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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김준의 섬 여행 40] 이생진 시인과 떠난 충남 서산 고파도
[김준의 섬 여행 40] 이생진 시인과 떠난 충남 서산 고파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4.0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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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서산] 서산 구도항에서 이생진 시인을 만났다. 고파도는 서산이 고향인 시인이 나이 들어 찾겠다고 아껴놓은 섬이란다. 그곳에 동행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시인은 내가 꼭 닮고 싶은 사람이다. 그날 바다는 선창을 빨아들일 듯 고요했고 엷게 낀 안개가 신비롭기까지 했다. 

구도항에서 시인의 시집 <실미도, 꿩 우는 소리>와 나의 책 <섬 문화 답사기>에 서로의 사인을 주고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인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어”라며 기뻐했다. 

구도항을 출발한 배는 갯골을 따라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고파도로 향했다. 썰물이 시작되면서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호리반도를 빠져 나올 즈음 햇살이 통발을 건져 올리는 어민과 배로 쏟아졌다. 시인은 늦가을 찬바람에도 고물(船尾)에서 화첩을 들고 그림을 그리며 메모를 했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섬마을상회는 바지락 캐는 작업을 하는 날이면 문을 닫는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살’을 엮어 고기를 잡아 사는 사람들
고파도는 고지도나 고문헌에 ‘파지도’ 또는 ‘고파지도’라고 소개되어 있다. 파지도란 ‘바자’에서 유래한 말이다. 대, 갈대, 수수 등으로 엮은 발로 물고기를 잡는 ‘살’을 의미한다. 즉 살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은 ‘바자섬’이었던 것이다. 바자섬이 ‘바지섬’이 되었다가 한자 표기로 바뀌면서 ‘파지도(波知島, 波島라고도 함)’가 되었다.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파도에 수군이 주둔하고 성을 쌓았다. 가로림만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섬으로 충청도 내륙으로 들어오기 위한 길목이었다. 조선 초 수군진을 호리(구도성)로 옮기면서 ‘고파도’라 불렀다. 

고파도는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에 속한다. 마을은 당산이 있는 웃말, 당산 아래쪽의 아랫말(학교 근처), 서산 쪽을 향하고 있는 서산편으로 나뉜다. 주민들은 아랫말을 ‘태안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동국여지승람>에도 고파도의 서산군과 태안군에 속한 두 마을의 가구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가로림만의 조차는 7m에 달해 배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갯벌이 드러난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조력발전이 계획되어 있다. 고파도는 가로림만의 가운데 위치해 있어 간조에는 갯벌에서 바지락, 굴, 낙지, 게 등을 잡고 김 양식으로도 많은 소득을 올렸다. 1990년대 초에는 정치망을 이용해 뱅어(실치)를 잡아 많은 돈을 벌었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갯벌에 남긴 흔적이 아무리 깊어도 달포면 지워진다. 열닷새는 그리 길지 않지만 한해살이나 두해살이 갯벌 생물에게는 짧지 않은세월이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굴과 바지락이 지키는 섬마을
섬에 도착하자 이장이 안내자로 나섰다. 그런데 차가 예사롭지 않다. 산악용 바퀴의 사륜구동. 아무리 섬이 험하기로서니 저렇게 중무장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당산을 오르며 중무장한 이유를 알았다. 승용차는 물론 사륜구동이라도 가기 힘든 길이다.  

물이 들면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는 곳으로 향했다. ‘서창물’이라 부르는 갯벌에서 주민 30여 명이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오늘 한 집에서 채취할 수 있는 바지락은 60kg이다. 정해진 양을 캔 주민 한 사람이 호미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마을 주민들 중 처음 바지락 밭을 만들 때 참여한 어촌계원들에게만 바지락 채취권이 주어지는 것이 고파도의 마을 규칙이다. 다른 어촌에서도 볼 수 있는 어장 운영의 관행이다. 

고파도는 바지락 밭이 좋아 종패를 거의 넣지 않아도 매년 바지락을 채취할 수 있다. 그래서 바지락이 굴과 함께 어민의 주소득원이다. 요즘 시세로 1kg에 2000원 정도 하기 때문에 50kg만 캐도 10만원 벌이는 한다. 노인들이 자식들의 부름도 마다하고, 만사를 제치며 섬에 머무는 이유다. 

바지락 채취와 달리 굴 양식은 능력껏 하고 있다. 많이 하는 사람은 굴 1만 개 정도, 적으면 3000~4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걸대에 거는 줄의 수로 양식 규모를 가늠한다. 가로림만은 조차가 심하고 수심이 깊지 않기 때문에 양식줄은 남해안의 절반 수준이다. 들고 나는 바닷물에 따라 걸대에 매달린 굴은 물에 잠겨 있는 시간보다 밖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이 더 많다. 남해안에 수하식 굴처럼 24시간 바닷물에 잠겨 있는 굴과 다르다. 하루 들물에 한 시간 반, 썰물에 한 시간 반, 그렇게 세 시간만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굴이 크지 않고 쫄깃쫄깃하면서 탱글탱글하다. 거제나 통영처럼 기계화되어 있지도 않다. 작은 배 위에서 줄을 매고 자란 굴을 베어와 굴막에서 조새로 까야 한다. 그만큼 더디고 양도 적다. 그래서 남해안의 굴보다 2~3배 정도 값을 더 쳐준다. 

바지락 밭 인근에는 염전이 있었다. 이곳을 주민들은 ‘버티’라고 부른다. 이는 소금을 굽던 벗집이 있던 터라는 의미다. 서산 지방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자염이 생산되었다. 대표적으로 몰분처, 안면곶, 웅도, 간월도 등에서 자염이 성했다. 고파도의 ‘버티’라는 곳도 그 중 하나로 추정된다. 1944년 박채화라는 사람이 10ha의 갯벌을 매립하여 천일염전을 조성한 것이 시작이다. 고파도는 서산에서 천일염전이 확대된 곳으로, 천일제염의 민영화 사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고파도 사람들은 겨울철에는 김 양식을 했고, 여름철에는 염전에서 일을 하며 생활했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바지락밭에서 완전무장을 하고 호미질을 하던 어머니, 교회로 가실 때 변신했다. 어머니, 너무 이뻐유.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어머니, 몰라보겠어요
웃마을로 넘어와 교회를 가시는 어머니 두 분과 마주쳤다. 앞서가시는 어머니가 활짝 웃으셨다. ‘어디서 만났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창물에서 봤잖유, 바지락 밭” 하신다. 불과 1시간 전에 보았던 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니 딴 사람 같아유” 충청도 사투리를 흉내 내자 배꼽을 잡고 웃으셨다. 어머니는 천으로 만든 분홍색 가방에 성경책과 노래책을 넣고 교회로 들어가셨다. 가방에는 바지락을 팔아 흰 봉투에 곱게 접어 넣은 십일조도 있을 것이다. 자식에게 보내고 주님에게 보내고, 어머니에게 더 이상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분점도와 웅도가 보이는 갯벌에서 이생진 시인과 다시 만났다. 우리는 갯벌을 나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빈집으로 들어갔다. 시인은 벼루 한 점을, 나는 김을 세척하고 가공하는 옛날 도구 몇 점을 찾았다. 시인은 벼루를 책상에 올려두고 시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섬의 빈집에서 한 점 두 점 모운 생활도구를 전시할 생각이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배가 부르면 놀고 싶어진다. 가수 현승엽은 기타를 들고, 어떤 이는 자작시를 읊었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그 사이 이장 사모님이 점심을 준비해 주셨다. 집 앞에서 깐 굴, 그물로 잡은 망둑어와 돔을 말려서 찐 것, 바지락과 낙지를 넣고 끓인 해물탕, 무밭에서 막 뽑아 무친 생채와 깍두기. 이런 음식을 두고 ‘로컬 푸드’라고 하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점심을 먹고 나자 햇볕이 좋은 집 앞에 자리를 잡고 시낭송을 곁들인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기타는 시인과 단짝인 가수 현승엽이 맡았다. 현승엽은 이생진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를 불렀다. 아라메길. 시인은 그 길을 자연과 문화가 일어나 악수를 청해오는 길이라 했다. 나그네 길이자 시인의 길이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섬마을상회 옆에선 우럭, 붕장어, 망둑어가 꾸덕꾸덕 마르고 있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점심 밥상에 오른 생선찜, 굴회, 무채, 깍두기 모두 동이 났다. 2014년 2월 사진 / 김준 작가

끝뿌리로 향했다. 하루에 2번 배가 닿는 곳이다. 섬의 동북쪽 끝에 위치한 끝뿌리는 서산 구동항과 연결하는 고파도의 관문이다. 상점 문 옆 시누대에 우럭 5마리, 망둑어 9마리, 붕장어 11마리가 꿰여 꾸덕꾸덕 마르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 입맛을 다시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생선의 주인은 뭍에 있는 자식들이다. 아무리 갯것이 흉년이라도 자식들 먹일 것은 챙기는 것이 부모 마음. 곱게 늙은 어머니 한 분이 외발수레를 끌고 선창으로 향했다. 수레 속 종이상자에는 마른 생선이 담겨 있고, 스티로폼 박스에는 굴과 바지락이 가득이다. 쌀 포대에는 호박을 담았는지 고투리가 밖으로 튀어 나왔다. 상자마다 꾹 눌러쓴 ‘성심 우리집으로’이라는 글씨에서 어머니의 정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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