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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최북단 코스 아, 그토록 보고싶던 진부령!
[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최북단 코스 아, 그토록 보고싶던 진부령!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6.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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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암릉 위에서 수십 년 동안 모진 바람을 견뎌온 소나무들을 볼 때면 고개가 숙여진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고성]설악산 미시령에서 진부령 구간, 일반인들이 걸을 수 있는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을 다녀왔습니다. 참 오랫동안 걸어간 길인데 백두대간은 그 끝구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산행 날짜를 잡고 일기예보를 살피는데 중부지방에 비가 내린답니다. 강원도 산간지역에는 눈이 온다내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어서야 완주하는 날, 설레는 마음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그동안 백두대간에서 비를 만나고, 눈보라를 만난 게 다반사였지만 모처럼 가는 야간산행이라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랜턴과 스틱, 방한복, 장갑, 아이젠, 초콜릿까지 겨울산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면서도 기분이 살아나질 않습니다.

"실개천 하나 건너지 않고, 백두대간 산길을 따라 진부령까지 가는 겁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하던 날 지리산 자락에서 선배 대원이 했던 말을 산에 오를 때마다 머리에 그렸습니다. 도상거리 640km, 실거리 820km. 어떤 사람은 34개 구간으로 나누고, 어떤 사람은 54개 구간으로 나누지요. 어쨌든 길고 긴 거리를 걸어서 종주한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산꾼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완주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대로 백두대간은 호락호락 등줄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발목을 삐고, 가정사가 붙들고, 회사에서 업무가 붙잡고…. 여러 달을 산에 가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산악회 사람들과 빠뜨린 구간을 땜빵하기도 했답니다. 

미시령에 이르러 누군가 감탄사를 날립니다. “캬! 날씨 좋다.” 일기예보가 틀려서 기분이 좋다는 뜻일 겁니다. 바람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야간산행 하기에는 그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먼동이 터올 때 산객들은 작은 희열을 느끼기 시작한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가파른 산언덕을 오르는데 달빛을 가리고 있던 구름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구름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람에 흩날리듯 빠르게 흘러가네요. 산바람도 점점 거칠어서 비좁은 능선 길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입니다. 

전망대 바위에 오르자 멀리 속초시내 불빛이 한가롭게 빛나고, 저 멀리 하늘에선 반달이 하얀 빛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날 동행한 산객들은 34개 구간을 격주간으로 야간산행을 통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고산마루산악회’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 집을 나가 일요일 저녁에 귀가하는 산객들. 30대 후반부터 69세 어른까지, 남녀가 섞여 있는 대원들. 그들이 가정과 친구들,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눈총을 받아야 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되더군요.

“무박으로 잠도 못 자고 산행하면서… 할 말이 많지요. 무수히 괴롭힌 비바람과 추위와 눈길… 도전과 인내, 해내겠다는 오기… 어둠을 헤치며 지나온 길들이 더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고 즐거움이며 기쁨이네요.”
한 산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종주한 소감을 말합니다.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을 테지요.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상봉전망대에 선 대원.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암릉과 산마루를 보고 걸을 때면 짜릿한 전율을 느끼곤 한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그런데 갑자기 숲속에서 후두둑 후두둑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이 깜깜해집니다.
“앗! 비다. 소나긴가? 오늘 밤에 비가 있을 거라더니 진짜네.”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진눈개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30mm 정도 온다고 했으니까 많이 안 올 거야.”
사람들은 저마다 비옷을 갈아입습니다. 방한복, 방수복으로 중무장을 합니다. 다시 한번 인원점검을 하고 가던 길을 갑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일기예보가 좋지 않으니 야간산행을 하지 말라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조심해서 다녀오라던 회사 동료들의 얼굴도 밤하늘에 아른거립니다.

우르릉 쾅쾅쾅! 천둥이 치고 섬광이 산마루를 훤히 밝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우르릉 우르릉. 산이 웁니다. 산이 화를 냅니다. 이것은 백두대간 종주를 축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코지하려는 노여움의 폭발이 아닐까. 빗줄기가 거칠어지더니 우박이 쏟아집니다. 작은 마늘 크기만한 우박이 하얗게 산길을 덮습니다.

“선두 제자리! 천천히 가세요.”
한 여성 대원이 울부짖듯 소리칩니다. 낮에 걷기에도 험한 산길이라 걸음걸이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신선봉 오르는 길목에는 너덜지대도 여럿 있고, 로프를 잡고 오르내려야 하는 낭떠러지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때마다 앞사람과 뒷사람이 서로 헤드랜턴을 비춰주며 걸어야 하기 때문에 속도가 매우 느리고 조심스럽습니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길을 오르고 있는 대원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대간령에서 만난 여성대원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위에 기대어 비바람을 피하고 있는데 한 대원이 배낭을 풀어 과일을 나눠 줍니다. “내 짐 좀 덜어 주세요.” 다들 귀찮아서 배낭을 열지 않고 있는데…. 그분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열량을 흡수하고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천둥과 번개, 우박과 비가 계속 이어지고 바짓가랑이가 흠뻑 젖었습니다. 신발에 물이 가득 차고, 가죽 장갑도 다 젖었습니다. 손발이 시리고 몸이 떨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갑니다.

산을 걸으면서 늘 생각한 게 산은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다는 겁니다. 언제나 수없이 이어지는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깊고 깊은 숲길을 걸을 때도 부모님의 체취를 느낍니다. 좀 더 참아야 하고, 더더욱 힘을 내야 하고, 끈기를 보여야 합니다.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되고, 지레 겁을 먹어도 곤란합니다. 걸음걸음마다 조심해야 하고, 무모한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잘난 척해도 안 되고, 모든 생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나 깨나 부모님한테 들었던 이야깁니다.

힘들면 쉬었다 가고,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를 알아야 하고, 남을 앞지르기보다 비켜줄 때가 더 유리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둠이 끝나면 훤히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눈부시게 영롱한 많은 생명들과 함께하지요.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완주한 다섯 대원.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견딘다는 주목.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어머니, 아버지 또 무모한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일이지만 사람들과 한 약속을 지키고 저와 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산객들은 의리 없는 사람은 절대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서너 번씩 만나서 목숨을 건 산행을 함께하는 사람들, 이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도반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멀리 동이 터오고, 천둥 번개도 멀어져가고, 마침내 비가 잦아들었습니다. 아직 날이 다 새진 않았지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안도감이 돌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어둠과 악천우와 싸우다가 여명이 밝아오니 안심이 될 수밖에요.

다시 산행을 시작합니다. 천둥 번개가 물러간 산속에는 평화가 넘실댑니다. 바로 앞에는 안개가 짙게 깔리고, 저 멀리엔 운무가 꿈틀댑니다. 

마산 봉우리에 오르니 저 아래 진부령이 보이고 진부령 너머로 향로봉이 기다란 몸을 눕히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은 저 너머로 계속 이어질 테지요.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고산마루산악회 사람들이 하나의 산을 넘고 있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은 산길에서 그 이정표만 만나도 그냥 스치지 못한다. 2006년 11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야, 여기 도착하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네. 왜 감동이 나지 않는 거야?” 
한 대원이 진부령 고갯길에 서 있는 백두대간 표지석을 어루만지며 말합니다. 정말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요? 돌을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눈물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듦과 슬픔보다는 즐거움과 기쁨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기쁨과 고통을 나누면서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며 걸어온 시간은 그 어떤 산행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함께 해온 것이었습니다. 이곳 종착지까지 함께한 시간과 두터운 정이 깊고 깊어서 흘린 땀방울과 발자국이 함께 어우러져 길이길이 가슴 속 한켠에 은은한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고산마루 산악회 카페에서)

그리고 끝은 곧 되돌아 시작이 됩니다. 우리들의 삶이 늘 그랬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새로운 산을 다시 오르고, 한 가지 일을 마치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이 시작했잖아요. 백두대간을 취재한 기자도, 고산마루산악회 사람들도 새로운 산행을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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