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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서울 산책] 추억은 방울방울 서촌기행
[서울 산책] 추억은 방울방울 서촌기행
  • 송수영 기자
  • 승인 2013.07.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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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세종대왕, 겸재 정선, 송강 정철, 추사 김정희, 백사 이항복, 이중섭, 이상…. 이들을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서촌’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를 들고 여전히 길을 찾아갈 수 있다 할 정도로 특별한 동네. 그런데 이곳이 누구에게나 아늑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신기한 힐링 스폿으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박노수가옥.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의 이층 양옥 구조다.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옛 추억의 골목

영화 <건축학개론>을 본 뒤 한동안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아스팔트처럼 메마른 마음에 첫사랑의 열병을 다시금 상기시켜준 때문일 테지만, 또 한편으론 그 배경이 되었던 추억의 장소가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모처럼 펼쳐내준 덕분이기도 하다. 지붕과 지붕이 닿을 듯 이어져 있는 골목,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 문간방 작은 쪽창이 이어져 있는 담벼락….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생생한 장면 장면에 전에 없이 깊이 몰입한 것이다. 제2의 주인공이라 할 정도로 중요한 작품 속 배경은 1990년대 초 정릉. 그런데 실제 촬영지가 경복궁 옆 동네 서촌이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바.

그렇다. 놀랍게도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노른자위 땅 서촌은 어느 지방의 세트장인 양 아기자기한 옛 풍경이 고스란하다. 오랫동안 개발제한 구역에 묶여 있었던 덕분에 여전히 한옥 600여 채가 남아 이웃 동네 광화문에 빽빽하게 마천루가 들어서는 것을 오롯이 올려다보기만 했다.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친근한 서촌의 골목 풍경.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최근 북촌에 이어 서촌이 주목을 받고 있다. 권문세도가의 터였던 북촌과 달리 중인과 예술가가 주로 살았던 내력 덕분에 서촌 곳곳에서 풍기는 소탈함은 이곳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특히 최근 지나치게 상업화가 진행되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화려하고 세련된 쇼윈도로 채워진 삼청동과 달리 이곳은 일상생활의 공간이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고 여기에 젊은 예술가들의 숨은 실력을 엿볼 수 있는 공방과 작은 갤러리와 상점들이 골목에 점점이 자리를 잡아 푸근한 감성을 연신 자극한다. 

올해로 8년째 필운동에 거주하는 주부 최정화 씨는 서촌의 매력을 ‘느릿함’으로 꼽는다. “서촌은 유달리 골목이 많죠. 그 골목길을 다 돌아야 비로소 큰길에 다다릅니다. 효율 면에서 보자면 형편이 없지만, 그 시간이 오히려 일상에 작은 휴식이 되지요. 숨을 고르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집 주변에 인왕산으로 걷기길이 이어져 있는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커다란 위안이 되지요.”

시간의 흐름이 비껴간 동네에선 초행길의 여행자도 긴장감이 풀어져 느긋하게 움직이게 된다.      

서촌은 행정구역으로 보자면 종로구 효자동, 옥인동, 청운동, 체부동, 통인동, 누하동, 필운동 등 경복궁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을 아우르며 인왕산이 크게 감싸고 있는 형세다. 과거 웃대, 상대마을 등으로 불리던 곳으로, ‘서촌’이라는 이름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지리적 이유로 붙인 것으로 본다.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서촌을 품에 안고 있는 인왕산.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서촌을 누비다
생활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 최미현 씨는 올 5월 누하동에 한옥을 개조하여 새로운 작업실 ‘클레이 인 플레이(Clay in Play)를 열었다. 내부 인테리어가 끝나고 한숨 정리가 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서촌 이곳저곳을 다니며 산책의 재미에 푹 빠졌다. 


“예전 삼청동에 작업실이 있을 때보다 다녀보니 아기자기한 재미가 더 있어요. 상업적으로도 아직 때가 덜 묻었다고 해야 할지, 솜씨 좋은 젊은 친구들이 골목골목에 아주 조그맣게 터를 잡고 있는 것도 즐거워요.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가 않아요.” 

서촌 산책을 할 때 대부분 출발점으로 잡는 것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이다. 2번이나 3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도로가 자하문로인데, 이 길에 60여 년 전통의 유서 깊은 통인시장이 있다.   

긴 골목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 통인시장을 구경하고 그 끝에서 길 맞은편의 ‘농수산물할인매장’과 ‘배화부동산’ 사이의 옥인길로 올라간다. 이 작은 골목이 요사이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 맛집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1920년대 서양의 앤티크 소품이 있는가 하면,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유기농 빵집, 서촌의 명물 헌책방 ‘대오서점’도 엿볼 수 있다. 정겨움이 묻어나는 낡고 오래된 동네 상점과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개성 만점의 상점이 이웃하여 나란한데 ‘꺼꾸리와 장다리’처럼 꽤나 잘 어울린다.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배화여고 생활관. 1916년 선교사를 위한 주택으로 지어져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2013년 8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올라가는 길에 ‘온누리약국’ 옆 작은 골목길 위에 흰색의 멋진 양옥이 있는데 이곳이 박노수가옥이다.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등록되어 있는 자산으로, 현재 박노수 화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등을 전시할 구립미술관으로 새 단장 중이다. 

이 골목길에서 윤동주 시인이 한때 하숙을 하였다는데 그 자취는 현재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여기에서 조금 더 걸음을 하면 ‘티베트박물관’이 있다. 붉은색 건물이 단박에 눈에 띈다. 이전 삼청동 때보다 한층 넓고 화려해졌다. 이즈음에서부터 길이 조금씩 가팔라지는데, 그 언덕길 끝이 수성동계곡이다. 과거 낡은 옥인아파트를 철거한 뒤 인왕산의 제 모습을 찾았다. 계곡의 복원은 정선의 작품집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중 화폭 속 ‘수성동’의 풍광에 의거하였다고 하는데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기린교’와 암석 지형을 살리고, 소나무를 식재하는 등 공을 들였다. 

올라오느라 땀으로 찐득해진 몸이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새롭게 되살아난다. 계곡 중간에 세워져 있는 정자에 올라 모처럼 머리를 비워도 좋겠다. 뒤로는 겸재가 사랑한 아름다운 인왕산 줄기가 늠름하게 솟아 있고 앞으로는 서울 시내 풍경이 훤하게 펼쳐져 있다.

이 길에서 인왕산 쪽으로 오르는 산책 코스를 따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이어져 부암동으로 넘어갈 수 있고, 다시 내려가 서촌의 다른 골목을 기행해도 좋다. 사직공원 쪽에서 고풍스러운 근대건축물이 있는 배화여고를 지나 그 후문길이나, 1910년대 지어진 개량 한옥을 만나볼 수 있는 통의동 한옥마을, 경복궁 영추문 앞 효자로의 조용한 거리를 산책해도 좋다.  그러나 기실 서촌은 굳이 동선을 짜지 않고 움직이는 것도 좋다. ‘내 맘 가는 대로…’, 어쩌면 이것이 진짜 서촌을 안내하는 최고의 내비게이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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