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남양주] 오감으로 느끼는 숲은 어떤 모습일까? 물안개 핀 남양주 천견산의 숲 속 교실에선 병아리색 비옷을 걸친 여고생들이 한창 ‘열공’중이다. 나무와 물, 흙, 생물들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여름 숲 체험학교를 따라갔다.
사진만 봐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곳이 숲이다. 그런 숲을 거닌다면 굳이 피톤치드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과 마음이 맑아질 것 같다. 숲은 인간이 200만년 동안 정 붙이고 살아온 삶의 본거지요 고향이다. 오랫동안 떠나온 집에 돌아오면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숲에 오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숲의 가치와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숲 체험 여름학교’가 올해로 19회를 맞이했다. 매년 열리는 캠프를 위해 강원도 내설악에 캠프 전용시설까지 갖추었다고 한다. 지난 집중 호우로 내설악의 길이 막히고 숲이 크게 훼손되면서 체험장을 남양주 천견산으로 바꿨다.
낙엽송이 빽빽이 들어선 숲 속. 십여 명의 학생들이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웅성웅성 모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나뭇잎들이 놓여있다. 학생들이 나뭇잎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선생님이 건네준 나뭇잎 하나를 잘게 접어 어금니 안쪽에 넣고 지긋이 씹어도 본다.
“퉤! 퉤! 이거 뭐야. 무슨 맛이 이래?”
“하하하, 쓴 소금맛이 나지. 그 녀석이 바로 소태나무야.”
“얘는 냄새가 좀 이상해요. 꼭 노린내 같기도 하고.”
“맞아! 그래서 붙은 이름이 누리장 나무란다.”
선생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은 나뭇잎의 모양과 특징들을 꼼꼼하게 메모한다.
오래된 서어나무가 있는 숲 속의 또 다른 교실. 흰색 천막 아래 10여명의 학생들이 앉아있다. 연필을 쥔 채 눈을 감고 마음으로 숲을 그린다.
잠시 후 학생들은 마음으로 스케치해 본 숲을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한다. 잘 그릴 필요가 없다. 각자 느낀 느낌 그대로 그리면 그만이다. 선생님이 주문한다.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그리세요.”
캔버스 위를 오가는 학생들의 손이 조금씩 빨라진다. 작고 섬세하게 시작했던 그림이 점점 힘차게 커진다. 학생들의 반응에 흥이 난 선생님의 주문이 계속된다.
“여러분의 마음이 숲의 마음입니다. 크게 그리세요. 더 크게!”
체험학교의 참가자들은 전국에서 온 여고생들로 숲에서 처음 만났다. 당연히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이름을 불러주고 얼굴을 기억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학생들이 숲과 친구가 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안산에서 왔다는 2학년 은지는 숲 속의 곤충들이 흥미롭다. 도심에서 살다보니 곤충이라고 해봤자 모기, 파리가 고작이다. 요즘엔 흔한 잠자리나 매미도 보기 어렵다고.
“야간 자율학습시간이면 날아든 나방 한 마리 때문에 온 교실이 난리가 나곤 했는데, 나방은 전혀 해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무서워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학교에 가면 애들에게 말해줄 거예요.”
1학년인 분홍이는 가족들과 자주 산행을 가지만 숲에 대해 특별히 관심 가져본 적이 없었다. “등산하면 으레 만나는 풍경으로만 생각했는데 앞으론 친구가 된 숲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겠네요.”
며칠사이 부쩍 숲과 친해진 학생들이 저마다의 인상을 말한다. 특히 생활 속의 작은 습관이 숲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 같이 공감한 듯 어린아이처럼 종알거린다.
“일회용품 줄여야겠어요.”, “비닐봉지 재활용할 거예요.”, “분리수거 신경 써야겠어요.”
3박 4일 동안 오직 숲과 함께한 학생들은 TV도 인터넷도 없지만 심심할 새가 없었다. 물, 대기, 토양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한 체험 수업 외에 숲을 소재로 만든 영화와 숲 속 운동회와 음악회까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배울거리, 놀거리가 넘쳤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흙 묻은 옷은 점점 추레해지건만 숲의 기운을 받아들인 까닭인지 학생들의 얼굴은 갈수록 생기가 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오감을 통해 만난 숲과의 우정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듯 싱그런 미소를 지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