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인제]기름값 걱정 안 하고 건강에도 좋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인제 내린천으로 180km의 자전거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국산 자전거 업체인 코렉스가 주최하는 ‘인피자와 함께하는 인제 내린천 투어’ 현장을 동행했다.
토요일 오전 5시. 한가한 주말 아침이지만 잠실 선착장 앞은 자전거를 타고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른 아침에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밤잠을 설친 기력이 역력하지만, 몸짓만은 누구보다 활기찬 사람들. 노란 유니폼을 맞춰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 사람들은 오늘 인제 내린천까지 180km의 대장정을 함께 달릴 참가자들이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자전거 180km는 저승 가는 길보다 더 먼 거리겠지만, 자전거를 좀 탄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서울~인제 내린천 코스는 입문자급 정도의 코스란다. 그래서 이번 참가자들도 ‘고수’들보다는 6개월~1년 정도 자전거를 탄 초보들이 많다.
드디어 출발시각인 오전 6시 정각. 간단한 체조로 워밍업을 마친 참가자들은 하나둘씩 열을 맞춰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출발한다. 처음 달릴 구간은 하남종합운동장까지의 15km 구간. 한강시민공원길을 따라 이른 아침의 동이 트는 광경을 만끽하며 달리는 길은 새벽 공기의 상쾌함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이대로만 달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절대 쉽지만은 않으리라.
40여 분 만에 하남종합운동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의 얼굴엔 아직 여유가 충만하다.
“뭐 이 정도야 준비운동 아니겠습니까?”
구자영 씨는 이 정도로는 몸 풀기도 안 된다는 듯 얼굴에 여유가 가득하다. 참가자들은 간식을 먹으면서 장비를 정비하고 다음 코스를 살피기에 분주하다.
“자전거 투어는 거리도 거리지만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응급사태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해요. 미리 자전거를 점검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구석구석 살펴보아야 사고를 피할 수 있죠.”
행사를 주최한 (주)코렉스의 최희영 씨가 말하는 가장 간단한 자전거 점검으로는 자전거를 10cm 정도 들어 올려 바닥에 떨어뜨리는 방법이 있는데, 이상이 있으면 평소와 다른 소리가 나므로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주말의 이른 아침,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는 국도는 썰렁하다. 하지만 서울을 빠져나가는 구간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자전거 단체 투어는 누구 하나 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 못 타는 사람 상관없이 열을 맞추고 선두의 지휘를 잘 따라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특히 이날 코스는 차가 많이 다니고 좁은 길이 많아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남한강의 모습은 부지런한 사람들만이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일 게다. 각박한 도시의 아침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었던가를 되돌아본다.
앙평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을 하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부산에서 온 여성 참가자인 김명아 씨가 내리막길을 달리다 넘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뒤따르던 자전거와 바퀴가 엉켜 함께 넘어졌다는 것. 아스팔트 길에서 넘어졌으니 부상이 심할 터라 놀라움과 동시에 걱정이 앞선다.
병원을 다녀온 명아 씨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란다. 하지만 자전거를 탄 경력이 짧은 탓에 많이 놀란 모양이다. 더구나 바퀴가 엉켜 같이 넘어진 참가자가 부산에서 함께 온 남자친구라니! 하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남자친구의 음모’, ‘계획된 조작극’이라고 농담을 건네며 명아 씨를 웃게 한다.
명아 씨는 더 이상 이번 투어에서 자전거를 탈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한 것은 아니다. 참가자들이 이 사고를 액땜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몫까지 다할 것을 다짐했기 때문이다. 이제 만난 지 불과 서너 시간, 16명의 참가자들은 벌써 우정을 뽐내고 있다.
이날의 목표는 최단시간 도착이 아니라 목표 지점까지 완주하는 것이기에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한 번씩 쉴 때마다 급격히 친해진다는 것이다. 간식을 나누며 자전거 이야기, ‘오늘 밤에 우리 방에 넘어와 소주나 한잔하자’는 이야기 등 몇 년을 보아온 사람들처럼 화기애애하다.
100km 고지를 앞둔 홍천에서 점심을 먹은 후부터 참가자들에겐 고비가 온다. 뜨거운 날씨와 체력도 그렇지만 가장 골치 아픈 방해꾼은 다름 아닌 ‘졸음’이다. 속된 말로 ‘배부르고 등 따신’ 상황인 것이다. 이때부터는 각 그룹 선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투어의 선봉장에 선 김태영 씨는 참가자 중 가장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14년이라는 경력과 젊은이를 능가하는 대단한 체력으로 참가자들을 독려한다. 뒤처지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지점에서 다 같이 기다려주고 오르막길에서는 힘찬 구호로 파이팅을 다진다.
오후 4시 30분. 드디어 38선 휴게소를 넘어 내린천과 함께 길을 달린다. 시원한 내린천과 가리산 자락의 맑은 공기가 최종고지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제부터는 좁은 1차선 도로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가장 긴장해야 할 순간이다. 목적지가 가까워진 만큼 페달을 밟는 발길이 바빠진다. 이때만큼은 모두 아이의 심정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참가자 전원이 목적지인 ‘맑은 물 리조트’를 정복한 시간은 저녁 7시. 그 옛날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몬주익을 달려 1등으로 들어왔을 때 만세를 부르던 감격이 이러할까, 참가자들은 자전거를 하늘 높이 들고 기쁨에 찬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렇게 13시간여 180km의 여정은 끝이 났다. 단 한 명의 포기자도 없이 완주를 마친 참가자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햇볕에 까맣게 탄 얼굴로 행복하게 웃는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세요?”라는 질문에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이유를 말하는 참가자들.
“글쎄요. 산 타는 사람은 산이 거기 있어서 탄다고 하던데, 우리들은 자전거가 있고 길이 있어서 떠난다고 할까요?” 오늘 투어를 선두 지휘한 김태영 씨의 대답은 연륜과 더불어 14년 내공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마지막까지 한 명의 포기자도 없이 완주에 성공한 ‘자전거 히어로’들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