 문으로 쓰였고, 최근까지는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됐습니다. 왜인의 사찰이라는 명패를 내건 유교 국가의 궁궐. 터만 남은 경희궁 자리에는 일본인 자제의 경성 중학교가 설립됐습니다.

금싸라기같은 넓은 터를 어디 중학교 건물 하나로만 써먹었겠습니까. 1920년대를 지나면서 경희궁은 이름조차 잊혀져 갑니다. 광복 후 서울 고등학교 부지, 모 건설회사의 부지로 바뀌었다가 다시 서울시가 인수하면서 지난 88년부터 복원이 시작됐습니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복원이 지체되고 있지만, 숭정전과 회랑, 흥화문과 자정전 등이 복원됐습니다. 사적 제2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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