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김포] 토요일 오후. 집에 있기가 심심하다. 일손 바쁜 철 주말에는 텃밭에 나가 일하느라 부산을 떨었지만 요즘 같은 때야 손을 놓고 있다 보니 좀이 쑤신다. 아무래도 사람은 일 속에 파묻힐 때 가치가 더 빛나나 보다. 어디 바람이나 쐬고 돌아오면 좋겠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아내가 반가운 말을 꺼낸다.
“여보, 우리 대명포구에 다녀올까?”
“당신 좋아하는 생선 있나 보게요.”
“그곳엔 많지. 간재미, 주꾸미, 삼식이, 숭어, 굴….”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주워 세니 아내가 알 만하다며 그만하란다. 우리는 20여 일 전에도 대명포구에서 간재미를 사다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어떤 생선으로 맛난 음식을 해먹을까? 나는 마당에 나가 차 시동부터 걸었다. 주말 오후, 포구에 나가는 일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아내의 표정도 무척 밝다.
대명포구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초지대교를 사이에 두고 강화군과 김포시로 행정구역을 달리하고 있지만 이웃 동네처럼 가깝다. 인근 해역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이 철철이 나와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마침 주말을 맞아 주차장에 차량들이 빼꼭히 들어찼다. 갯바람에 실린 비릿한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닻을 내린 고깃배와 그 위를 맴도는 갈매기 떼가 그림 같다. 어판장에 들어섰다. 가게 앞을 기웃거리며 서성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팔팔 뛰는 생선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한 아저씨가 가게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아주머니, 간재미 얼마예요?”
“두 마리에 2만원만 주세요.”
“아니, 며칠 사이에 5천원이나 올랐네!”
“물량이 달리고 찾는 사람이 많으면 값이 비싸지죠. 떨어지기 전에 어서 사세요.”
“그래도 좀 깎아주는 맛이 있어야지요.”
“금이 있는데 깎아 달라면 어떻게 해요.”
결국 근을 잘 쳐 달라는 아저씨 말에 아주머니가 실한 놈으로 두 마리를 건져낸다. 능숙한 솜씨로 생선을 닦달하니 머뭇거리던 사람들도 너도 나도 주문한다. 손놀림이 빨라진 아주머니 얼굴에 생기가 넘쳐난다. 지금 대명포구에는 간재미를 비롯해 삼식이, 숭어가 한창 제철이다. 각종 어패류에다 젓갈까지 오늘은 물량이 많다. 주꾸미를 싣고 온 차가 막 들어섰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양이 잡힐까? 아내가 내 손을 잡아끈다.
“여보, 우린 주꾸미 살까?”
“주꾸미? 그거 좋지!”
집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공부하는 딸아이가 와 있었다. 녀석은 올해 대학에 들어간다. 까만 봉지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묻는다.
“아빠, 뭐 사왔어?”
“엄마가 주꾸미 요리한대.”
딸아이가 “와!”하고 소리를 지른다. 자취를 하며 손수 밥을 해먹다 집에 오면 맛난 것이 없는가 하고 많은 기대를 한다. 아내가 ‘오늘 요리는 주꾸미양념볶음!’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갖은 양념을 하여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먹자는 것이다. 딸아이도 일을 도와주려는 듯 팔을 걷어붙이며 수선을 피운다.
“딸은 난로에 불이나 붙이지?”
“난로에다 프라이팬 올려놓고 볶으려고?”
아내의 의중을 헤아린 듯 딸아이가 난로에 불을 피운다. 불이 지펴지니 집 안 분위기까지 확 달궈지는 것 같다. 아내가 주꾸미 봉지를 내게 내민다. 손질을 해달라는 표시이다. 집에서 색다른 요리를 할 때 나는 늘 조수이고, 아내는 맛을 내는 요리사이다. 주꾸미는 봄철에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한다. 봄에 난 주꾸미는 산란기를 앞두고 있어 그 맛이 일품이다. 끓는 물에 데쳐 먹통째 먹으면 알 씹히는 맛에 반한다. 오늘은 내장과 먹물을 떼어내라고 한다. 채소와 함께 볶아먹어야 하기에 먹물이 흘러나오면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꾸미 손질을 끝내자 아내가 본격적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주꾸미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놓는다. 채소는 대파, 당근, 양파가 전부이다. 큼직큼직하게 재료를 썰어놓는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마늘과 고춧가루로 갖은 양념을 하여 조물조물 무쳐내니 빨간 양념이 배인 주꾸미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즐거운 주말 저녁이 훌쩍 지나다
“얘 ! 어서 와.”
아내가 딸아이를 불러낸다. 난로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는다.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지지직 소리가 나며 양념한 주꾸미가 볶아진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자 고소한 냄새가 집 안 가득이다. 아내가 딸아이한테 한입 건네며 간을 보라고 한다.
“내 입맛에 딱 맞아. 정말 쫄깃쫄깃 맛있네! 아빠도 맛을 봐.”
“매콤한 맛이 이보다 더할 수 없겠다.”
딸아이가 납작납작하게 썬 고구마까지 올려놓는다. 고구마 맛도 색다르다. 양이 많아 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금세 비워진다. 노상 다이어트를 한다며 떠들던 녀석이 오늘은 숟가락질하기 바쁘다. 고기를 다 골라먹은 뒤 제 엄마한테 묻는다.
“이제 여기다 밥 볶아먹으면 맛있겠다!”
“너, 너무 먹는 거 아냐?”
아내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엄마 눈치는 아랑곳 않는 듯 딸아이는 어느새 찬밥 한 공기를 넣고 슥슥 비빈다. 아닌 게 아니라 밥을 비비지 않았으면 서운할 뻔했다. 양념이 밴 뜨끈한 밥이 꿀맛이다. 프라이팬에 눌은 밥까지 긁어먹느라 누구라 할 것 없이 숟가락 싸움을 벌인다.
포구에 나가 갯바람을 쐬고 돌아와 머리는 맑아지고, 싱싱한 주꾸미로 맛난 요리를 먹어 속은 든든하고…. 주말 밤이 깊어가고 있다. 이제 평온한 꿈나라 여행이나 떠나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