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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잊혀져가는 것들을 찾아] 양평 지평막걸리 3대째 이어오는 100년 전통 술도가 서태경 기자
[잊혀져가는 것들을 찾아] 양평 지평막걸리 3대째 이어오는 100년 전통 술도가 서태경 기자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8.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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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쌓여있는 지평쌀막걸리.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양평] 한 개 면에 하나씩은 있었던 양조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와중에도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술도가가 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또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고 있는 경기도 양평의 지평막걸리다. ‘관계자 외 절대 출입금지’라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전통 막걸리의 맛이 궁금해 무작정 술도가를 찾았다. 

이게 바로 명품 막걸리
“아이고 30년 들락거린 우리한테도 잘 안 봬 줄라고 하는데…, 어디 가서 말이나 한번 해봐요.” 지평막걸리 도매상을 하고 있는 정환진 사장의 설명이다. 어림도 없다는 소리에 갑자기 주눅이 팍 든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지평쌀막걸리 간판.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찐 밀가루에 효모를 섞어 발효를 시키는 곳.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드라마에 몇 차례 나오면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사장 고집이 대단해 아무나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뭐 찍을 거 있대요? 술도가가 그냥 술도가지” 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오는데도 호기심을 영 누를 수가 없다. 허름한 일본식 건물에서 아직도 그 옛날 방식으로 술이 만들어지고 있다니, 애주가가 아닌 나도 그냥 포기해버리기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일단 지평막걸리 양조장으로 차를 몰았다. 마을도 작을뿐더러 대충 어디쯤에 있다는 얘기는 듣고 가는지라 막걸리 도매상은 쉽게 눈에 띄었다.

“지평막걸리 하면 알아줬지. 멀리서도 일부러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라며 명품 막걸리의 명성이 여전하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한다. 30분 정도 가게에 머문 동안에도 직접 차를 몰고 와 막걸리를 사가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말 없이 값을 치르고 휑하니 가버리는 걸 보니 단골인가보다.  

술도가는 도매상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다. 지평종합고등학교 담벼락과 마주하고 있는 폼이 완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한눈에 봐도 ‘뭐하는 곳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경한 외관에 발길이 멈춰지는데 근처에 가니 막걸리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훅 끼쳐와 말하지 않아도 술도가인 걸 알겠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한눈에 봐도 꽤 오래되어 보이는 지평막걸리 술도가.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슬쩍 보니 작업장은 한가하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는데 한쪽에선 연신 선풍기만 돌아갈 뿐 인기척은 없다. 이때 보이는 ‘관계자 외 절대 출입금지’, ‘제한구역’이라는 빨간 표지. 가슴이 졸아드는 순간 사무실에서 뭔가를 쓰고 있던 방효연 사장과 눈이 딱 마주쳤다. 여차저차해서 이러고저러고 싶다고 상황을 설명하니, “나 참 찍을 게 뭐가 있어요? 다 쓰러져가는 술도가에. 그리고 원래 아무나 못 들어와요.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거라 위생도 중요하고 또 우리 일하는 데도 방해되고” 그러면서도 여럿이 왔으면 안 보여줬는데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인 줄 알라면서 배양실이며 종곡실을 두루두루 구경시켜준다. 

황송한 마음으로 둘러보니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1925년 할아버지가 처음 이곳에 양조장을 만들고 한국전쟁 때에도 불에 타지 않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방 사장의 아버지가 뒤를 이었고 그가 한 지는 30년가량 되었단다. “옛날에야 술도가가 면 하나에 하나씩은 있을 정도로 양조산업이 호황이었죠. 또 술도가 하면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부잣집이었지. 그런데 요즘 누가 그렇게 막걸리를 먹나. 나야 어른들이 하시던 거니깐 힘들어도 받아서 하는 건데…, 우리 자식이 하겠다면 글쎄….”

몸은 힘들어도 옛날 방식 그대로
1980년대 중반, 그러니까 88서울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한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이농이 본격화되고 농촌에서도 새참으로 막걸리 대신 다른 주전부리를 찾게 되면서 전통 술도가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으면 대형화, 공장화로 전환해버렸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구둔역.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하지만 지평막걸리는 술도가도 옛 모습 그대로지만 술을 만드는 기법도 그대로다. “기계 쓰면 왜 편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할아버지가 하시던 방식으로 계속 만드는 건 손맛 때문이에요. 기계로 하면 그 맛이 나겠어요?” 다른 과정은 몰라도 원료 배양을 하고 숙성을 하는 과정은 방 사장 혼자서 관여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찐 밀가루와 쌀에 효모를 배양한 후 이중의 30%를 항아리에 옮겨 효모를 증식(1단)시키고 48시간이 지난 후에 이중에서 30%를 다른 항아리로 옮겨 다시 숙성(2단)을 시킨다. 1단 작업의 항아리를 열어보니 당장이라도 끓어 넘칠 기세로 발효가 한창인데, 발효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발효 중인 막걸리에서는 맛있는 술 냄새와 함께 향긋하고 묘한 과일향도 함께 난다는 것. 이게 바로 지평막걸리를 계속 찾게 만드는 숨은 노하우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2단 발효가 거의 끝나가는 막걸리. 바로 마셔도 된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찐 밀가루의 열기를 식히는 과정.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완제품이 되기까지 밀가루막걸리는 5일, 쌀막걸리는 하루가 더 걸리는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상태를 점검한다. 예전만큼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평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은 꾸준하다. 동네 식당에서도 막걸리를 주문하면 도매상에서 바로 술을 받아다 줄 정도다. 

뽀얀 우윳빛의 막걸리 맛은 어떨까. 약간 달착지근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또 밀가루막걸리는 쌀막걸리에 비해 좀 가벼운 맛이랄까. 알코올 도수가 6%지만 음료수처럼 술술 잘도 넘어간다. 집에 가져갈 요량으로 몇 병을 사 움직이지 않게 차 앞좌석에 단단히 묶어놓는다. 운전 핑계로 마음껏 맛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옆자리에 있는 막걸리 병들을 보니 뿌듯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는 맥주 대신 시원한 막걸리로 건강하게 날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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