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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름다운 섬 여행]
[아름다운 섬 여행]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5.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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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부안]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고슴도치 ‘위(蝟)’ 자를 이름에 쓰는 섬 ‘위도’. 이 섬에는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해안과 더불어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이 섬 앞바다요, 홍길동의 이상향인 율도국의 모델이 된 곳도 위도다. 초여름 기운이 가득한 6월, 고슴도치섬 위도로 떠나보자.

옛이야기와 옛 영화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
 아침 일찍 격포항을 나선 위도행 첫 배가 부두를 벗어나자마자 서서히 속도를 끌어올린다. 배 안은 전날 내린 비의 여파로 위도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과 자동차로 시끌벅적하다. 산행객의 복장을 갖춘 등산객 여러 무리와 대처로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위도 주민으로 가득한 선실은 흡사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위도 파장금항의 한가한 오후 정경.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망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위도의 서쪽 풍경. 가까이로는 벌금항과 정금도가, 멀리로는 식도가 보인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돛단여 부근에서 만난 돛단배를 형상화한 상징물.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격포항을 빠져나온 배가 30여 분쯤 달렸을까. 저 멀리 위도가 보일 무렵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요동치며 파도가 뱃전을 넘나든다. 예부터 바다가 거칠기로 소문난 임수도 앞이다. 오죽이나 거칠었으면 이 바다가 효녀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라는 연구도 있고,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가끔 이 바다에서 인신 공양의 흔적으로 보이는 석상이 물질하는 어부들의 그물에 딸려 올라온다고도 한다. 게다가 임수도 앞바다는 1993년에 서해페리호가 침몰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승객과 승무원 292명이 이 바다에서 숨진 엄청난 참사였는데, 그 사고가 채 잊히기도 전에 다시 똑같은 참사가 되풀이되는 현실에 서글퍼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위도가 한눈에 잡힐 거리로 들어선다. 육지에서 카페리가 도착하니 위도의 파장금항이 소란스러워진다.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을 태우는 위도에 단 한 대뿐인 공영버스를 비롯해, 펜션을 찾은 손님을 반갑게 맞는 펜션 차량으로 파장금항이 부산하다. 평상시에는 조용하다가 카페리가 도착하는 시간에만 반짝 활기찬 모습에서 시골 어촌 항구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은 그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옛 시절 위도는 활기가 넘치다 못해 폭발하던 섬이었다. 서해 섬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칠산 바다는 좁게는 영광 앞바다부터 위도까지, 더 멀리는 영광 앞바다에서 위도를 거쳐 군산의 고군산군도까지를 아우르는 황금 어장의 대명사였다. 조기, 삼치, 고등어, 갈치가 천이던 그 칠산 바다 중심에 위도가 있었으니 그 시절 위도의 활기가어떠했을지는 쉽게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위도의 옛 영화를 되새겨주는 위도관아.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강원도 해안선이 부럽지 않은 절경을 품은 섬
카페리에 싣고 온 차량을 몰고 파장금항에 내린다. 위도를 한 바퀴 두른 해안도로가 강원도의 옛 7번 국도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비경을 품었다는 소리를 들은 터다. 위도의 중심지인 진리 방향으로 향하니 진리 못미처 오른편 양지바른 곳에 서해페리호 참사로 숨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 보인다. 잠시 들러 그들을 추모하고 다시 진리로 향한다.진리에는 위도의 옛 영화를 기억하는 건물이 있다. 조선시대 위도진(鎭)을 관할하던 위도관아가 그곳이다.

조선시대 위도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대접을 받았다. 오늘날 해군 장성에 해당되는 수군첨절제사가 이 섬에 주재하며 고군산군도부터 지도 앞바다까지, 칠산 바다 넓은 해역의 사법과 행정을 총괄하던 군사와 행정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각 도의 좌우 바다를 관할하던 수군절도사가 정삼품이었음을 감안해보면 종삼품 수군첨절제사가 부임했으니 위도가 얼마나 중요한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진리를 벗어나 이제 본격적으로 해안도로를 달려본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짙푸른 를 품은 위도의 해안도로는 과연 강원도의 옛 7번 국도에 뒤지지 않는다. 굽이굽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가를 따라 기암절벽과 바다가 어우러지니 절로 콧노래가 나오며 운전하는 맛이 난다. 가는 곳마다 절경이요, 보이는 것마다 비경이니 가다가 멈춰서 사진을 찍고, 다시 가다가 멈춰서 사진 찍기를 여러 차례, 도통 차가 나가질 못한다. 위도가 자랑하는 풍경이 차창 밖으로 줄줄이 이어지니 눈 호강이 따로 없다. 기분 좋게 얼마쯤 달렸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분명 처음 온 곳이건만 무척 낯이 익다. 고개를 갸웃거리니 주변에서 낚시를 하던 강태공이 웃으며 알려준다.

이곳이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조선군 수군 진지가 있던 곳이고, 김기덕 감독이 영화 <해안선>을 찍은 논금해변이란다. 작고 동그란 몽돌이 가득한 해변에 앉아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파도와 몽돌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맡긴다. 쏴, 쏴, 잘그락, 잘그락.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이 듣기 좋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숙소로 돌아간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위도의 해안선은 강원도 옛 7번 국도와 견줄 만하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아름다운 위도의 해안에는 많은 펜션이 들어서 있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망월봉에 오르니 홍길동의 율도국이 여기로다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았더니 아침 일찍 절로 눈이 떠진다. 오늘은 위도 종주 산행을 해볼 참이다. 위도의 남쪽 제일 끝자락 마을인 전막에서 출발해 망금봉(242m), 도제봉(152m), 망월봉(255m)을 지나 서해페리호 참사 위령탑으로 내려오는 약 10km, 4시간 거리의 종주 코스다. 전막에서 길 떠날 채비를 하는데 인근 마을 주민이 오르내리는 길이 거칠어 쉽지 않은 길이라고 격려 아닌 격려를 해준다. 위도 종주는 시작부터 바로 오르막길로 시작한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도심 생활에 너무 적응을 잘한 탓일까. 벌써부터 숨이 가빠온다.

시원한 바람과 향긋한 야생화의 향기를 벗 삼아 1시간 40여 분쯤 능선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첫 번째 봉우리인 망금봉에 올라선다. 망금봉에 올라서니 곳곳에 놓치기 싫은 풍경이 가득하다. 좌로는 아름다운 해안이 펼쳐지고 우측은 치도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훤하다.망금봉에서 두 번째 봉우리인 도제봉까지는 거리는 꽤 멀지만 그런대로 걸을 만한 길이다. 능선 좌우로 펼쳐지는 비경을 따라 1시간쯤 기분 좋게 걸었더니 금세 도제봉으로 올라선다.

도제봉에서 망월봉까지의 길은 위도 종주 산행에서 가장 난코스로 꼽히는 길이다. 곳곳에 바위 절벽 틈을 따라 좁은 산행길이정상까지 가파르게 이어지니 얼치기 산꾼은 딱 죽을 맛이다. 하지만 그런 얼치기 산꾼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수려한 풍경을 품은 위도의 해안과 섬마을이 뒤따라오니 눈만은 즐겁다. 죽을 둥 살 둥 기를 쓰고 40분 정도 올랐더니 망월봉 정상이 반갑게 맞아준다. 망월봉 정상에 올라서니 파장금항과 위도 주변의 크고 작은 섬과 여러 봉우리가 사면으로 펼쳐져 아름답다. 이곳에서 보니 삐죽삐죽한 위도의 해안선이 딱 고슴도치 가시와 닮아 보인다.

이 섬에 위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망월봉 정상에 서고야 깨닫는다. 부안의 우반동에서 많은 시간을 머물렀던 허균은 자연이 아름답고 물자가 풍부해 주민이 편안하게 살던 섬 위도를 알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여파로 피폐하고 고단한 백성들의 삶이 이어지던 그 시절, 위도의 이런 모습은 허균과 홍길동이 꿈꾸던 이상향 율도국과 딱 맞아떨어진다. 망월봉에서 바라본 위도의 모습은 율도국 그 자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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