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고창] 삼림욕하기에 좋은 계절, 여름이다. 가까운 산이나 숲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삼림욕의 가장 큰 장점. 삼림욕은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긴장을 이완시키고 심폐 기능을 강화시킨다. 걷기 좋기로 소문난 고창읍성 숲길에서 자연이 만들어준 보약을 온몸으로 맛보았다.
초록으로 몸을 씻는다
삼림욕 좋다는 사실이야 누구나 알지만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삼림욕이야말로 적은 비용과 들인 시간에 비해 얻어갈 것이 많은 알뜰 건강법이다. 오죽했으면 그린 샤워(Green Shower)라고 부를까. 초록으로 몸을 씻는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숲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삼림욕이 가능하지만 이왕이면 오감이 행복한 곳을 찾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숲길 아름답기로 꼽히는 곳이야 여럿 되지만 이번엔 눈과 입, 몸과 마음까지 모두 즐겁게 해줄 만한 곳으로 전라북도 고창을 찾았다.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고창읍성은 동네 주민들에게는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산책 코스로,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장소로, 어린이들에게는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학습장으로 유명하다. 유적지이면서도 널리 개방된 데다 숲 조성이 꽤 잘 되어 있어 ‘기대 이상’의 수확을 할 수 있다.
삼림욕장 부럽지 않은 숲
초기 축성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는 설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고창읍성. 계단을 밟자마자 울창한 숲이 눈앞에 펼쳐져 벌써 한여름에 와 있는 듯하다. 초록이 절정이라 그늘 아래 있자니 등줄기의 땀이 금세 가셔버린다. 휘이 바람이 한 번 부니 반소매 차림 팔뚝에 소름이 오돌오돌 돋을 정도로 시원하다. 바닥 곳곳에 떨어진 낙엽과 흙의 촉감이 부드러워 따로 신발을 갖춰 신지 않아도 되고 경사가 완만해 어린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성곽을 밟고 전체를 한 바퀴 돌아도 좋지만 사이사이 숲으로 연결되는 오솔길은 한가로이 거닐기에 그만이다. 특히 요즘처럼 볕이 뜨거운 때는 성곽 위보다는 아래로 나 있는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 성곽에 둘러싸여 있는 숲은 아늑하면서도 포근하다. 이곳 숲길이야말로 삼림욕을 위해 일부러 조성한 듯 느껴질 정도로 울울창창이다. 수백 년은 족히 됨직한 소나무와 맹종죽들이 도열한 숲을 걷는 기분은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굳이 피톤치드나 음이온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절로 숨을 들이마시게 하는 그윽한 향기에 건강해지지 않고 배길 이가 얼마나 될까.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해도 터의 기운에 따라 내뿜는 향이 달라진다고 하니 읍성과 어우러진 숲길이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객사나 동원, 내아 등과 같은 오래된 건물에서 쉬어 가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천천히 걸어도 읍성 둘러보는 데 1시간이면 족하다고 했지만 일단 숲길에 마음을 빼앗기니 한나절도 아쉽기만 하다.
성황당 앞에 앉아 잠시 쉬어 가자니 어르신 두 분이 이미 와 계신다. 놀러 왔느냐, 결혼은 했느냐, 성은 무엇이냐 등등 질문들이 쏟아진다. 평소 같았으면 경계부터 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대답이 술술 나온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느긋해지는 것 또한 숲이 전해준 선물인 걸까.
걷기 운동의 또 다른 방법
삼림욕은 최근 들어 부쩍 조명을 받고 있는 걷기 운동과도 일맥상통한다. 걷기의 놀라운 효과가 입증되면서 전 세계가 걷기 열풍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주간지 <타임(TIME)>은 1주일에 5일, 하루 30분씩만 걸으면 골다공증 발병 가능성이 낮아지고 관절염과 고혈압, 우울증 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보도했으며, 영국에서는 심장병 환자들에게 약물 대신 걷기 처방전과 만보계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걷기 운동에 관심을 가진 유럽과 미국의 경우 매우 조직적으로 걷기 문화가 확산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1960년대 이후 유럽의 영향으로 걷기 운동이 퍼지게 되었는데, 이 중 350여 개의 산하 단체를 두고 있는 미국시민체육연맹(AVA)의 회원은 4만2000여 명에 이를 정도다.
AVA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걷기를 보다 재미있게 하기 위해 각 주제별로 탐방 코스를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각계에서는 걷기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사회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