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완주] 모악산이나 옥정호 같은 명소들이 너무도 유명한 까닭일까. 전주는 알아도 완주는 알듯 말듯하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발 닿는 곳마다 물이 있고, 바라보는 곳마다 산이 있어 마음이 촉촉해지는 그곳. 예술가 마을은 물론 몇몇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전시공간과 갤러리 카페를 완주에서 만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꼬박 1박 2일 동안 완주를 돌아보기 전에는 몰랐다. 완주가 그토록 넓다는 사실을…. 완주가 충청도에 있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전주가 완주 안에 들어가 있는 모양을 설명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20~30분이면 끝에서 끝에 이를 수 있는 여느 촌과는 그 규모부터가 다르다. 완주군 비봉면이나 봉동면에서 구이면을 가려면 전주 시내를 통과해야 하는 짧지 않은 여정이다. 그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완주에 자꾸만 눈길이 쏠린 이유는 숨겨진 문화예술 명소가 많다는 사실 때문.
도예촌과 향긋한 차 한잔이 있는 갤러리 카페, 호수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 그리고 피로를 잠재워줄 만한 온천까지. 이만하면 팔방미인 여행지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1박 2일 중 첫째 날은 익산IC와 연결되는 봉동면과 소양면을 중심을 돌아보았다. 연담도예·만가은을 시작으로 오스갤러리, 송광사, 위봉사가 연장선상에 자리하기 때문에 여정은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다. 이튿날은 죽림온천을 시작으로 옥정호반 드라이브에 나서는데 이날 코스에도 오궁리미술촌과 도립미술관이 포함되어 절로 문화예술기행이 된다.
전주시와 가까운 까닭에 한옥마을 같은 곳에 욕심을 내보고도 싶겠지만 완주는 1박 2일도 아쉬울 만큼 다양한 볼거리를 지니고 있다.
1st day 도예 체험부터 온천까지 한 번에
서울에서 3시간이면 익산IC를 통과할 수 있다. 연담도예·만가은까지는 약 20여분 거리. 남편은 도자기를 굽고 아내는 다도를 하는 매우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부럽다는 나의 말에 그냥 보기에만 그런 거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아내 오은경 씨는 ‘만가은(滿佳隱)’을 이렇게 해석한다. ‘아름다움이 가득 숨어 있는 집’이라고. 듣고 보니 그렇다.
2차선 도로 주변에 있지만 집안에서 들판을 바라보고 있자니 산속에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색다른 정취가 있다. 채소가 자라고 있는 작은 마당, 뒷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집 뒤편에서 몰래몰래 자라는 이끼까지 이 집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조용히 존재를 알린다. 남편의 작업실이 한켠에 마련되어 있고 안채는 그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방 하나는 다실로 사용되는데, 전면을 유리창으로 만들어 염암마을을 마음껏 훔쳐볼 수 있다. 남편 이강식 씨는 마흔이 넘어 도예를 시작했지만 벌써 서울과 전주에서 전시회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단다. 안채에서 그가 직접 빚고 구운 도자기를 감상하는 재미도 크다. 도예 체험도 가능하므로 가족끼리 찾아도 좋을 듯하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부담 없이 들러 차 한잔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자.
날씨가 쨍쨍하다면 대아댐 순환도로를 따라 드라이브에 나서는 것도 좋다. 대둔산·고산 방향에서 대아댐으로 핸들을 틀면 대아수목원에 이를 수 있는데 주차료나 입장료가 없어 부담 없고 안에 작은 계곡이 있어 잠시 발 담그고 놀다 가기에 좋다.
대아수목원을 나와 전주 방면으로 가다보면 자연스레 위봉사, 오스갤러리, 송광사로 길이 이어진다. 이중 오스갤러리는 전북 지방에서는 숨겨진 명소다. 과연 이런 산속에 갤러리가 있을까 싶어 한 번 의심을 하게 되고, 막상 갤러리를 마주하고 나면 오오~ 하는 탄성이 절로 나는 곳이다.
‘웬만한 바람둥이는 다 아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니 그 분위기는 짐작이 갈 것이다. ‘오스’라는 이름은 우리 모두 함께 자연과 문화를 공유하자는 뜻의 ‘Ours’의 ‘O’에서 온 것이라고. 갤러리 감상만 하기 아쉽다면 생과일주스나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곳에서 키우는 차우차우 종인 ‘뭉치’와 ‘순순이’도 눈길을 끈다. 말 그대로 ‘이건 개도 아니고 사자도 아니여’다. 독특한 외모 때문에 이미 방송에도 나간 바 있는 오스갤러리의 귀염둥이다.
오스갤러리에서 송광사가 가깝다. 순천 송광사와 동명으로 조계종 17교구 중 하나다. 본래는 일주문이 현재 위치에서 3km 남쪽 밖에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1944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부근의 위봉사와 함께 완주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저녁식사는 송광산장의 대표 메뉴인 김치닭도리탕을 추천한다. 닭도리탕에 묵은 김치를 한 포기 정도 넣어 익혀 깔끔하면서도 닭고기를 김치에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이 집만의 독특한 메뉴로 한 마리 시키면 남자 세 명도 충분히 먹을 정도로 양이 푸짐하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니 몸이 저절로 뜨끈한 것을 원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숙박과 온천욕을 겸할 수 있는 죽림온천을 찾았다. 소양면의 화심온천도 있지만 숙박을 할 요량이라면 죽림온천 쿠어하우스로 가는 것이 낫다. 객실과 온천, 찜질방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은 가족탕을 이용할 수 있다. 투숙객은 온천 이용이 무료이므로 일석이조.
2nd day 완주 여행의 백미 옥정호 드라이브
그래도 호남 사람들이 인정한 온천인데 그냥 떠나기 아쉽다. 어차피 투숙객들에게는 온천욕이 공짜이니 한 번 더 하는 게 본전 뽑는 방법이다. 아침식사는 쿠어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화심순두부에서 해결. 온천욕 후 얼큰한 순두부찌개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히 하면 옥정호 드라이브에 나설 준비는 끝.
행정구역상 옥정호는 완주랑 이웃한 임실에 속한다. 하지만 죽림온천에서 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호남에서도 알려진 드라이브 코스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또 이 길을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즐거움은 작가들의 공동 공간이 오궁리미술촌이 있기 때문.
사실 이번 일정에는 포함되었던 곳이 아닌데, 여러 사람들이 꼭 가보라고 귀띔을 했던 터라 내심 기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미술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곳은 한창 화제가 되었던 폐교를 이용한 문화공동체다. 주로 전라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모여 작업을 하는 공동 공간으로 지난 2004년 전병관 촌장을 필두로 만들어졌다. 폐교를 이용한 입주 작가촌으로는 전국에서 처음 문 연 곳으로 현재 도예, 회화, 사진, 조각 등 9명의 작가가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학교 운동장이었던 부지에 전시된 조각품은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오궁리미술촌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본격적인 옥정호반 드라이브에 나선다. 먼저 만나게 되는 국사봉 전망대 이르는 길이 꽤 운치 있다. 산길을 굽이굽이 깎아 만든 길이라 다소 험한 편이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달리면 삼림욕이 따로 없다. 다만 산짐승들이 자주 출몰하니 운전에 주의할 것.
운암대교 이르기 전 옥정호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국사봉 전망대다. 종종 달력 사진에도 등장할 만큼 운무에 싸인 모습이 장관이다. 옥정호는 섬진강다목적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로 수몰된 옛 운암면도 옥정호 안에 들어가 있다. 국사봉과 운암대교를 지나 강진에 이르는 길이 약 10km, 멋들어진 풍광을 곳곳에 숨기고 있어 자꾸만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다슬기탕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 다슬기가 예전만큼 많이 잡히지는 않지만 섬진강 상류인 강진면 일대에서만큼은 맛볼 수 있다.
드라이브를 만끽하다보면 섬진강댐은 금방이다. 방문객이 많지 않은 날엔 관리소 앞에 차를 세워두고 댐 위를 걸어볼 수도 있다. 관리원 두 명과 이들이 방목하는 염소 10여 마리가 전부라 조용하게 산책과 사색을 하기에 그만이다.
드라이브 코스가 끝날 즈음 전주, 구이 쪽으로 오다보면 모악산도립공원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 목적지인 전북도립미술관이 모악산 자락에 자리해 있다. 지난 2004년 개관한 문화공간으로 구이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상시 전시는 없지만 연중 기획전이 2~3개월 단위로 열리며 다양한 강좌가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8월 19일까지 <남농 허건 展>, 9월에는 <지리산 展>이 개최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