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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따라 삼천리] ‘타리파시’의 신기루를 쫓아 전남 신안 임자도
[전설따라 삼천리] ‘타리파시’의 신기루를 쫓아 전남 신안 임자도
  • 전설 기자
  • 승인 2015.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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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신안] ‘부욱부욱’ 민어 울음소리 들릴 적에, 임자도 하우리 마을은 수백의 뜨내기로 불야성을 이뤘다. 민어 떼 따라 온 어부가 수백, 뱃사람 찾아 든 기생이 또 수백. 해마다 여름 연중 한철 나타났다가 언젠가부터 영영 사라진 ‘타리파시’의 신기루를 쫓아 민어의 섬, 임자도로 간다.

타, 리, 파, 시, 한 음 한 음 힘주어 불러본다. 영어 같기도 하고, 중국어 같기도 하고.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고. “파시는 말 그대로 여름 한철 민어 잽힐 때 파도 따라 들어서는 어물 시장이제. 하우리 앞바다에 쪼그만 섬 2개를 뭇타리, 섬타리라고 하거든. 파시가 그 앞에서 열리서 타리파시라 캐요. 그 시절 거서 난 것은 다 ‘타리’자 붙여서 타리민어, 타리기생….” 택시기사 손학철 씨의 설명처럼 타리파시는 하우리 마을 해변가 타리섬 사이에 들어서던 전국 최대 규모 ‘민어 도깨비 시장’이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임자도 북쪽 맨 끝 동네. 새우젓 산지로 유명한 전장포의 풍경.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그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고 하니, 수백척의 고깃배가 해변가부터 타리섬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수영을 하지 않고도 정박한 배를 겅중겅중 넘어 바다를 건넜다고. 뱃사람은 여름 한철 장사로 ‘몇 십원’ 횡재를 볼 수 있어서, 일본인 상인들은 귀한 타리민어를 사기 위해, 기생들은 큰 돈 쥔 뱃사람과 상인을 쫓아 매년 여름 임자도로 모여 들었다. 문제는 이 소란스럽던 시절은 추억담이 된 지 오래라는 것. “타리파시 찾는다는 사람이 왜 하우리가 아니고 전장포로 가자 허요? 하우리는 저 밑이요, 밑.” 손 씨의 지적에 싱긋, 웃는다. 타리파시가 한창 성시를 이룰 적에 하우리에서 태어나 보고 자란 이가 전장포에 있으니까. 타리파시를 찾아가는 첫 번째 단서는 마을이 아닌 사람이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1936년 일제강점기 시절 촬영한 타리파시의 한 때. 어부를 기다리는 기생과 밥 짓는 여인이 보인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노인과 바다, 그리고 어머니

바람이 언제 이렇게 뜨거워졌나. 전장포항 앞에 내려서자 뭉근한 바닷바람에 짠 젓국 냄새가 훅 끼친다. 항구로 돌아온 새우잡이배가 오늘의 수확물을 내려놓고 있다. 히야, 때깔 좋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살이 꽉꽉 찬 젓새우는 장마가 오기 전 육젓이 되리라. 볕 좋은 자리마다 깡다리며 이름 모를 생선이 꾸덕꾸덕 말라가는 어촌을 가로질러 덩굴장미 흐드러지게 핀 집 앞에 선다. 여쭐 것도 없이 이미 마당에 나와 있던 박차규 옹이 손짓을 한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박차규 옹이 흑백필름 속 보리키질을 하는 어머니와 마주한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파시란 것은 집시랑 똑같다고 보면 돼야. 집시가 천막을 들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니지 않은가. 하우리 앞 바다를 터해라 하는디 민어가 6월부터 잽히기 시작한다고. 그럼 뱃사람 상대하는 색시들, 옛말로 하면 기생이 5월부터 와서 암것도 없는 모래불에 말뚝 박고 이양 둘리서 집을 지어. 그렇게 술집에 밥집 늘어서 뱃사람들 올 때 쯤 되면 시가지가 형성이 되제. 두어 달 정신없이 가고 민어철 끝나믄 뱃사람은 배타고 가고 색시들은 지어 놓은 집 싹 다 뜯어서 다른 디로 가. 신기루같이 있다 없고, 없다 있는 게 바로 파시제.”

한 마을의 집 단위가 100호 일 때, 타리파시의 움막은 400호를 웃돌았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다행히 당시 풍경이 담긴 사료가 남아 있다. 76년 전, 일본인 시부자와 게이조가 이끄는 서남해 도서지역 답사팀은 임자도 어민들의 삶을 110mm 흑백 필름으로 촬영했다. 당시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은 유일한 영장자료는 가나가와대학 상민문화역구소에 보관되다가, 2012년 연로한 섬 주민들 앞에 시연된다. 그런데, 한 주민이 영상 속에서 보리키질을 하는 한 여인을 알아본다. 바로 박차규 옹의 어머니 故 주우엽 씨였다.

“이 때가 나가 1살 먹었을 적이여. 옛날에는 마을 공동 작업장이라 카는 뻘마당이 있었다고. 홀로 마당에 나와서 땀이 얼마나 나는 지 머릿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치맛자락을 위로 여며가지고 보리타작 하는 모습을 보니까 우리 어머니가 이랗게 일을 하셨나, 싶어 울음이 났지. 사람이 못 먹다 못 먹다가 부황나서 죽을 땐데, 그 고생을 말로 할 수나 있겠는가.”

백발이 성성한 아들은 흑백필름 속 엄마를 본다. 일본순사와 앳된기생에게 사탕을 받아먹던 기억, 보릿고개가 여물어 넘어가기 전 굶어 죽은 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기억을 전해 들으며 흑백사진 속 타리파시의 풍경이 점차 선명해진다. 한번 본 적 없는 풍경이지만, 오래전 다녀가 본 기억이 있는 것처럼 복작복작 소란스러운 파시 촌이 눈앞에 있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곽재구 시인의 ‘전장포 아리랑’을 기리는 시비. 금빛 새우가 펄떡이는 모양이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모래섬에 소금꽃 필 무렵
머릿속으로 그려 본 타리파시의 현장, 하우리를 찾아 나선다. 갈 길은 멀지만, 일부러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임자도의 7월은 민어 떼 만 있는 것이 아니다. 5월, 6월에 담근 오젓, 육적이 발갛게 익어가고 염전마다 새하얀 소금꽃이 핀다. 전장포의 장영식 어촌계장의 안내를 받아 서늘한 토굴에서 땀을 식히고, 염전에 들러 네모반듯한 천일염도 맛보는 사이 해는 이미 중천을 넘었다.

이왕 늦은 거, 대광해수욕장을 거쳐 가기로 한다. 임자도 근역을 감싸 안는 대광해수욕장은 임자도 북쪽 끝 전장포에서 하우리까지 총 12km, 끝도 없이 이어진다. ‘명사삼십리’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보고 나니 그 넉넉한 넓이에 가슴이 뻥 뚫린다. 살면서 만난 사람 다 불러 모아도 자리싸움하지 않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손으로 틀어쥐어도 물 흐르듯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희고 고운 백사장을 서성이다가 해수욕장 뒤편의 해송 숲 산책로로 빠진다. 푸르게 우거진 숲이 한낮의 땡볕을 가려준다. 이대로 숲을 가로질러 민박촌을 지나면 드디어 긴 여정의 끝, 하우리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6월부터 임자도 어장으로 돌아오는 민어. 지금도 간혹 눈 먼 민어가 잡히곤 한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파시는 끝났어도 축제는 계속된다
“파, 대파요. 지금 한참 심을 때거든. 임자도 하면 민어다 새우다 하는디 우리 동네서는 파만한 효자가 없어.” 하우리 마을 입구에는 파 심기에 한창이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를 볼 줄 알았더니 초록의 파밭이 양옆으로 넓게 펼쳐지는 것이 어촌이 아니라 산촌에 온 듯하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땀을 훔치는데 갑자기 길이 뚝 끊기고 바다가 시작된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옛 타리파시가 열렸다는 하우리 해변과 대광해수욕장 사이 텅 빈 모래불. 깡다리 한 마리만 꾸덕꾸덕 말라간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소명천일염의 부부가 한 낮 하얗게 핀 소금꽃을 밀고 있다. 2015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타리파시는 ‘불등’이라고 부르는 대광해수욕장에서 하우리까지 이어진 편편한 모래사장에 열렸다. 하지만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토건업체가 인근의 모래를 퍼 가면서 옛 타리파시의 자리도 사라져 버린다. 글로는 다 배울 수 없는 역사와 문화가 베인 땅은 이제 바다 속에 자취를 감췄다. 출발 전부터 이미 사라진 것, 없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하우리에 가면 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가 무너지자 헛헛함이 몰려온다.

“민어가 예나 지금이나 참 비싸. 그니까 파시열리도 다 일본인이 사간기제. 해방하고 살 사람이 없어지니께 뱃사람 딴 데 가 불고, 파시도 영영 없어졌지. 민어 귀경이라도 하고 잡으믄 배 들어오는 거 기다려 보든가. 그나저나 아직 철이 아닌디 볼 수 있을라나.”

그 길로 하우리항 앞에 자리를 잡는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데 바다를 가로질러 돌아오는 고깃배 한척이 보인다. 인사도 빼먹은 채 “민어! 민어 잡으셨어요?” 고함을 친다.

“눈먼 민어 딱 2마리 건졌는디 그걸 빌 달라 하네. 아직 철이 아니라 잘어. 민어 구경 할라믄 6월 중순은 되야제. 그때부터 잡기 시작하니께. 뭐시 그리 급하다고 일찍 왔어. 8월 되면 민어축제도 하고 구경 원 없이 먹고 하는디. 그 때 가믄 이건 민어로 쳐주지도 않어.”

드디어 민어를 알현하는 시간. ‘잔 놈’이라는 설명과 달리 몸집이 어른 허벅다리를 넘는다. 용 비늘 같이 푸르게 빛나는 낯이 신비하다. 아직 생기 넘치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귀한 민어가 산처럼 쌓여 있던 타리파시의 풍경은 어땠을까 궁금증이 불어난다. 이 궁금증을 풀길은 하나. 타리파시의 기억이 축제로 되살아나는 한 여름, 다시 임자도를 찾아야겠다. 그땐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맨눈으로 목격할 수 있으리라.


INFO.
임자 대광해수욕장
주소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광해수욕장길 179

신안 민어축제
기간 8월 첫째주 토~일
주소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광해수욕장길 179(대광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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