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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Africa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마냐라 호수, 킬리만자로산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원초적 자연
[Africa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국립공원, 마냐라 호수, 킬리만자로산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원초적 자연
  • 성은경 기자
  • 승인 2007.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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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기린 무리.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여행스케치=탄자니아] 탄자니아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사파리는 ‘여행’을 뜻한다. 우리들에겐 ‘자연 속 동물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탄자니아 친구들은 내가 며칠 집을 비울 때면 항상 사파리를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곤 한다.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쳐간다. 그래서일까? 그늘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친구처럼 정겨워진다. 문득 이 바람을 따라 코끼리와 기린이 살고 있는 자연 속으로 향하고 싶어졌다. 

탄자니아의 자연은 누구의 것인가?
미술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동물 그리기 수업을 하려는데 동물들을 직접 본 아이들이 얼마 되지 않았다. 동물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탄자니아지만 국립공원에 한 번 가기 위해 드는 비용이 이들에게는 너무나 컸던 것이다. 결국 영어시간에 사용하는 동물 그림을 칠판에 붙여주고 아이들에게 보고 그리게 하였다. 나에게 많은 돈이 있다면 이 아이들을 다 데리고 며칠 국립공원에 가서 신나게 놀다오고 싶었다. 

그러던 중 국립공원들이 모여 있는 아루샤에 갈 일이 생겼다. TV에서나 봐오던 세렝게티 초원의 동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발을 잡았지만 결국 J(한국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나온 친구)와 나는 탄자니아를 찾는 다른 이방인들처럼 동물 사파리에 합류하기 위해 아루샤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이녀석들의 정체는 하마.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꿈같은 한밤의 드라이브
아침 일찍 다르에스살람에서 출발하였으나 아루샤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우선 사파리를 하려면 랜드로버 같은 사륜구동 차와 드라이버, 숙소 등을 알아서 해줄 에이전시를 알아봐야 했다.

이 지역은 배낭여행을 하듯 혼자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에 100달러가 넘는 비용을 에이전시에 지불해가며 여행을 해야 한다. 수소문 끝에 한국인이 하는 여행사와 연락이 되어 급하게 3일간 우리를 이끌어줄 드라이버 톰과 아루샤에서 만났다. 우리 팀은 J와 나, 미국인 잭과 알렉스로 구성되었다.

밤새 마냐라 호수 국립공원을 돌아보는 나이트 게임 드라이브(Night Game Drive)를 원하는 잭과 알렉스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사자나 치타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사륜구동차의 소음과 틈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내가 지금 자연 한가운데 있음을 실감케 해주었다. 그러나 밤길을 달려 꾸역꾸역 도착한 국립공원에는 안타까운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생동물 보호 차원에서 야간 드라이브를 허가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팸플릿에도 나와 있는데 왜 그러냐고 따져도 막무가내다.

결국 아쉬워하는 두 명의 미국인을 달래 캠프장으로 돌아왔다. 별들이 쏟아지는 숲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물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렸을 때 이후 처음 하는 캠프라 가슴이 떨렸다. 밤새 동물들이 다가오지 않을까, 비가 오지는 않을까, 많은 두려움 속에서도 피로가 밀려와 어느새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자연 속 이방인
날이 밝았다. 밥을 먹고 텐트를 정리하고 다시 출발했다. ‘끝없는 초원’이라는 의미대로 세렝게티는 너무 광대해서 돌아보는 데만도 최소한 3박 4일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은 케냐의 마사이 마라에서 세렝게티로 동물들이 이동하는 시기가 아니라고 한다(대개 12월이 세렝게티의 피크타임이다).

그 말에 우리는 가까운 응고롱고로 크레타(분화구)를 선택하였다. 백두산 분화구의 30배나 된다는 이곳은 아직 우기 전이라 그런지 온통 황금빛 초원이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동물들이 있는 분화구까지 내려가는데 거의 1시간 이상을 산길로 달려야 했다. 매일 수십 대의 차들이 다니는 길 양옆의 식물들은 온통 붉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과 야생동물 우선순위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며 남긴 흔적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착찹해졌다. 

분화구의 크기는 남북으로 약 15km, 동서로 약 20km다. 가로지르는 데만도 1시간 이상이 걸린다. 분화구 곳곳에 동물들이 흩어져 있고 특히 물이 있는 곳에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분화구이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온 동물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얼룩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이곳의 사파리 룰이 매우 엄격하여 정해진 길로 정해진 속도로만 달려야 했다. 그리고 동물의 이동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망원경도 카메라의 망원렌즈도 챙겨오지 않은 나는 아쉬운 나머지 의자 위로 일어서서 밖으로 몸을 내밀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모시 시내의 상점. 코카콜라를 좋아해서 유독 이런 조형물이 많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이곳에서 또 많이 보게 되는 동물이 바로 ‘누’다. 누의 생김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할아버지’다. 소도 아니고 양도 아닌, 조금은 초라한 모습이다. 주로 떼를 지어 다니는데 얼룩말과 함께 서로 협동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갑자기 많은 차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자를 발견한 것이다. 한 마리의 수사자와 여러 마리의 암사자 무리가 더운 날씨에 낮잠을 자고 있다. 몸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낮잠을 즐기는 사자의 모습에선 동물의 왕이라는 위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자연 속에 살아 숨쉬는 동물들을 보기 위해 열심히 사륜구동차로 쫓아다니는 나와 관광객들,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무시한 채 유유히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가는 동물들. 이 응고롱고로 세계에서 사파리용 자동차와 인간들은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다. 

이곳에서 만나는 것은 동물만이 아니다. 마사이 이주 정책으로 인해 많은 마사이족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소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다. 잭과 알렉스는 분화구 깊숙한 곳에 있는 마사이 마을 체험을 위해 떠났고 J와 나 또한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에 그들을 배웅해주기로 했다. 길도 없는 초원을 한없이 달렸다. 비가 오기도 하고 운해를 만나기도 했다. 소를 치는 마사이 아이들과 수많은 소떼로 잠시 멈춰서기도 했고 갑자기 등장한 버팔로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기도 했다.

국립공원을 빠져나오자 밤이 살포시 내려왔다. 로지에 가서 하루 종일 뒤집어쓴 먼지를 씻어내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몇 달 만에 시원한 맥주도 한잔했다. 킬리만자로, 세렝게티, 사파리 등 탄자니아는 맥주 이름도 참 탄자니아스럽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대자연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어린왕자의 별을 방문하다
동물 사파리 마지막 날이다. 첫날 야간 드라이브를 하려고 했던 ‘마냐라’ 호수를 찾았다. ‘마냐라’는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의 이름이다. 마냐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서 있었다. 신이 나무를 거꾸로 심었다고 할 정도로 바오밥나무 가지는 사방으로 뻗어 있어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문득 저 바오밥나무가 어린왕자의 B612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나무라면 정말 B612를 뚫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약 5000년 정도를 살 수 있다는 바오밥나무,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목격하고 그 가지 하나하나에 담았을 생각을 하니 그가 존경스러워졌다. 동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바오밥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지역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양식, 약초, 물 등 많은 것들을 제공해주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는 그 모습으로 주목받지만 이들에게는 그 가치로 사랑받는 나무이다.   

마냐라 호수 국립공원은 숲과 호수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숲속에는 주로 코끼리와 가젤 같은 사슴류가, 호수쪽 초원에는 기린과 하마, 플라밍고 등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때 차로 갑자기 코끼리들이 다가오자 톰이 급하게 차를 후진했다. 비록 초식동물이긴 하나 그 거대한 몸짓 때문에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단다.

숲을 빠져나가자 초원에서 뛰노는 기린 떼를 만날 수 있었다. 너무나도 긴 목의 소유자인 이들은 그 목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갑자기 초원을 힘차게 달려가기도 했다. 정오가 되자 동물들이 그늘을 찾아 숨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먼지 날리는 길을 건너 어딘가로 향하는 마사이족.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킬리만자로산에는 표범이 살지 않는다.
우리가 묵었던 모시(Moshi)의 YMCA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킬리만자로 산을 볼 수 있다. 킬리만자로산 등반 코스 중 가장 대표적인 마랑구 루트의 입구와 가깝기에 많은 등반객들이 이곳에서 묵어 간다. 사실 킬리만자로산 등반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무작정 이곳에 온 우리는 그래도 입구에 발도장이라도 찍자는 심정으로 하루 코스 트레킹을 하고자 킬리만자로산 마랑구 게이트로 향했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 가이드인 로가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갈 곳은 2720m에 위치한 첫 번째 베이스캠프인 만다라 헛이다. 걷는 것에 비해 산을 잘 못 오르는 우리는 로가드의 속력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헉헉거리며 심장을 부여잡고 산을 오르자 영화 <타잔>에서나 보았음직한 밀림이 펼쳐졌다. 한국의 산들과 다른 풍경에 마치 밀림 탐험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리 옆으로는 정상 등반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한 이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얼굴엔 마치 그런 차림으로 산에 올라갈 거냐는 표정이 역력하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어린왕자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듯한 바오밥 나무.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2시간 반 정도 후에 만다라 베이스에 도착했다. 안개가 너무 심해 전망대에 올라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숙소인 YMCA에서도 첫날 이후로는 날씨가 좋지 않아 눈 덮인 은빛 킬리만자로를 볼 수 없었다. 

문득 마음속에 여러 가지 소망이 생겼다. 언젠가 체력이 허락된다면 꼭 킬리만자로 정상의 눈을 밟고 싶다고…. 더 많이 탄자니아를 알아가고 사랑하고 싶다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필라델피아 초등학교의 아이들도 자신의 조국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를 위해 내가 뭔가를 더 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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