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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공새미 가족 사물놀이 세계 기행] 잉카 최후의 도시 페루 마추픽추 사라진 제국과 잉카인들의 영혼을 위한 진혼굿
[공새미 가족 사물놀이 세계 기행] 잉카 최후의 도시 페루 마추픽추 사라진 제국과 잉카인들의 영혼을 위한 진혼굿
  • 김영기 기자
  • 승인 2006.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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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와이나픽추에서 내려다본 마추픽추.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여행스케치=페루] 16세기 후반, 스페인에 의해 쿠스코가 점령되자 잉카인들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마추픽추를 버리고 더 깊숙한 어딘가로 떠났다. 4백년간 숨어 있던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가 사라진 제국의 비밀을 함구한 채 그 모습을 드러냈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아! 마추픽추. 고곳에 올라본 사람만이 지를 수 있는 탄성이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아! 마추픽추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전날 아내가 준비해준 볶음밥을 싸 들고, 6시 15분 기차에 올랐다. 이른 아침 옅은 안개에 덮인 쿠스코 시내가 뿌옇다. 기차는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면서 위로 올라가더니, 마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처럼 고원지대의 산 속을 덜커덩거리며 달린다. 그 흔들림에도 아이들은 못 다잔 잠을 보충했다.

비옥한 고원의 평원지대를 지나자 숲의 색깔이 점점 짙어진다. 마추픽추 역에 도착할 무렵 잎이 큰 활엽수들이 거리 양쪽에서 우리를 반긴다. 이제 주변은 거의 정글 분위기이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쿠스코 역에서 마추픽추 역으로 가는 기차.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쿠스코 역을 떠난 기차는 4시간만인 10시 15분에 마추픽추 역에 도착했다. 뱀처럼 지그재그로 난 가파르고 좁은 비포장 산길을 30여 분간 올라간다. 버스 밑을 내려다보자 천길 낭떠러지에 등골이 오싹해 진다. 드디어 눈앞에 마추픽추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표소에서 한 사람당 20달러 하는 입장권을 구입해서 왼쪽으로 난 길을 한참 올라가자 마추픽추 유적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수없이 보아 왔던 마추픽추가 드디어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 이 순간에 이곳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뱀처럼 지그재그로 난 가파르고 좁은 비포장 산길.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언제나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마추픽추 역.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방금 전까지 돌을 쪼개던 그들은 어디로 황급히 떠나갔을까? 쿠스코가 스페인 군에게 점령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곳의 주민들은 비통한 마음에 돌을 쪼개던 일손을 멈추고 어딘가로 떠났을 것이다. 모든 살림을 그대로 놓아 둔 채 노약자와 여자들만 남겨놓고, 잉카가 다시 부활할 날을 믿으며….

전망 좋은 와이나픽추에 앉아 멍하니 주인 없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주인이 떠난 마을을 이젠 화려하게 치장한 관광객들이 찾아와 무례하게 안방까지 들어와 기웃거리고 있다.

과연 마추픽추에 살던 잉카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쿠스코에서 <아리랑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남승학 사장의 말에 따르면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어느 섬에 정착해서 잉카제국의 재기를 꿈꾸다가 하나 둘 사라져 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한 고고학자가 직접 잉카시대의 배를 재현해 태평양을 건너다 폴리네시아의 어느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잉카인들의 돌 건축물과 유사한 형태의 유적을 발견하면서 이런 가설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진실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마추픽추 가는 길의 설산.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잉카인들이 걸었던 길을 체험하는 ‘3박 4일 잉카트레일 트레킹’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빡빡한 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체력 좋은 젊은 사람들조차 힘들다는 코스를 아내와 어린 현정이가 따라가기엔 무리다. 지난번 킬리만자로 등반 때도 이산가족이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때의 악몽을 생각하면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도 아쉬운지 와이나픽추를 내려오면서 다음에 기회가 되어 페루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잉카트레일 트레킹을 하겠노라고 다짐한다. 킬리만자로 등반과 함께 이번 세계일주에서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이 이것이었는데, 사실 아쉬움은 내가 더 크다. ‘항상 여운을 남겨 두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며 아이들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지만, 사실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초가지붕을 한 전망대에 앉아 마추픽추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다시 정적이 흐른다. 여전히 남의 집 마당과 안방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이제 이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나면 방에는 구름과 안개가 찾아와 이 주인 없는 집의 마당과 안방을 기웃거릴 것이다. 마추픽추를 떠나 쿠스코로 돌아오는데, 마치 남의 집을 방문해 대접을 받고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나온 것 같은 아쉬움과 함께 눈앞에 마추픽추가 아른거린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아르마스 광장과 대성당. 스페인이 잉카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잉카의 후예와 함께 한 공연
반나절 버스투어가 끝나고 오후 7시가 지나서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순찰 중인 경찰관을 붙잡고 우리 가족 소개서를 보여 주며 이 광장에서 공연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은 옛 잉카제국의 신전이 있던 자리로, 스페인 침략자들이 그 신전을 허물고 그 장소에 대성당을 지었다.

이런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스페인 제국의 침략에 의해 하루 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잉카제국과 잉카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한판 굿을 벌리고 싶었다. 경찰은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오히려 언제 하느냐고 되묻는다.

우리의 연주 소리가 들리자 광장 주위에 있던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특히 술이 얼큰하게 취한 취객이 분위기를 잡는 바람에 관중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역시 우리의 사물놀이에는 바람잡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긴장감을 풀고 훨씬 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쿠스코 골목에 남아있는 잉카시대의 돌담.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공연이 끝나고 잉카의 후예들과함께.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설장고와 웃다리 공연을 마치자 제복을 입은 공원 관리인이 다가오더니 “허가서가 있느냐?”고 묻는다. 경찰에게 허가를 얻었다고 하자, 이곳은 경찰과는 상관없는 곳이라며 공연을 중지하란다. “우나 마스(한 번 더)!”를 연호하는 흥분한 관중들을 향해 “우리는 더 하고 싶은데 이 사람이 못하게 한다”면서 손가락으로 관리인을 가리키자 일제히 그에게 야유를 보낸다. 관리인도 어쩔 수 없었는지, 그럼 한 곡만 더하고 그만하라며 즉석에서 허가를 내준다.

공연이 끝났지만 모두들 일어 설 생각을 않는다. 우르르 우리 곁에 몰려들더니 너무 좋은 공연이었다며, “내일도 하느냐?”, “언제까지 쿠스코에 있느냐?”, “숙소는 어디냐?” 등을 물어본다.

잉카의 옛 수도인 쿠스코의 신전이 있던 자리에서의 감동적인 공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수많은 잉카의 후예들이 우리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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