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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인터뷰] 테마파크 전문가 김혁
[인터뷰] 테마파크 전문가 김혁
  • 김다운 기자
  • 승인 2016.04.25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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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놀 줄 아는 어른이 나타났다!

[여행스케치=서울] 재미있다고 소문난 곳이면 어디든 간다. 하지만 놀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데….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는 테마파크 전문가 김혁. 그가 말하는 테마파크학개론은 무엇일까?

피규어뮤지엄W의 아이언맨 피규어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혁. 사진 / 김다운 기자.

피규어 콜렉터×테마파크 스토리텔러
테마파크 전문가 김혁과의 인터뷰는 이번 인터뷰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한 일이었다. 존재만으로도 즐거움이 되는 테마파크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니!

그를 위해 고른 인터뷰 장소는 청담동에 자리한 피규어뮤지엄W. 피규어 콜렉터로도 이름난 그의 마음에 들길 바란 이유에서였다.

피규어와 비슷한 포즈를 취한 김혁. 사진 제공 / 김혁.

“피규어는 4만 개 이상 모았어요. 어릴 적부터 즐겨온 오랜 취미에요.” 하지만 일이 아닌 취미로 주목을 받는 게 곤란하다던 그는, 그래도 삐딱한 시선은 바로잡아야겠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장난감은 아이들이나 갖고 노는 거다? 아뇨, 문화적 현상이죠. 저는 이걸 팝아트의 일종으로도 봅니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키덜트’라는 표현은 옳지 않아요. 보시다시피 저 애 아니에요. 올해로 쉰셋이에요.”

과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방송 <딩동댕 유치원>과 <뽀뽀뽀> 외 다수의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1989년 모 테마파크의 ‘동선 시나리오 작가’를 맡으면서 테마파크라는 낯선 분야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바다를 주제로 한 일본 도쿄의 디즈니 씨. 사진 제공 / 김혁.

“극작을 전공했고 방송작가로 활동했지만, 동선 시나리오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어요.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에요. 생소한가요? 쉽게 말해 공간 배치고, 테마파크 스토리텔링이죠.”

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 미국 올랜도 디즈니월드의 엡콧. 사진 제공 / 김혁.

세계를 무대로, 별 3개짜리 테마파크를 위하여!
지구상 거의 모든 테마파크를 방문했다는 그는 에버랜드, 서울랜드 등 국내 유명 테마파크 작업에 참여했으며 해외 업체들과도 꾸준히 협업하고 있다.

몇 해 전 63빌딩에서 큰 인기를 끈 ‘왁스뮤지엄’도 그의 기획이었다. 왁스뮤지엄은 기존 밀랍인형 전시와는 차원이 다른 구성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미슐랭가이드>를 보면 레스토랑의 만족도를 별점으로 평가해요. 별 1개는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집’이고, 2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 만한 집’, 최고 등급인 별 3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집’이에요.

테마파크 역시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어요. 저의 목표는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테마파크, 방문객이 별 3개를 줄 만큼 기쁨의 요소가 있는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고요.”

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 도쿄 디즈니 씨. 사진 제공 / 김혁.

테마파크 자문 회사 ‘테마파크 파라다이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스케줄은 만만치 않다. 말 그대로 지구촌 방방곡곡을 누벼야 하기에 시차 부적응으로 인한 만성피로는 기본, 출장 틈틈이 처리할 일이 산더미라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란다.

그가 좋아하는 테마파크. 네덜란드 에프텔링. 사진 제공 / 김혁.

이쯤 되면 자신의 고생으로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과연 즐거울까 싶지만, 정작 본인은 지칠 줄 모른다. 틈만 나면 블로그(blog.naver.com/khegel)에 테마파크 관련 포스팅을 올리고, 2011년에는 <테마파크는 학교다>를 출간, 깊이 있는 ‘테마파크학개론’을 비전문가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녹여냈다.

‘테마’란 결국 모든 여행의 목적지
“제 업무는 규격화된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지만, 여행하는 분들은 테마파크의 범위를 좀 더 넓게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롤러코스터 없다고 테마파크가 아닐까요? 전혀요. 테마파크라고 이름을 달진 않았어도 테마파크 같은 곳은 많아요.

담양의 죽녹원. 소나무숲이 들여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이곳도 역시 테마파크다. 사진 / 김다운 기자.

이를테면 담양 죽녹원은 대나무가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일종의 테마파크에요. 저는 죽녹원이나 메타세쿼이아길, 수원화성, 전주 한옥마을, 경주… 이런 여행지들의 이야기를 참 좋아해요.”

입장료 내고 놀이기구를 타야지만 테마파크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한 공간을 테마파크로 정의할 수 있는 요소는 울타리가 아니라 스토리라는 것. 사람들은 그런 장소에서 ‘비일상성’을 느끼고 이는 테마파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미국의 테마파크 너츠베리팜. 사진 / 김혁.

“현실이 아닌 별세상에 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게 테마파크에요. 여행지로 이름난 곳들은 모두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고요. 그러니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테마파크를 방문한 것처럼 그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충분히 즐기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럼 여행의 재미가 더 커지지 않겠어요?”

내심 ‘롤러코스터의 숨겨진 VIP석’이라던가 ‘우리나라 최고의 테마파크는 여기!’ 같은 비본질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수년간 테마파크만 연구한 전문가의 시선은 이렇게나 통찰력이 있다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행보를 물었다.

“더 많은 테마파크를 돌아다녀야죠. 이 일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 테마파크 전문가 김혁. 앞으로 그가 꾸려나갈 즐거운 세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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