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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페루의 콜카 캐니언 세상의 가장 깊은 협곡에 서다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페루의 콜카 캐니언 세상의 가장 깊은 협곡에 서다 
  • 김문숙 기자
  • 승인 2007.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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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콜카 캐니언의 전경.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여행스케치=페루] 콜카 캐니언(Cloca Caynon)은 페루 아레키파 주(州)의 북쪽에 있는 협곡으로,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1,030km, 쿠스코로부터 170km 거리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그랜드캐니언보다 두 배나 깊다. 

콜카 캐니언의 선인장 열매
협곡을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 작은 마을이 있는데, 주민들은 모두 잉카의 후예들이다. 오늘날까지 선조들의 언어와 관습을 지키면서 농사와 라마·알파카 사육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색색으로 치장한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다. 이중 양케(Yanque)라는 마을은 치바이에서 8km 떨어진 곳인데 오르막길도 없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아 걸어서 가기 편안한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강의 절벽과 농경지, 간혹 보이는 당나귀와 소, 새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아름다운 자연에 나도 모르게 매혹된다.

가끔 캄페치노들(페루의 농촌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농경지에서 전통 복장을 하고 일하고 있고, 종종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멀리 보인다. 길에서 마주치는 캄페치노들은 대부분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구걸을 하는 아이들도 없고 뭘 사달라고 칭얼거리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협곡의 잉카유적지.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걷다보니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마을의 입구가 보였다. 한 70가구 정도 되는 작은 규모일까, 바로 광장이 보인다. 광장에 가니 성당이 있고 한 아줌마가 전통 복장을 하고 선인장 열매와 복숭아 몇 개 그리고 다른 과일을 팔고 있었다. 선인장 열매는 스페인에서 한 번 먹은 경험이 있는데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그냥 지나 성당을 보려는데 아줌마가 계속 오라고 손짓을 한다.

페루의 선인장 열매는 맛이 다를 것도 같고, 저렇게 간절히 오라고 하는데 차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워 아줌마에게 다가가니 얼른 선인장 열매를 하나 깎아서 먹어보라고 건네준다.

한입 씹으니 씨 같은 것이 씹히는데 솔직히 맛은 영 아니다. 씨를 뱉으려고 하니 간에 좋다고 그냥 삼키란다. 아줌마의 성의가 고마워서 하나 먹고 일어나려고 하니 선인장도 여러 가지 맛이라며 다른 것을 하나 깎아줄 테니 먹어보란다. 남미의 선인장 열매는 스페인에서 먹은 것보다 더 크고 약간 더 달다. 처음 먹은 선인장은 속이 하얀색이었는데 두 번째 깎은 것은 빨간색이다. 맛은 덜 달지만 시원하고 갈증이 사라졌다. 애초에 안 먹겠다고 하던 에릭도 내가 빨간 선인장을 먹고 있으니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한 점 달란다. 한입 먹어보더니 영 아니라는 표정. 

우리 둘 다 할 수 없이 먹는다는 표정을 하니 아줌마는 먹기 싫어도 건강 생각해서 한 봉지 사서 먹으라고 권한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잘 먹었어요. 얼마죠?”
이곳의 1월은 선인장 열매의 계절이다. 값도 무지 싸서 한 개에 20cent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줌마는 2개에 1sol이란다. 원래 가격을 40cent인 줄 알면서 5sol을 주고 거스름돈을 기다리니 자기 사진을 찍었으니 그 대가로 4sol 을 모두 달란다. 아줌마가 솔직하게 40cent라고 했더라면 어쩌면 다 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난 어떻게 해서든지 거스름돈을 다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 원래 가격을 알고 있고 두 배를 드리니까 거스름돈 주세요” 하니 아무 대꾸 없이 거스름돈을 이리저리 찾더니만 잔돈이 없단다. 잔돈이 2sol밖에 없으니 나머지는 선인장 열매를 가지고 가라는 것이다. 먹겠으면 가지고 가지만 그것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가 가야 할 등산길이 아직 4km나 더 남았다. 계속 기다리니 주머니를 모두 뒤져 10cent 짜리로 거스름돈을 만들어주었다.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조금 더 드릴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너무 인색한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니 그런 식의 행동이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무조건 바라는 습관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아주머니, 미안해요. 하지만 아줌마가 솔직했더라면 더 받을 수 있었어요.”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캐니언의 선인장 열매를 파는 아주머니.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억울한 빙고 
장장 15시간을 버스를 타고 페루의 남쪽 아레키파를 방문하기로 하여 버스 중에서 편안하다고 하는 Cruz del Sur를 선택했다. 리마에는 종합버스터미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버스 회사마다 터미널 위치가 다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여행사에서 산 버스 티켓을 다른 티켓으로 바꾸란다. 티켓을 바꾸고 나니 짐의 무게를 잰 후에 짐표를 주었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타려고 하니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고 5분 전에 탈 수가 있단다. 꼭 공항의 서비스 같은 그런 분위기다.

5분 전이 되니 검사원이 컴퓨터에 입력된 리스트를 가지고 와서 승객이 가지고 있는 표와 대조한 뒤 한 명씩 버스에 오르게 했다. 2층 버스라고 안내원이 두 명이었다. 버스가 떠나니 안내원이 방송을 한다. 운전사라고 하지 않고 조종사라는 단어를 쓰면서 두 명이 15시간의 버스 여행을 운행한다고 한다. 다른 버스보다 비싼 값을 하려고 꽤 노력한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리마 터미널을 5분 정도 벗어났을까.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접촉 사고가 났다.

리마의 도로는 정말로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자칫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 차량들이 양보하지 않고 달리기 때문인데, 이번엔 좁은 커브 길에서의 접촉 사고였다. 경찰이 오고 승객들은 자리에 앉아 나누어 주는 저녁을 먹으면서 버스에서 틀어주는 TV를 통해 홍보 자료를 보았다. 결론이 나지 않았는지 다시 버스터미널로 가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1시간을 허비했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콜카 캐니언의 장례식.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결국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리마를 빠져나가는데 안내원이 숫자 35개가 적힌 종이쪽지를 나누어 준다. 빙고라고 하면서 무릎 위에 놓기에 무심코 받았더니 승객에게 다 나누어 주고 빙고 게임을 한단다. 숫자가 다 맞는 한 사람에겐 돌아가는 버스표가 무료.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안내원이 숫자 하나하나 부를 때마다 차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4개의 숫자가 맞으면 빙고인데, 2개 숫자가 남은 순간 옆 좌석에 있는 남자가 빙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좌석 2번의 손님이었다. 우리 좌석은 3번과 4번이었다. 그 남자가 빙고가 되었다고 하는 순간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빙고는 우리 것인데….

처음 탄 버스에서 저녁 식사를 나누어 줄 때는 1번부터 차례대로 나누어 주었건만 빙고는 3번, 4번 그러니까 순서를 바꾸어서 준 것이다.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빙고는 우리 것인데”라며 에릭에게 바뀐 안내원이 멍청하다고 하니 나더러 억지라면서도 옆에 있는 남자에게 이야기해보란다. 먹힐 이야기도 아니었고 이미 엎지러진 물. 멍청한 안내원이 순서도 보지 않고 나누어 준 것이 억울하기만 했다. 어쨌거나 우리 빙고는 날아가 버렸으니.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거의 손수 만든 모자를 쓰고 옷도 수제이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샴페인 따라 주는데 20sol
페루 사람들은 단것을 선호한다. 아침에 주스를 줄 때도 과일 자체가 무지 단데 여기에 또 설탕을 듬뿍 집어넣어서 내 입맛에는 엄청 달다. 항상 설탕을 넣지 말고 해 달라고 하면 놀라는 표정이다. 음료만 단것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술도 그렇다. 와인도 단것을 선호하고 샴페인도 그렇다. 

아레키파는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여러 종류의 음식과 주류가 있지만 우리가 저녁을 먹기로 한 레스토랑의 차림표를 보니 샴페인이 아예 없었다. 낮에 예약을 하고 우리가 샴페인을 직접 가지고 와서 마시겠다고 하니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한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았고 아주 기분 좋게 생일날 저녁을 즐겼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계산서를 받아본 에릭의 눈이 한층 더 커졌다. 샴페인 따라 주는 값을 20sol이나 넣었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콜카 캐니언 및 페루의 농촌 아이들은 사진 찍는 데 매우 어색해한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조금 어이가 없었다. 5sol도 아니고 20sol이다. 그래서 “식당 예약하기 전에 양해를 구했는데, 뭔가 이상합니다”라고 한마디했더니 계산서를 가지고 가더니만 20sol를 지워가지고 오면서 미안하단다.

우리가 기분 좋게 먹으니 아마 모르고 20sol를 내고 갈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이런 일은 식당뿐만 아니고 일반 가게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기에 전반적으로 페루사람들은 관광객에게 일단은 바가지를 씌우려고 시도를 한다. 대부분은 정상 가격을 알고 있다고 하면 아무 실랑이도 하지 않고 겸연쩍어 하면서 정상 가격에 가지고 가라고 한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과일이나 물을 살 때 가격을 물어보지 않고 무조건 달라고 하고 돈을 낸 후 거스름돈을 받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100% 정상가격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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