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인도] 기차역에 내린 배낭여행자들이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오랜 기차여행에 지쳤을 만도 하건만 그들의 눈은 반짝거리며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그들이 이 작은 도시를 찾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에로틱 사원’을 보기 위해서다.
여기 뛰어난 미적 감각과 빼어난 외벽 조각기술로 극한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원이 모인 도시가 있다. 이 작은 도시의 이름은 카주라호(Khajuraho).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400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카주라호는 1년 내내 외국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도시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카주라호 기념물군(Khajuraho Group of Monuments)’을 보기 위해서다. 카주라호 기념물군이라고 칭하니 감이 잘 안 잡히신다고? 그럼 에로틱 사원이라는 별칭은 어떨까. 아무리 해외여행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 명칭은 한번쯤 들어봤지 않았나 싶다.
카주라호는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은 20개 이상의 아름다운 사원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다. 카주라호의 대표 관광지인 이들 사원은 10세기에서 11세기인 찬델라 왕조 때 건립되었는데, 완벽한 균형미를 이루도록 사암을 쌓고 거기에 극사실적인 섬세한 조각까지 더해져 극한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러나 이들 사원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한 단어는 바로 ‘에로틱’일 것이다. 아름다운 사원 기단과 외벽에 성적(性的) 교합의 순간을 리얼하게 담아낸 조각상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어서다. 오죽하면 여행객들이 사원의 정식 이름보다는 ‘에로틱 사원’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겠는가.
카주라호 사원의 특징인 이들 성적 교합상은 ‘미투나(mithua)’로 불리는데, 미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한 쌍의 남녀, 더 나아가서는 성적 결합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한 가지. 왜 이렇게 들여다보기조차도 민망한 조각을 신성한 사원에 새겨놓은 것일까.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힌두교에서는 성적인 에너지도 신성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한 쌍의 남녀로 표현해 종교적 환희의 상징으로 새겼다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단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뜻(?)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이 조각들은 민망하다. 얼마나 리얼하게 잘 표현이 되어있으면 비폭력 무저항 정신의 상징이자, 위대한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간디조차도 “음란함과 수치심에 철저히 부셔버리고 싶다”는 말을 했을까 싶다.
이제 이야기를 돌려 카주라호의 사원은 어떻게 둘러보는 것이 좋을까? 카주라호의 사원은 크게 서부사원군과 동부사원군, 남부사원군 이렇게 3개의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남부 사원군은 시가지에서 멀고 예술성도 좀 떨어져, 보통의 여행자는 서부사원군과 동부사원군만을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유네스코에서 체계적으로 잘 관리하는 서부사원군은 마치 잘 정돈된 공원 안에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사원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그중 칸다리야마하데브 사원과 락쉬마나 사원이 서부사원군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이들 사원에는 적나라하게 조각된 미투나 외에도 힌두교 신들의 이야기와 힌두교의 요정 격인 압사라가 섬세하게 조각돼 있어 여행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동부사원군은 서부사원군과 달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다 돌아보려면 릭샤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야 한다. 자전거는 보통 묵고 있는 숙소에서 빌릴 수 있고, 자전거를 타면 현지인들의 삶이 묻어나는 마을을 지나기 때문에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동부사원군 중에서는 자이나교 사원인 빠르스바나트 사원이 볼만하다.
마지막으로 카주라호는 외국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현지인들이 많다. 특히 한국말에 능통한 범죄자들이 여럿 있어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이들은 능통한 한국어를 미끼로 호객행위를 하거나 바가지를 씌우고, 심하게는 범죄까지 저지른다. 특히 젊은 여성 여행자를 대상으로 치근거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과도하게 접근하는 사람은 일단 피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