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금촌] 사랑의 계절이다. 경의선은 옛 교외선과 함께 한때 낭만적인 카페촌과 MT촌, 그리고 분단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울 통근 철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최근 고양, 파주, 문산에 연인들의 쉼터가 늘고 있다. 시간의 호수를 건넌 경의선에 제2의 청춘이 꽃필 수 있을까.
수색역, 능곡역, 백마역, 탄현역, 금촌역, 문산역…. 그 시절엔 외우다시피했던 경의선의 정겨운 이름들이 스쳐간다. 이 어디쯤에선 교외선으로 갈라져 일영역, 장흥역, 송추역을 꿈꾸곤 했었지. 마음에 둔 이성 친구와 함께 ‘고백점프’ 놀이를 해대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도 했었지 아마. 지금은, 전철을 개조한 듯 정말이지 괴상하게만 생긴 무궁화호를 타고 아파트와 복선화 공사로 번잡해진 경의선을 따른다. 금촌역에서 내린다.
꽃과 단풍 가득한 호수, 벽초지 수목원
달라진 역 건물과 주변 풍경만큼 여행지도 새로 생겼다. 벽초지 문화수목원은 작은 호숫가에 단풍나무와 주목 터널, 화훼정원과 폭포를 갖춘 수목원이다. 한적한 지역이라 오붓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참 앙증맞은 수목원이다. 세계 각 국의 화초가 화려하면서도 아담하게 꾸며진 화훼정원을 거닐다 보면 ‘우리 이담에 결혼하면 이꽃 이꽃은 꼭 심자’ 하며 예비 원예사 부부가 될 법하다. 찬바람이 불어도 꽃구경을 할 수 있다.
화훼정원이 유럽풍이라면 거대한 수생식물원 같은 호수는 동양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예쁜 모델을 앉혀 놓고 사진작가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얼씨구나 하면서 모델에 카메라를 들이대진 말 것. 욕먹기 십상이다. 호수 주위에 희귀·멸종위기식물과 자생식물 그리고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란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좁은 오솔길도 숨어있다.
카페 <그린비>와 레스토랑 <나무>에서 차와 식사도 할 수 있다. 간단한 주전부리용 매점은 없어 아쉽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휴지통이 없고, 전체가 금연구역이다. 담배를 피우려면 잠깐 나갔다가 들어와야 할 것 같다.
통일동산 카트랜드 & 헤이리 아트밸리
벽초지 수목원을 나오면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첫째는 택시로 장흥 관광지에 가는 방법. 토털미술관을 비롯해 가을을 거닐기에 적당한 곳이 많다. 둘째는 금촌역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통일동산의 카트랜드로 가는 방법이다.
레이싱 입문용으로 제작된 미니 드라이브카인 카트를 타고 땅에 착 달라붙은 채 10분 정도 트랙을 달려보자. 레이서가 된 듯하다. 커플용 카트도 있으며, 만 5세 이상이면 누구나 탈 수 있다. 장비 일체를 빌려준다. 레이싱 체험과 카트 교육, 그리고 카트 판매까지 겸하고 있다. 카트랜드를 나와 헤이리 아트밸리나 영어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훌륭한 데이트 코스.
바람의 언덕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금촌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임진강역으로 가면 평화누리 공원에 닿는다. 지난해 세계평화축전 행사 때 조성된 이 공원엔 색색깔 바람개비의 ‘바람의 언덕’과 새하얀 장대 깃발이 펄럭이는 잔디공원이 압권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초지에서 천만개의 바람개비와 억만개의 깃발이 바람의 소리를 들려준다. 그냥 걷기만 해도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임진각 주차장의 다양한 놀이시설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