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양평]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잠이 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별자리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다. 밤벌레들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고 싶었다. 풀숲엔 밤벌레들의 울음소리로 한바탕 소란스러울 때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텐트를 치고 올려다 본 하늘은 흐린 날씨 탓인지 옅은 운무가 잔뜩 끼었다. 지난밤의 폭우에 숨어 버린 듯 풀벌레 울음소리도 없이 산음휴양림의 밤이 깊어갔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만이 숲 언저리를 떠돌며 숲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침낭을 챙겨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속의 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추위와 가까이서 들리는 계곡물 소리로 밤새 뒤척인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벼웠다. 온 몸의 감각을 열어 숲이 내품는 신선한 아침 기운을 받아들이며 텐트 밖으로 나섰다.
밝은 햇살 아래 드러난 숲은 촉촉하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잣나무 울창한 숲속 여기저기에 숲과 더불어 하룻밤을 유숙한 흔적들이 알록달록하다. 잣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 텐트들이 마치 숨바꼭질 하듯 숨어있다. 맑은 계곡물을 떠다 아침을 지어 먹었다. 같은 찬인데도 숲에서 먹는 밥은 특별히 맛있다. 숲속엔 어떤 해석 불가능한 ‘정기’같은 것이 있어 밥을 할 때 양념 역할이라도 하는 것일까?
아침을 먹은 후 산책로를 따라 휴양림 주변을 느리게 걷는다. 산책로 주변엔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 내는 침엽수림이 울창하게 자라 있다. 한발 한발 느리게 숲을 산책하노라니 번잡한 세상일이란 것도 별거 아니구나 싶어지며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숲에서의 명상이다.
경기도 양평의 산음리에 있는 산음휴양림은 용문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형국이다. 산음이라는 이름도 산 그늘 아래 있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산그늘 휴양림’쯤 되겠다.
그런 덕인지 2,140ha의 휴양림 전체에 상서로운 산의 정기가 떠도는 느낌을 받는다. 마침 하루 전날 내린 비로 계곡 가득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숲에 서늘함을 더한다. 푸르게 흘러들어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계곡물이 장관이었다. 숲 어디를 가도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가 따라왔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산음휴양림에서는 하루 두 차례 숲 체험학교를 연다. 숲 체험 코스를 따라 숲 해설가 선생님의 안내를 들으며 한 시간 가량 숲과 친해지는 시간이다. 숲을 공부하기 위해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기꺼이 학생을 자처해 본다.
그런데 숲 체험로를 들어서다 말고 딸아이가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른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커다란 두꺼비가 발 아래 눈을 깜박이고 있다. 옛날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이 친숙한 동물을 어쩌면 그렇게 만나기가 힘들었던가. 두꺼비란 녀석을 처음 본다. 참 못생겼다.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정겹다. 이름이 정겹고 사라져가는 토종생물이라 안타깝기도 해서 오래 들여다보려니 녀석이 부끄러운지 얼른 돌 틈에 숨어 버린다.
드디어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해설가 선생님이 등장하니 숲 체험 학교에 입소할 가족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가족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십여 명의 체험단이 해설사 선생님의 뒤를 따라 숲 체험로에 들어섰다.
첫 번째로 만난 숲 친구는, 싸리나무다. “꽃과 열매가 쌀알 만하다 해서 싸리나무라 불렀대요. 서당에서 매 맞는 아이가 그려진 김홍도 그림 생각나세요? 그 매가 바로 싸리나무로 만든 매랍니다. 옛날엔 그렇게 싸리나무로 회초리를 만들어 썼는데 싸리나무 회초리는 아프게만 하고 아이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답니다.” 땔감의 재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빗자루와 바구니, 그리고 울타리를 만들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는 싸리나무 얘기가 무궁무진하여 놀랍기만 하다.
동양의 헤이즐넛이라 불리는 ‘개암나무’ 이야기를 곁들여 설명을 하니 아이들 눈망울이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쪽동백나무의 나뭇잎에 요란한 문양을 새겨놓는 ‘때죽납작진딧물’이라는 벌레이름을 듣고는 와그르르 아이들이 웃음보를 터트린다.
나뭇잎을 살짝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나는 생강나무에 숨은 대벌레도 아이들 눈을 피할 수 없다. 해설가 선생님이 대벌레를 잡아 곤충에 관한 즉석강연을 펼치자 아이들의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오늘은 아무래도 공부벌레들이 여기 다 모인 것 같네요.” 아이들의 질문에 선생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나무의 이름이 다르듯이 생김새도 모두 다르다. 껍질이 다르고 나뭇잎 모양도 다르고 꽃도 다르고 열매도 다 다르다. 그런데도 구별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참나무의 경우는 더 심하다.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참나무는 ‘신갈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다.
여섯 종류의 참나무에 공통적으로 도토리라는 열매가 달리는데 그 모양이 비슷한 듯 다르고, 껍질이며 잎새도 구별하기가 애매모호하다. 선생님도 각각의 참나무를 구별하기가 다소 어렵다며 굴피집을 짓는 굴참나무, 천연방부제 역할을 해서 떡 싸는데 썼다는 떡갈나무, 선조 임금이 피난 시절에 맛보았다는 상수리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참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첫 번째 나무에서부터 마지막 나무까지 숲을 구성하는 데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중요한 나무들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자작나무와 물푸레나무를 만났을 때가 참 좋았다. 불에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자작나무의 껍질은 잘 벗겨지는 재질로 되어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해설가 선생님이 자작나무 껍질을 한 겹 벗겨냈다. 체험단이 죽 한번 돌려 본 후 마지막으로 내게 건네졌을 땐 마치 내가 가진 것처럼 기쁘기까지 했다.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해서 ‘물푸레나무’가 된 거예요.” 이런 해설만으로 충분히 물푸레나무가 설명되고도 남으리라. 그런데 운이 좋게도(?) 가지가 꺾인 채 방치된 물푸레나무를 발견하고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앞장세우고 계곡가로 내려가셨다. 가지를 짓찧어 물에 담그니 근방의 물이 파랗게 변해가는 게 확연히 보인다. 왜 물푸레인지 꼭 한번 직접 보고 싶었다는 아이의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아이 못지않게 어른들도 덩달아 신기해하며 파랗게 변하는 물빛을 주시했다. 체험이 끝나갈 즈음 계곡으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고, 단풍잎 같은 작은 손으로 한 움큼 물을 떠서 목을 축이는 아이들은 이미 숲과 하나가 된 듯 보였다.
잠시 잠깐 착각이었을까? 저 아이들 하나하나가, 숲속의 집에 붙여준 이름처럼, 순한 눈망울을 가진 오소리거나 고라니, 산토끼거나 혹은 다람쥐 친구들은 아니었는지…. “아, 아, 아아아~” 다래덩굴을 발견한 아들 녀석이 타잔 흉내를 내며 그네를 탄다. 가을이면 이 숲에 다래가 달콤하게 익어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