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강릉, 보성, 부산, 거제, 대부도] 찬바람을 좀 쐬었다고 몸이 으슬으슬하다면, 적은 이미 코앞에 와 있는 것. 엄동설한에 맞서기 위한 가장 맛있는 무기를 찾아라. 당신을 위해 바다의 맛과 영양을 담아낸 전국의 탕요리가 끓고 있다. 그럼, 준비하시고 삭풍을 몰고 돌아온 동장군을 향해 쏘세요. 탕, 탕, 탕!
강원 강릉 망챙이탕
동해수산연구소의 박정호 연구사가 보장하는 ‘망챙이탕’, 그 맛이 궁금하다. 냄비에 망챙이를 툭툭 잘라 알과 내장을 함께 넣고 고춧가루를 팍팍 뿌린 뒤 바글바글 끓인다. 뼈째 끓여 깊고 진한 국물을 호로록 마시면 얼큰한 기운이 식도부터 배꼽 밑까지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오래 끓여도 쫄깃한 살코기를 건져 먹고 알과 내장을 꼭꼭 씹어 먹으면 입 안에 싱그럽고 짭조름한 동해의 맛이 가득 찬다. 뚝뚝 수제비까지 뜯어 넣으면 동장군 물리치는 겨울 끼니로 손색이 없다.
어디서 먹지?
해안누리길 제38코스 ‘아들바위 가는 길’이 관통하는 강원도 강릉 소돌마을에 망탱이탕을 끓이는 어촌계 식당이 10여 군데 모여 있다.
주소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소돌안길 19
전남 보성 키조개탕
전남 보성을 말할 때 초록빛 녹차밭이 아닌 푸른 바다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땅 못지않게 바다가 좋은 고장이 바로 보성이다. 은빛 비단처럼 반짝이는 보성의 득량만은 보기만 해도 배부른 푸른 풍광과 함께 사시사철 맛 좋은 별미를 내준다. 그중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미식가의 혀를 사로잡는 ‘겨울진객’이 있으니, 바로 ‘키조개’다. 득량만의 키조개는 수심 20~50m에 서식하면서 갯벌의 영양을 쏙쏙 먹고 자라 육질이 연하고 부드럽다. 구워 먹어도 무쳐 먹어도 맛있지만, 특히 찹쌀가루를 넣고 맑게 끓여낸 키조개탕은 국물 한 모금에 답답한 속 뻥 뚫리는 진국이다.
육수가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키조개를 ‘샤브샤브’처럼 가볍게 데쳐 먹는다. 오래 익히면 육질이 질겨지니 주의할 것. 투명한 유백색 관자가 우윳빛으로 익으면 입으로 직행. 육질이 탱글탱글하게 씹히며 입안에 척 들러붙는다. 그냥 삼키기에 아까워 오래 우물거리게 되는 맛이다. 키조개를 익히는 동안 뽀얗게 우러난 국물은 조개의 단 맛이 듬뿍 배어 녹차처럼 호, 호, 불어 음미하기에 좋다.
어디서 먹지?
임진왜란 당시 율포해전의 배경이 된 보성군 회천면의 율포 앞바다에 1년 내내 제철 수산물로 풍성한 한상을 차리는 어촌 식당이 몰려 있다.
주소 전남 보성군 회천면 우암길 24
부산 기장 곰장어 매운탕
미식가 사이에서는 ‘기장미역’만큼 유명한 것이 바로 ‘기장곰장어’다. 지금이야 부산을 대표하는 별미로 사랑받고 있지만, 기실 곰장어는 어망에 걸려도 떼어내 버리는 잡어였다. “생긴 것도 흉측스런 놈이 표피에 끈적끈적한 진액을 뿜어대니 먹을 생각을 안했지. 먹을 줄 아는 뱃사람들만 짚불에 구워먹고는 했는데 한국전쟁 전후로 먹을 게 없어 노니 찾아먹기 시작한 거예요. 파는 사람 많이 생기니까 집집마다 맛내는 법도 달라지고 가짓수도 많아지고.” 조리하기 까다로운 곰장어,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까. 이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탄생한 ‘신(新)메뉴’가 바로 ‘곰장어 매운탕'이다.
부산의 향토음식 명인 김영근 사장이 특허받은 새로운 국물요리인데, 그 맛이 가히 국보급이다. 꿈틀꿈틀 살아있는 곰장어를 바로 잡아 껍질과 쓸개를 제거한 뒤 납작하게 썬 무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고추장과 된장으로 간을 맞추고 양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간을 하는 동안 곰장어의 분홍빛 속살이 쪼그라들면서 얼큰한 국물 맛이 깊게 밴다. 맛의 포인트로 방아잎을 넣어 주면 완성. 온탕에 들어갈 때처럼 절로 으으, 앓는 소리 날 만큼 얼큰한 국물 맛에 은은하게 퍼지는 방아잎 향이 일품이다. 입 안 가득 뜨겁고 행복한 축포가 터진다.
어디서 먹지?
부산에서 바다가 맑고 깊은 기장 공수마을 주위로 크고 작은 ‘곰장어촌’이 형성돼 있다. 그중 원조격 맛집 ‘기장 곰장어’를 찾으면 된다.
경남 거제 대구탕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말이 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함박눈이 내릴 때 제 맛이 오르는 ‘대구철’을 뜻하는 말이다. 코끝에 한기가 들기 시작한걸 보니 대구 맛보러 가기 딱 좋은 계절. 대구의 고향이라는 경남 거제 외포리로 간다. 외포리는 전국 대구 물량 30% 이상을 차지하는 집산지다. 이른 새벽 물때에 맞춰 조업을 나간 어선이 하나 둘 외포리로 모여들면 경매장에는 싱싱한 대구가 그득하게 쌓인다.
막 잡은 대구는 특별한 요리법이 필요 없다. 단물 담뿍 머금은 겨울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대구를 툭툭 썰어 끓여내기만 해도 천하일미의 맑은 대구탕이 완성된다. 쌀뜨물처럼 뽀얀 국물을 들이켤 때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을 먹는 느낌. 겨울의 대구 암컷은 알, 수컷은 곤이를 품고 있어 아이스크림처럼 혀에서 살살 녹는 속살과 함께 알과 곤이의 진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어디서 먹지?
구잡이 배가 모이는 외포리에는 살아 있는 대구로 요리하는 음식점 10여 곳이 모인 ‘외포 대구탕거리’가 조성돼 있다.
주소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5길
경기 대부도 연포탕
섬 여행의 멋과 맛이 여기, 대부도에 있다. 대부도는 바쁜 일상에 치여 섬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를 위한 맞춤 여행지다. 예정 없이 훌쩍 나서도 서해안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며 아침나절에 건저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는 바다 식도락 여행이 완성된다. 낙지, 바지락, 굴, 소라 등 쏟아지는 제철별미 중 12월에 맛봐야 할 것은 뻘낙지. 찬바람이 들 때부터 서서히 맛이 오르기 시작하는 대부도 뻘낙지는 태어나면서부터 서해의 거친 뻘 속을 헤치고 다닌 덕분에 육질이 쫀득하고 차진 것이 특징이다. 빨판 힘이 어찌나 센지 수조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낙지를 갖은 채소와 함께 우르르 끓이면 바다의 맛과 가장 닮은 천연의 연포탕이 완성된다. 분홍빛으로 익은 낙지 속살은 몇 번 씹지 않아도 목구멍을 타고 사르르 넘어가고, 낙지의 맛과 향이 우러나 발갛게 물든 국물을 들이켜면, 겨울바람에 땡땡하게 얼어붙은 몸이 안쪽에서부터 사르르 녹는다.
어디서 먹지?
대부도의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구봉도 낙조전망대’를 둘러보고 바닷가 앞으로 나가면 어촌식당가가 보인다.
주소 경기 안산시 단원구 구봉길 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