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서울 근교 나들이] 문화유산 여행지 남한산성 서울에서 20분 거리에서 역사체험 여행을!
[서울 근교 나들이] 문화유산 여행지 남한산성 서울에서 20분 거리에서 역사체험 여행을!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7.03.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남한산성의 전경.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경기 유일의 도립공원인 남한산성. 서울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어 등산객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지만, 정작 나들이로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고구려의 탄생을 그리는 역사드라마 ‘주몽’이 히트하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는 요즘, 남한산성에서 가족 나들이는 어떨까?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 경기도 광주~이천~여주는 동문을 거쳐서, 서울 송파~강동지역은 서문을 거쳐서, 성남지역은 정문인 남문으로 통한다. 다만, 남한산성이 초행이라면 서문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기엔 무리가 따른다. 산을 빙 둘러서 굽이굽이 오르는 길이라 차에 탄 사람은 약간의 현기증을, 운전하는 이는 브레이크와 엑셀을 오가며 돌고, 돌~고 한참을 돈다.

반면, 성남에서 남문 방향으로 들어오는 길은 가장 순탄하면서도 봄이면 벚꽃의 하얀 꽃잎이 사정없이 날리며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는데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벌봉 쪽에는 진달래가, 동문 밖에는 벚꽃이 군락을 이루고 방문객을 맞는다.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벚꽃이 한창인 시기에는 벚꽃놀이 나온 객들로 가득이다.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사실 남한산성에서 20분 거리에 살았으면서도 어렸을 적 한 번 와보고 두 번째 방문이다. 예전보다 등산로도 정비되었고 수많은 음식점 사이에 운치 있는 카페가 들어선 것 외에도 변한 것이 있다. 올해부터 입장료가 폐지되어 하루 주차비 1,000원만 내면 산성의 역사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다.

나들이를 시작하기 전, 먼저 산성마을에 있는 남한산성 역사관에서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쉽다.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기점이었던 남한산성은 신라시대 문무왕 때 처음 8km의 토성으로 축성되었다. 성의 주변이 높고 험한 데 비해 성의 중심은 낮고 판판하여 적에게 몸을 숨기기에도, 주거지로도 좋은 조건을 지녔다. 이후 인조 때 후금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50년 뒤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는 우리나라가 성을 쌓는 것에 촉각을 세우던 청나라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3km의 외성을 더 쌓게 된다. 성을 쌓고는 비워 둘 수 없어 광주의 모든 행정기관과 사찰이 남한산성에 운집하게 되면서 인구가 늘어 숙종 때는 1,000호가 넘는 가구가 살았다는데, 현재는 140호만 남아 있다.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3~7.5m 높이의 성곽.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적들에게 공격을 받기 쉬워 일부러 작게 만든 서문.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마늘을 재배하고 닭을 키워 산성을 오르는 이들에게 대접하였는데, 그로 인해 지금은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백숙을 주 메뉴로 내놓을 만큼 백숙요리가 유명하다. 12만평이나 되는 남한산성을 다 둘러볼 수는 없는 일. 3시간 이내로 산성의 중요 문화재를 둘러보면서 가벼운 등산까지 겸할 수 있는 코스로 잡아보았다.

개원사에서 출발해 연무관-종각-침괘정-행궁-수어장대-청량당-병암-서문-연주봉 옹성-암문-국청사 앞 효자정을 거쳐 다시 남한산성 마을로 돌아오는 코스.

역사관 뒤편으로 있는 개원사는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성을 보수하기 위해 전국에서 승도들을 불러 모았을 당시 그들을 총지휘하기 위해 세워진 본영사찰이다. 무기를 저장하던 침괘정을 거쳐 수어장대 방향으로 나 있는 산책길을 오를 땐 폐속 깊이 호흡을 해보자. 70~80년 된 소나무가 20만 그루 이상 뿌리를 내린 소나무 군락지가 여기 있다.

매캐한 도시 속 오염된 공기와는 확실히 다른 ‘맑은 정기’가 몸속으로 차온다. 언제부턴가 참새보다 더 작고 귀여운 박새가 옹기종기 모여 뒤따라온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지나던 사람들이 가끔 땅콩을 손에 얹어 주었기 때문이란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따라오는 모습이 마치 ‘저 가방에 과연 땅콩이 들어 있을까?’하는 듯하다. 촬영도구만 가져와서 미안하다, 박새야. 

수어장대 밑에는 남한산성 내에 살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40년째 한 자리를 지키며 막걸리와 커피 등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에게는 유명인사라는데, 남한산성에서 일생의 반을 살아온 만큼 할 말도 많다.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산책길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셔도 좋습니다.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서문으로 나와 연주봉 옹성 방향으로 오르면 서울 전경이 보이는 장관을 만난다. 2007년 3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주몽 봐? 거기서 소서노가 주몽과 결혼하기 전에 낳은 아들 있잖아. 비류왕자. 그 비류왕자가 소서노랑 도읍을 정한 곳이 요~기 밑에 숭열전이야. 거기 가면 백제시대 온조왕 위패를 모신 사당도 있고 비석도 있어. 남한산성은 2,000년의 역사가 담긴 잊지 못할 곳이지. 여기 와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아주 재미있다니까.”

정말인가 싶어 찾아봤더니 온조왕은 하남 위례성에 먼저 도읍을 정했다가 바로 이곳 남한산으로 천도하였지만 남한산 아래에 성궐을 세웠을 뿐 산성 내에 축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숭열전에 온조의 사당과 비석이 있어 온조가 도읍한 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수어장대를 둘러보고 다시 성곽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서울 시내가 훤히 보이는 길이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필요 없다. 서문으로 나오자마자 우측으로 20m를 오르면 나무 한 그루 없이 시야가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동행한 임금재 해설사가 낮 동안의 경치도 훌륭하지만 야경은 더 끝내준단다. 강남 일대와 저 멀리 남산타워도 보인다. 빽빽한 도심 속에서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스르륵 풀린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도심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니. 왜 그동안 찾지 않았을까?

등산을 겸해 자연스럽게 역사체험도 하면서 가족들과 즐거운 나들이로 남한산성만한 곳이 있을까? 함께 했던 친구와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 성곽 전체를 둘러보며 역사를 체험하고 건강을 다지기로 약속했다. 가까이에 있는 것의 소중함, 남한산성이 일러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