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충주] “나 이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에서 모진 세월을 살아온 영호(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이렇게 외치며 기차에 몸을 던졌다. 그 장면의 촬영지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삼탄역은 열정 가득했던 젊은 시절의 MT장소로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기차역이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두꺼비 소주 한 병을 먼저 꺾어주는 거지. 그러면 자연히 기타 든 녀석이 ‘고래사냥’을 튕겨주거든? 그러면 그때부터 객실 하나가 우리 차지가 되는 거야. 그래도 그때는 어른들이 뭐라 하지 않았어. 차라리 우리가 노래 부르고 노는 걸 구경했다니까.”
MT 추억 여행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배에게 MT에 대한 추억거리가 없냐고 물었더니 처음부터 이렇게 음주가무에 대한 이야기부터 술술 나온다. 하긴 MT의 추억에 음주가무가 빠지면 이야기가 될 리 없다. 그것이 젊음에 대한 표현이고 예의라도 생각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실컷 기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창밖을 보잖아? 그러면 기차가 달리는 건지, 바깥 풍경이 달려오는 건지 헛갈려. 그럼 그때부터 막 눈물이 난다? 별거 아닌 풍경인데도 너무 눈부셔서 제대로 쳐다보지를 못한다니까. 그게 아쉬워서 눈물이 나더라. 나는….”
애초에 MT 이야기를 듣겠다고 술집에서 만나는 게 아니었다. 선배는 MT의 추억이 ‘음주가무’와 이유 모를 ‘눈물’이라는 황당한 결론만을 남겨주었으니 말이다.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삼탄을 찾았다. 삼탄은 대학생들의 추억의 MT장소로써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대전이나 청주 또는 충주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한번쯤 삼탄으로 MT를 다녀온 추억이 있을 것이다.
마치 서울 지역에서 대성리나 청평으로 MT를 가던 것처럼 충북선이 지나는 도시에서는 삼탄역이 있는 이곳을 즐겨 찾았다. 집에서나 쓰는 선풍기가 객차 천장에 덩그러니 붙어 있던 비둘기호를 타고 선배의 말처럼 객차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퍼질러 앉아 통기타를 퉁기며 이곳엘 들렀었다.
실로 십여 년만에 다시 찾은 삼탄은 신기하게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협곡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충북선의 철길도 그대로이고, 모닥불을 피우던 강변도 그대로다. 수퍼마켓 출입문에는 아직도 김치와 삼겹살, 폭죽과 필름을 판다는 글이 적혀 있다.
이동수단이 대부분 기차였던 그 시절, 음식 및 식재료는 대부분 현지 조달이었다. 지금이야 ‘굴릴 수 있는’ 자가용이 많으니 출발할 때 대형 마트에서 사서 오면 그만이지만….
한때는 현지에서 조달하는 음식들에 약을 탄 게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다. 소주 한 잔 주량을 가진 이도 술 두어 병을 거뜬하게 넘기는 신비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술만 마시면 선후배 사이가 오빠·동생이 되고, 기분이 멜랑콜리 해져서는 산으로 강으로 바람을 쐬러가게 만들고…. 유독 MT에서 많이 벌어지는 ‘썸싱’이 바로 이 현지 조달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했었다.
삼탄 유원지에 선다. 협곡 위에서 강과 나란히 흐르고 있는 진소천 철교는 그 규모도 규모지만 간간이 터널에서 빠져나와 철교 위를 달리는 기차의 풍경과 어우러져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삼탄유원지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삼탄역은 유원지 근처에 있긴 하지만,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탓에 호젓한 느낌이다.
무궁화호가 상행선 3회, 하행선 4회, 이렇게 하루 7번 들락날락거리지만 기차로도, 차로도 이곳을 찾아오기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적당히(?) 불편한 교통 덕분에 세월이 지나도 이곳에는 늘 살아 숨쉬는 자연이 있고, 추억 속의 그 모습이 유지되는 것 아닐까. 역사 바로 앞 자그마한 주차장 밑으로 강물이 휘돌아 흐른다. 솔숲 우거진 강변에 자리 잡은 소박한 민박집이며 절벽을 이룬 산허리가 보기 좋다. 협곡 사이사이에서 푸름을 뽐내는 나무들은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낸다.
삼탄을 유유히 흐르는 제천천은 선로와 정반대로 왼쪽으로 굽이치다가 다시 정면의 산을 끼고 오른쪽으로 휘돌아 충주호로 들어간다. 요즘은 MT도 대형 콘도나 펜션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삼탄도 예전보다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낸 깊은 협곡처럼 ‘삼탄의 추억’도 오래오래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은 협곡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