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평창]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가보지 않고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풍경. 눈부신 설원 위 하얀 풍차를 따라 겨울바람의 노래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선자령이 그러하다.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뚝 떨어지던 날 콧노래를 부르며 대관령으로 향했다. 은빛 초원과 거대한 풍차가 어우러진 선자령(1157m)의 이국적인 겨울 풍경을 만날 기대에 엄동설한이건만 가슴이 봄처녀마냥 자못 부풀었다.
선자령은 대표적인 겨울 트레킹 명소다. 내륙 최대 적설지인 대관령에서 이어진 평탄한 산길을 따라 그림처럼 늘어선 흰 풍차와 풍부한 눈꽃을 즐길 수 있어 추울수록 찾는 이들이 많다.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지만 850여m 지점에서 트레킹을 시작해 코스도 그리 길지 않고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아 초보자도 쉽게 겨울 트레킹의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시작점은 대관령휴게소. 휴게소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양떼목장길로 가거나 휴게소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와 국사성황당을 거쳐 정상으로 향할 수도 있다. 대관령휴게소로 원점회귀 한다면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다. 어디를 먼저 밟느냐의 차이지 어차피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이 길은 강릉 바우길의 제1구간 ‘선자령 풍차길’으로도 불린다. 바우길은 강릉이 고향인 소설가 이순원 씨와 산악인 이기호 씨가 개척한 길로 대관령을 넘어 경포대와 정동진 바닷가로 이어지는 150km에 총 10개 구간으로 이뤄졌다.
탁 트인 동해 바다 넘실대는 새봉
정상으로 가기 전 탁 트인 동해 바다부터 보고 싶어 국사성황당 쪽 길을 택한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약 1.5km 포장도로를 따르면 대관령을 넘나드는 사람들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 국사성황당이다. 오른쪽 산비탈을 따르면 백두대간 능선 위에 오른다. 오솔길은 다시 넓은 포장도로로 바뀌어 KT통신중계소까지 이어진다. 등산로는 KT통신중계소 입구 안내판에서 왼쪽으로 나 있다. 양 옆을 빽빽이 채운 활엽수가 인도하는 숲길 사이로 작은 바람개비처럼 보이던 풍차가 서서히 거대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연평균 초속 6.7m의 바람이 부는 선자령에는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쉼 없이 돌고 있다.
새봉 전망대에 서면 푸른 동해와 강릉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몸이 휘청거리 정도로 바람이 세지만 탁 트인 동해안과 구불구불 뻗어나간 백두대간을 가슴에 담는데 방해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 새봉을 떠나기 전 옷매무새를 단단히 여미는 것이 좋다. 육중한 바람의 노래가 펼쳐질 초원이 기다리고 있으니.
풍차보다 더 거대한 선자령길 사람들
새봉에서 선자령까지는 2.5km. 날씨만 좋으면 30분 만에 닿을 정도로 평평하고 쉬운 길이지만 바람이 심한 날에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들다. 초원의 풀과 나무는 모두 오른쪽으로 몸이 휘었다. 땅에 납작 엎드릴망정 뿌리는 꺾이지 않는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두 손을 꼭 붙잡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품 안에 얼싸안은 자식이 있어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바람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 그리 힘겹지 않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풍차보다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넋을 놓는다.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순간, 가보지 않고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선자령 정상에는 ‘백두대간 선자령’이라 새긴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바람 한 올 들어올 새라 빈틈없이 꽁꽁 싸매 바람의 언덕에서는 누가 누군지 분간도 안 가던 사람들이 정상에 이르자 장갑도 술술 벗고 환한 얼굴을 드러내 기념사진을 남긴다. 입이 덜덜 떨리게 추워도 미소는 봄볕처럼 화사하다.
대관령휴게소로 돌아가는 길은 정상에서 북쪽 내리막길을 따라 500m쯤 가면 만나는 넓은 도로에서 왼쪽이다. ‘대관령’ 이정표만 따라가면 하산은 수월하다.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가다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올라올 때와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바람도 잦아들고 키 큰 나무들이 드리워져 아늑하다.
INFO. 선자령 트레킹 코스
구간 대관령 휴게소~국사성황당~KT통신중계소~새봉 전망대~선자령~대관령양떼목장~대관령휴게소
거리 11km
소요 시간 4시간
Tip 선자령 트레킹 요령
ㆍ트레킹 전 코스와 기상 상황, 탐방로 통제 여부 체크는 필수.
ㆍ복장은 방풍, 방한, 방수, 땀 배출 기능이 뛰어난 기능성 의류를 착용한다. 쉽게 젖고 잘 마르지 않는 면 소재 의류는 금물.
ㆍ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젠을 반드시 착용한다.
ㆍ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센 곳이다. 체온 유지를 위해 모자, 귀마개, 넥워머, 장갑 등으로 바람에 노출되기 쉬운 부위를 완벽히 무장하라.
ㆍ눈에 젖을 경우를 대비해 여벌의 장갑과 양말을 준비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